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하지만 매력적인 젊은이들의 초상…이서수 첫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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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집 '젊은 근희의 행진' 출간
성인 웹툰의 보조 작가로 일하다 원형탈모가 생긴 수영 언니, 아버지가 평생 모은 재산 5천만원으로 엄마와 함께 살 전셋집을 구하는 미조, 유튜브 개인 방송에서 가슴골을 드러내며 구독자를 모으다가 사기를 당하고 잠적한 근희까지, 이서수의 소설집 '젊은 근희의 행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불안하고 취약한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다.
마취제 같은 꿈의 힘으로 견디는 삶이든, 꿈 따위는 접고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면서 하루하루 맥주 한 캔과 소주 한 병으로 버티는 삶이든, 젊은이들은 함께 어깨를 맞대고 위로하면서 묵묵히 일상을 살아간다.
첫 수록작은 작가에게 2021년 이효석문학상 대상을 안겨준 단편 '미조의 시대'다.
웹툰 회사에서 변태적인 내용의 성인물을 그리는 보조작가 '수영 언니'는 원형탈모증이 올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하지만 그만둘 생각은 하지 못한다.
대신 그는 미조에게 이렇게 큰소리를 치며 지금 이 '시대'에 화살을 돌린다.
"나의 정신을 죽이고 있는 건 시대라고, 이 시대. 사람들이 좋은 웹툰보다 나쁜 웹툰에 더 많은 돈을 쓰는 이 시대가 내 머리카락을 빠지게 하고 있어."
표제작 '젊은 근희의 행진'에서 화자 문희의 동생 근희는 '먹방'과 '술방'을 거쳐 책을 소개하는 유튜브 방송을 시작한다.
왜 가슴골이 다 보이는 옷을 입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훈계하는 언니에게 근희는 "나는 내 몸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면서 "사람한테 걸레라고 하는 거 아니야"라고 일갈한다.
"언니는 왜 우리의 몸을 핍박하는 거야? 언니의 몸은 언니의 식민지야? 언니는 왜 우리 몸을 강탈의 대상으로만 봐? 나는 언니가 좋고, 언니도 속으론 나를 좋아할 텐데 우리를 갈라놓는 것이 편견이라는 게 너무 슬퍼."
언니 '문희'는 철없는 사고뭉치로만 생각했던 동생에게서 제대로 '한 방' 맞는다.
이처럼 작가가 그린 인물들은 냉담하고도 견고한 성채와도 같은 시대와 현실 앞에 무력하게 무너지는 존재들이 아니다.
이들은 나와 가족들을 힘들게 하는 현실의 삶에 굴복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서 서로의 곁을 지켜주며 함께 나아간다.
'젊은 근희의 행진'이라는 소설집 제목의 '근희'는 일견 어리석어 보이지만 스스로 발 딛고 선 땅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서 주체적인 삶을 살려는 젊은이들을 대변한다.
단편 '엉킨 소매'에서 원치 않는 임신으로 고민하다 임신 중지를 결정하는 '나' 역시 그렇다.
'나'는 주위의 동정 어린 시선과 섣부른 윤리적 판단을 거부하면서 임신 후 선택에만 윤리적 판단을 내리지 말고 "판단을 하려면 제발 제대로 된 단계에서 하라"고 당차게 반박한다.
이서수의 소설들에 나오는 인물들은 그래서 생생하고도 반갑다.
자신들에 대한 동정의 시선을 거부하는 이들은 '돈 없고 백 없어도' 당당한 존재들이다.
자칫 비극으로 흐를 수 있는 소재들이지만 작가 특유의 유머와 휴머니즘으로 인해 낙관의 에너지가 전편에 흐르는 것도 이 소설집의 매력이다.
문학평론가 소유정은 이서수의 소설을 두고 "인물들이 꼭 다른 이름을 한 나의 얼굴이며, 나의 가까이에 있는 이들의 얼굴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라면서 "이것이 가장 치열하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얼굴이라면, 시대의 초상이라고 말해도 좋지 않을까"라고 평했다.
은행나무. 344쪽. /연합뉴스
마취제 같은 꿈의 힘으로 견디는 삶이든, 꿈 따위는 접고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면서 하루하루 맥주 한 캔과 소주 한 병으로 버티는 삶이든, 젊은이들은 함께 어깨를 맞대고 위로하면서 묵묵히 일상을 살아간다.
첫 수록작은 작가에게 2021년 이효석문학상 대상을 안겨준 단편 '미조의 시대'다.
웹툰 회사에서 변태적인 내용의 성인물을 그리는 보조작가 '수영 언니'는 원형탈모증이 올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하지만 그만둘 생각은 하지 못한다.
대신 그는 미조에게 이렇게 큰소리를 치며 지금 이 '시대'에 화살을 돌린다.
"나의 정신을 죽이고 있는 건 시대라고, 이 시대. 사람들이 좋은 웹툰보다 나쁜 웹툰에 더 많은 돈을 쓰는 이 시대가 내 머리카락을 빠지게 하고 있어."
표제작 '젊은 근희의 행진'에서 화자 문희의 동생 근희는 '먹방'과 '술방'을 거쳐 책을 소개하는 유튜브 방송을 시작한다.
왜 가슴골이 다 보이는 옷을 입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훈계하는 언니에게 근희는 "나는 내 몸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면서 "사람한테 걸레라고 하는 거 아니야"라고 일갈한다.
"언니는 왜 우리의 몸을 핍박하는 거야? 언니의 몸은 언니의 식민지야? 언니는 왜 우리 몸을 강탈의 대상으로만 봐? 나는 언니가 좋고, 언니도 속으론 나를 좋아할 텐데 우리를 갈라놓는 것이 편견이라는 게 너무 슬퍼."
언니 '문희'는 철없는 사고뭉치로만 생각했던 동생에게서 제대로 '한 방' 맞는다.
이처럼 작가가 그린 인물들은 냉담하고도 견고한 성채와도 같은 시대와 현실 앞에 무력하게 무너지는 존재들이 아니다.
이들은 나와 가족들을 힘들게 하는 현실의 삶에 굴복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서 서로의 곁을 지켜주며 함께 나아간다.
'젊은 근희의 행진'이라는 소설집 제목의 '근희'는 일견 어리석어 보이지만 스스로 발 딛고 선 땅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서 주체적인 삶을 살려는 젊은이들을 대변한다.
단편 '엉킨 소매'에서 원치 않는 임신으로 고민하다 임신 중지를 결정하는 '나' 역시 그렇다.
'나'는 주위의 동정 어린 시선과 섣부른 윤리적 판단을 거부하면서 임신 후 선택에만 윤리적 판단을 내리지 말고 "판단을 하려면 제발 제대로 된 단계에서 하라"고 당차게 반박한다.
이서수의 소설들에 나오는 인물들은 그래서 생생하고도 반갑다.
자신들에 대한 동정의 시선을 거부하는 이들은 '돈 없고 백 없어도' 당당한 존재들이다.
자칫 비극으로 흐를 수 있는 소재들이지만 작가 특유의 유머와 휴머니즘으로 인해 낙관의 에너지가 전편에 흐르는 것도 이 소설집의 매력이다.
문학평론가 소유정은 이서수의 소설을 두고 "인물들이 꼭 다른 이름을 한 나의 얼굴이며, 나의 가까이에 있는 이들의 얼굴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라면서 "이것이 가장 치열하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얼굴이라면, 시대의 초상이라고 말해도 좋지 않을까"라고 평했다.
은행나무. 344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