사진=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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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인공지능 손(artificial hand)의 시대입니다.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을 만든 애덤 스미스가 현대에 온다면 혁신과 규제의 균형을 고민해야할 것입니다."

기타 고피나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부총재는 5일(현지시간)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대에서 열린 애덤 스미스 탄생 300주년 기념 강연에서 이같이 말했다. <국부론>과 <도덕감정론>을 써 현대 경제학과 자유시장경제 철학의 초석을 놓은 애덤 스미스는 이날로부터 300년 전인 1723년 6월5일 유아세례를 받았다. 정확한 출생일이 알려지지 않아 이날을 탄생일로 기념한다.

생산성 높이는 AI, "스미스도 반겼을 것"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 있는 애덤 스미스 동상. 출처=애덤스미스인스티튜트.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 있는 애덤 스미스 동상. 출처=애덤스미스인스티튜트.
고피나스 수석부총재는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쓴 1776년이 지금과 같은 산업의 대변혁기였다고 설명했다. 당시는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해 산업 혁명이 시작되는 시기였다. 고피나스 수석부총재는 "현재 우리는 새로운 기술인 '인공지능'이 삶을 변화시키고 심지어 인간의 정의마저 바꿀 수 있는 변곡점에 와있다"며 "'산업혁명'이라는 변화의 시기에 번영을 증진시키는 방법을 고민한 스미스가 새로운 '인공지능 손'의 출현에 어떻게 반응했을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피나스 수석부총재는 AI가 생산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점을 스미스가 반겼을 것으로 봤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국부의 원천을 노동생산성으로 봤기 때문이다. 고피나스 수석부총재에 따르면 인공지능 기반 대화형 비서를 고객 서비스에 도입한 회사의 생산성이 14% 증가했다.

고피나스 수석부총재는 "스미스는 국가의 부는 국민의 생활 수준에 의해 결정되며, 그러한 기준은 생산성, 즉 노동자 1인당 생산되는 생산량을 높임으로써 향상될 수 있다고 <국부론>에서 주장했다"며 "지난 10년간 전 세계의 생산성 증가율이 둔화는 가운데, AI가 이러한 추세를 반전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골드만삭스의 연구에 따르면 AI는 향후 10년 동안 전 세계 생산량(GDP)을 7%(약 7조달러) 증가시킬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도와 영국의 경제 규모를 합친 것보다 더 큰 규모다. 고피나스 수석부총재는 "효율성 극대화 측면에서는 애덤 스미스가 인공지능 손을 인위적으로 억누르는 것을 경계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AI, 사회 위협 가능성도

문제는 AI가 사회에 미칠 부정적 영향도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선 자동화로 인한 중산층 일자리의 손실이다. 고임금 일자리와 저임금 일자리만 남게되는 양극화 현상의 발생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일부 연구에서는 미국 직업의 3분의 2가 자동화에 취약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경제학자인 대런 애쓰모글루가 말했듯 'AI가 생산적인 일을 창출하지 않고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기만 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고피나스 수석부총재는 "개인의 행복과 일반 노동자의 곤경에 대한 스미스의 생각을 감안하면 이같은 노동시장의 변화는 그를 괴롭게 하는 요인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피나스 수석부총재는 AI가 사회의 이익을 위해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건전한 규제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유럽연합(EU)이 지난 2021년 제시한 규제방안을 소개했다. 위험수준별로 규제를 달리하는 것이다. 예컨대 높은 리스크가 예상되는 시스템은 원천 금지한다. 정부가 AI를 통해 사람들의 순위를 매기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나 생체인식을 통해 원격으로 사람을 식별하는 행위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AI가 생성한 팬타곤 폭발 사진으로 최근 한때 미국 증시가 출렁였다.
AI가 생성한 팬타곤 폭발 사진으로 최근 한때 미국 증시가 출렁였다.
허위 정보를 퍼트리는 AI로 인한 '환각'이나, 의학 등 인간 생명에 연결되는 인프라의 통제권을 AI에 내주는 등의 일도 '위험한 시스템'으로 여겨지고 있다.

스미스는 자유를 주장했지만 무조건적인 방종을 의미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많다. 스미스의 자유에는 정의가 기반한다. 정의로운 법과 질서 하에서 자유로운 경쟁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AI의 이같은 허위와 방종이 사회 이익에 부합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AI 시대에 맞는 정의를 스미스가 새롭게 고민할 가능성이 있다.

고피나스 수석부총재는 또 "AI 시스템에 대한 직접 규제와 함께 사회도 함께 변화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교육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조정해 새로운 노동시장 수요를 충족할 인재를 길러내고, 노동자의 대규모 실직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책도 신중하게 짜야한다는 것이다.

힘과 위험 균형 찾아야

"'AI 손'의 시대…혁신·규제 간 애덤 스미스식 균형 고민해야" [강진규의 데이터너머]
AI의 등장으로 '인간'에 대한 재정의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고피나스 수석부총재는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인간이 공감을 통해 규칙에 기반한 사회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며 "AI가 변수로 추가된 사회에서는 '가짜 친밀감'을 통해 사람들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면서 문명에 대한 이해 자체가 훼손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AI의 시대에서 "혁신에 대한 지원과 규제 감독의 균형을 신중하게 맞출 필요가 있다"는 게 고피나스 수석부총재의 결론이다. 그는 "스미스가 경제학 뿐 아니라 법학·수사학·언어학·역사학·수학 등을 종합해 산업혁명 시대 인류의 이익을 높인 것처럼 사회적 이익이 되는 AI를 규정하기 위해 학제 간 접근이 필요하다"며 "인공 손의 힘과 위험을 다루기 위해 인간의 모든 공감능력과 독창성을 꺼내야할 때"라고 말했다.

디지털화에 따른 새로운 기술혁명 시대에서 스미스의 자유를 어떻게 바라봐야할지는 스미스 탄생 300주년을 기념하는 국내외 학술 행사의 주요 주제가 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과 한국자유주의학회가 7일 공동 주최하는 심포지엄에서도 디지털 환경에서의 규제 방안에 관한 논의가 이뤄질 예정이다.

김성준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는 "데이터 기반 사회로 급속한 전환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산업 진흥을 위해 규제를 과감히 풀어야한다는 주장과 급격한 변화에 따른 부작용을 막기 위해 정부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며 "스미스 탄생 300주년을 맞아 정부의 역할을 다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