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년 된 아파트가 30억원?…신축보다 비싼 '잠실 만년 유망주'
50년 다 된 잠실주공5단지 ·리·트보다 비싸
전용 82㎡ 지난달 28.2억 거래…두달새 1.5억 상승
잠실역 인접…조합원 내부 갈등은 걸림돌
누군 그러죠. 50년 다 된 아파트에 누가 30억원씩이나 태우냐고. 근데 진짜 30억원에 사 갑니다. 지금도 계속 가격이 높아지고 있어요. 저도 이해가 잘 안 될 때가 있다니까요. (잠실동 A 공인중개사)
46년 된 아파트가 30억원?…신축보다 비싼 '잠실 만년 유망주'
서울 송파구 잠실의 만년 재건축 유망주 ‘잠실주공5단지’가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부동산 가격 하락의 직격탄을 맞았던 단지가 다시 회복세에 접어들며 일부 가구는 역대 고점이던 30억원 선을 회복했다.

같은 크기의 주변 재건축 단지보다 5억~10억원 비싼 수준이다. 공인중개사조차 이해할 수 없는 가격이라는 반응이다. 그러나 집주인과 매수자는 “우리 단지 매력을 생각하면 지금도 저평가 상태”라고 입을 모은다.

46년 세월 느껴지는 잠실 노후 단지

최근 잠실주공5단지에서 만난 공인중개사는 가장 먼저 갈라진 아파트 외벽을 보여줬다. 곳곳에 땜질 흔적이 가득했다. 예전에 칠한 듯한 페인트가 벗겨져 흉물스럽게 방치된 부분도 있었다.

그는 “이 정도면 그래도 수선을 많이 한 상태”라고 했다. 재건축이 확정되기 전엔 주민이 일부러 보수를 하지 않아 흉가 같은 상태로 방치됐다는 것이다. 그나마 재건축이 확정되며 보수가 이뤄졌다고 덧붙였다.
잠실주공5단지 입구의 모습.
잠실주공5단지 입구의 모습.
뒤이어 지하층을 살펴봤다. 과거 방공호 용도로 지어진 공간이었다. 지금은 노후화하고 방치된 탓에 곳곳에 물이 고여 있었다. 악취도 났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고층으로 이동했다. 10년 전에 교체한 엘리베이터가 이 단지에서 가장 최신 시설이라고 한다. 중개사는 “잠실에서 5억원 이하 전세로 전용 84㎡를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며 “옆 신축 단지는 같은 크기가 10억원대”라고 했다.

마침 전세 매물로 나왔다는 한 가구를 소개했다. 강변에 있는 동이었다. 모든 동이 남향으로 지어져 집에서는 한강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집주인이 수리해 내부는 46년 된 아파트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깨끗했다. 거실에선 어렴풋이 롯데월드타워가 보였다. 실제 전셋값은 5억원이 채 안 됐다. 중개사는 “여기가 집주인이 25억원에 산 물건”이라고 귀띔했다.
46년 된 아파트가 30억원?…신축보다 비싼 '잠실 만년 유망주'

전용 82㎡가 28억원…신축보다 비싼 가격

낙후된 만큼 하락 중인 전셋값과 달리 잠실주공5단지의 매매 가격은 연일 고공행진 중이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5단지 전용 82㎡는 지난달 28억2100만원에 손바뀜했다. 올 3월 같은 크기가 26억7600만원에 거래됐는데, 2개월 새 약 1억5000만원 오른 것이다.
잠실주공5단지 내 복도의 모습.
잠실주공5단지 내 복도의 모습.
2021년 전용 82㎡가 21억원에 거래된 이후 가격이 상승곡선을 그렸다. 지난해 5월에는 재건축 기대감을 타고 거래 가격이 30억7600만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후 부동산 경기 침체가 계속되며 지난해 12월 22억4500만원까지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거래 가격이 다시 회복하며 30억원을 넘긴 매물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5단지의 가격은 주변 재건축 단지보다도 비싸다. 잠실 대장으로 불리는 ‘엘·리·트’(엘스·리센츠·트리지움) 전용 84㎡ 가격은 21억원 안팎이다. 엘스는 지난달 최저 거래가격이 21억3000만원이었다. 트리지움 역시 같은 크기가 이달 21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중개사는 “엘리트라고 해도 10년이 넘은 단지”라며 “잠실 핵심지에 신축이 들어선다는 기대가 반영된 가격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민도 같은 의견이다. 3년 전 아파트를 매수했다는 한 주민은 “강변과 롯데월드가 맞붙은 초대형 단지”라며 “재건축만 이뤄진다면 강남이나 여의도보다도 장점이 많은 곳이기 때문에 가격이 높은 것”이라고 했다.

1996년부터 추진만…만년 재건축 유망주

잠실주공5단지는 1996년부터 재건축을 추진 중이다. 강남구 은마아파트와 함께 ‘강남권 재건축의 양대 상징’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27년 동안 우여곡절이 계속되며 사업은 아직도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미 재건축을 끝내고도 10년이 지난 잠실주공 1~4단지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잠실주공5단지 고층에서 바라본 한강 조망.
잠실주공5단지 고층에서 바라본 한강 조망.
입지적인 장점이 많다. 서울지하철 2·8호선 잠실역과 맞붙어 있다. 잠실 중심 상권과도 가깝다. 가구당 대지 지분이 많다. 재건축 면적도 넓어 재건축만 이뤄진다면 서울에서 가장 쾌적한 주거 환경을 갖춘 단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평가다.

그러나 높은 사업성에 따른 기대가 오히려 사업 추진에 발목을 잡았다. 박원순 서울시장 재임 시절인 2017년 재건축안이 확정됐다. 그러나 재건축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부채납(공공기여)과 임대주택 확대에 대한 주민 반발이 계속됐다. 서울시가 제한한 용적률과 ‘한 동 남기기’ 정책도 반발 이유 중 하나였다. 결국 주민이 아파트 외벽에 시장을 비판하는 대형 현수막을 거는 등 ‘재건축 규제의 상징’이라는 오명을 듣기도 했다.

서울시 주도로 진행된 설계 공모는 아시아선수촌아파트를 설계한 조성룡 건축가가 1등으로 당선됐다. 그러나 조합이 공모 결과를 무시하며 소송전이 계속됐다. 최근 법원이 조성룡 건축가의 손을 들어주며 조합이 마련한 재건축 설계안은 무용지물이 됐다.

조합 내부 싸움에 재건축은 “산으로”

지난해 2월 재건축이 확정돼 지상 최고 70층 재건축을 추진 중이다. 조합은 서울시의 신속통합기획을 통해 그간 지체된 사업 속도를 만회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초등학교 부지 문제와 조합 내 갈등 등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특히 조합 내부에선 검찰 수사 결과 조작이 드러난 조합 임원 선거 결과를 두고 갈등이 심하다.
잠실주공5단지 입구에 설치된 조합과 비대위의 현수막.
잠실주공5단지 입구에 설치된 조합과 비대위의 현수막.
서울 동부지방검찰청은 잠실주공5단지 주택재건축정비사업 자문단장과 용역업체 대표를 업무방해 혐의로 지난 4월 불구속 기소했다. 조합 선거에서 투표용지를 바꿔치기하는 수법으로 결과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이사와 대의원이 부정선거로 뽑힌 상황에서 이른바 ‘비대위’ 조합원은 함께 선출된 조합장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조합은 검찰 수사에서 조합장이 기소되지 않았으니 문제가 없다고 맞섰다.

실제로 조합에 반대하는 조합원과 조합 집행부의 신경전이 치열하다. 당장 단지 입구에는 양측의 현수막이 모두 걸려 마치 집회 현장을 방불케 했다. 비대위 조합원은 조합장 해임을 위한 총회 발의를 위해 동의서를 모집하고 있었다.

반면 조합은 신속통합기획 철회를 요구하는 비대위 조합원을 향해 “총회에서 조합원 자격을 박탈하고 현금 청산하겠다”고 공지했다. 한 조합원은 “양측의 갈등이 이미 수년째”라며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의 가장 큰 리스크는 내부 갈등”이라고 꼬집었다.

유오상 기자 osy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