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친주' 건네주며 회식…겸손 무장한 '톱3 완성차 기업' 회장님
‘할아버지’ 故 정주영 회장에 ‘밥상머리 교육’ 받고 자라
학창시절엔 형편 어려운 친구 집으로 데려와 같이 살기도
인품에 임직원들 매료 … 특유의 도전정신은 혁신 이끌어
“대기업은 형식과 관습에 얽매이는 경우가 많지만 현대자동차그룹은 예외다. 정의선 회장의 젊음과 미래 비전이 현대차그룹을 ‘패스트 팔로어’에서 ‘진정한 혁신가(true innovator)’로 바꿨다.”
미국 유력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지난해 4월 정 회장을 ‘올해의 자동차산업 선구자’로 선정하면서 내린 평가다. 기존 자동차 회사의 틀을 깨는 광폭 행보로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현대차그룹을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모빌리티 기업으로 변모시켰다는 설명이다.

이 매체는 “플라잉 택시, 자율주행 셔틀, 로봇은 전통적 자동차 영역이 아닌데도 정 회장의 리더십이 이를 현대차의 장기 비전으로 만들었다”며 “포르쉐의 3분의 1 가격인 전기차에 적용한 800V 충전기술 또한 자동차산업의 핵심적인 민주화이자 혁신”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차엔 할아버지 때부터 혁신 DNA

정 회장이 수상을 기념해 한 뉴스위크 인터뷰에서 가장 먼저 꺼낸 얘기는 할아버지인 정주영 현대그룹 선대 회장이었다. 그는 “정주영 창업주가 회사를 설립했을 때부터 우리는 사람들의 삶에 진정한 변화를 주고 싶었다”며 “그런 의미에서 우리(현대차그룹)는 언제나 혁신가였고, 미래를 창조하고 발전시키려는 야망이 지금도 회사에 뚜렷하다”고 말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어렸을 적 할아버지인 정주영 현대그룹 선대 회장의 서울 청운동 자택에 함께 살며 ‘밥상머리 교육’을 받았다. 정 회장(왼쪽 동그라미)은 선대 회장(오른쪽 동그라미)과 등산도 자주 다녔다. 한경DB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어렸을 적 할아버지인 정주영 현대그룹 선대 회장의 서울 청운동 자택에 함께 살며 ‘밥상머리 교육’을 받았다. 정 회장(왼쪽 동그라미)은 선대 회장(오른쪽 동그라미)과 등산도 자주 다녔다. 한경DB
정 회장은 서울 청운동 할아버지 자택에서 ‘밥상머리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교육의 시작은 인성과 기본예절이었다. 매일 새벽 5시 가족들과 식사하면서 “남을 배려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 자신을 낮추면서 남을 높이는 기본예절을 배워야 한다”는 말을 숱하게 들었다. 그에게 겸손이 몸에 배어 있는 이유다.

학창 시절 친구들이 얘기하는 정 회장에 대한 기억도 ‘배려’다. 정 회장이 서울 구정중으로 전학을 가기 전에 다녔던 오산중엔 형편이 어려운 친구가 많았다. 정 회장은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힘든 친구를 집으로 데려가 같이 살기도 했다. 아버지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했기에 가능했다.

그렇다고 재벌 티를 낸 것은 아니었다. 휘문고 재학 시절 얘기. 한 친구가 반찬으로 초당두부를 싸 갔는데, 정 회장이 ‘우리 할아버지도 초당두부를 좋아하신다’고 해 자연스럽게 강릉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 그러다 정 회장이 강원도가 고향인 정주영 선대 회장의 손자인 것을 알고 이 친구가 깜짝 놀랐다는 것이다.

학창 시절 정 회장은 수학과 역사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수학은 논리적 사고의 틀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는 과거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힘을 길러준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꼈다. 정 회장과 대화를 나눠본 직원들이 한결같이 그의 미래 인사이트에 감탄하게 된 배경이다.

밥상머리 교육 때부터 기른 생활 습관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정 회장은 해외 출장을 갈 때 빼고는 보통 저녁 9시30분에 자고, 새벽 5시에 일어난다. 출근은 새벽 6시30분이다. 곧바로 임직원은 물론 지인들이 보낸 모든 이메일을 체크하고 답장까지 보낸다. 이어 신문을 정독한다. 현대차 관련 기사는 물론 정책, 국제 기사와 칼럼까지 꼼꼼히 읽으며 생각을 정리한다.

·· 섞은 친친주 건네며 친분 쌓아

1993년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정 회장은 현대정공(현대모비스)에 입사한 뒤 1년 만에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엄격했던 아버지였지만 ‘이래라저래라’ 강요하는 대신 아들의 결정을 존중하고 격려했다. 유학 시절 갈고 닦은 영어 실력은 훗날 큰 자산이 됐다. 2019년 글로벌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세계 3대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미국 칼라일그룹의 이규성 공동대표와 30분간 영어로 대담을 나눴을 정도로 능통하다.

정 회장은 유학 중 어릴 때부터 알았던 지금의 부인 정지선 씨와 본격적으로 교제했다. 정도원 삼표 회장의 장녀인 지선 씨는 서울대 음대를 졸업한 재원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결혼에는 넘어야 할 장애물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성(姓)이 같으면 ‘같은 집안사람 아니냐’는 선입견이 있어 반대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때 정주영 회장이 나섰다. 정주영 회장이 “하동 정씨(정의선 회장)와 김포 정씨(정지선 씨)는 본이 다르니 혼사를 시켜도 괜찮다”고 지지한 것이다.
'친친주' 건네주며 회식…겸손 무장한 '톱3 완성차 기업' 회장님
1995년 결혼하고, 199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대 대학원 경영학과를 졸업한 정 회장은 일본 이토추상사 뉴욕지사에서 근무하며 글로벌 경험을 쌓았다. 1999년 귀국해 현대차 구매실장·영업지원사업부장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회사 일을 시작했다. 향후 본격적인 경영을 위해선 소재와 부품을 어디서, 어떻게 조달하고, 어디에, 얼마나 배치해야 할지부터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이사, 상무로 승진한 데 이어 국내영업본부 부본부장(전무), 기획총괄본부 부본부장(부사장) 등을 맡으며 차근차근 경영능력을 쌓아갔다. 단지 ‘오너가’라는 이유로 곧바로 경영에 참여하는 구태에서 벗어나 실력을 검증받은 경영인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다.

이 시절 임직원 역시 정 회장의 인간성에 매료됐다. 정 회장은 회사 복도에서 직원들을 만날 땐 늘 먼저 인사했다. 회식이 끝난 뒤엔 자신보다 나이 많은 임원을 모두 배웅한 뒤 귀가했다. 정 회장과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기울이다 보면 오너가라는 사실을 깜빡 잊을 정도로 격의 없는 모습이었다.

그는 소주 두세 병은 거뜬히 마실 정도로 주량이 세다. 주종도 딱히 가리지 않는다. 특히 친분을 쌓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면 자신만의 ‘친친주’를 건넨다. 친친주는 소주와 맥주, 사이다를 일정 비율로 섞은 술이다.

재계 총수들과의 친분도 두텁다. 어렸을 때부터 최태원 SK 회장과 가깝게 지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도 종종 식사하며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눌 정도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정 회장은 사석에서 그들을 ‘형님’으로 부른다.

그는 이제 그룹 회장임에도 사석에선 손님에게 상석을 양보한다. 여전히 자신이 말을 많이 하기보다 상대방의 얘기를 많이 듣는 스타일이다. 늘 겸손하다 보니 두루 인기가 많다. 주변 시선을 의식해 행동하는 것도 경계한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정 회장에게 늘 “기업인은 정치인이 아니다. 인기나 남의 시선을 의식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낙하산 오너 아닌 진짜 경영인

정몽구 명예회장은 2005년 하나뿐인 아들을 ‘꽃길’이 아니라 ‘험지’로 보내 경영 능력을 시험했다. 정 회장을 기아 사장으로 보낸 것이다. 당시 기아는 국내 레저용차량(RV) 시장 위축 속에 원·달러 환율 하락까지 겹쳐 최악의 시기를 맞고 있었다.

주위에선 ‘오너 3세가 경력 관리에 실패하면 나중에 승계가 어려울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까지 나왔지만 정 회장은 임원 회의에서 “여기(기아)에 나를 걸겠다”고 선언했다. “절대 도망가지 않겠다. 한번 도망가면 다음에 또 그렇게 된다”고 했다.
 정의선 회장은 기아 사장 시절 어려움에 빠졌던 회사를 ‘디자인 경영’으로 살려냈다. 정 회장이 2006년 3월 서울 양재동 사옥에서 소니 퍼듀 미국 조지아주 주지사와 2009년까지 조지아주에 연산 30만 대 규모의 자동차 공장을 설립하는 내용의 투자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정 회장과 퍼듀 주지사 사이에 정몽구 명예회장이 서있다. 한경DB
정의선 회장은 기아 사장 시절 어려움에 빠졌던 회사를 ‘디자인 경영’으로 살려냈다. 정 회장이 2006년 3월 서울 양재동 사옥에서 소니 퍼듀 미국 조지아주 주지사와 2009년까지 조지아주에 연산 30만 대 규모의 자동차 공장을 설립하는 내용의 투자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정 회장과 퍼듀 주지사 사이에 정몽구 명예회장이 서있다. 한경DB
그는 사장 취임 직후 제조·설계 원가 절감에 주력했다. 단순히 부품 단가를 낮추는 게 아니라 상품 기획 단계부터 목표 원가를 정해 설계하는 것이 핵심이다. 꾸준한 노력 덕분에 기아의 원가 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다.

정 회장은 또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꼽히는 피터 슈라이어 폭스바겐 디자인 총괄을 직접 찾아가 영입했다. 정 회장의 ‘디자인 경영’은 기아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했다. R시리즈와 K시리즈가 연이어 히트하며 기아 대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기아 글로벌 진출의 초석도 이 시기에 마련됐다. 유럽 전진기지인 슬로바키아 공장(연산 33만 대)은 2006년 말 현지 전략 차종 ‘씨드’를 양산하며 가동을 시작했다. 씨드는 지금도 유럽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기아 차종이다. 북미 시장을 개척한 조지아 공장(연산 34만 대)은 2009년 말 가동되며 기아를 한 단계 도약시켰다. 정 회장이 ‘낙하산 오너’가 아니라 ‘진짜 경영인’임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

한국 양궁, 세계 최정상 올린 정 회장

2016년 8월 13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올림픽 양궁 남자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딴 구본찬 선수는 경기 직후 정의선 대한양궁협회장부터 찾았다. 구 선수는 “회장님 금메달 따왔습니다”라며 정 회장의 목에 메달을 걸었다. 정 회장은 “고맙다”며 구 선수를 껴안았다. 이날 저녁 대표단 선수들은 한데 모여 정 회장을 헹가래했다. 한국 양궁에서 정 회장이 차지하는 위상을 보여준 사례다.

정 회장의 양궁 사랑은 아버지에 이어 2005년 대한양궁협회장을 맡으면서 계속되고 있다. 선수들이 시합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물론 주요 국제경기 때마다 현지에서 직접 응원까지 펼친다.

2012년 런던올림픽 땐 경기장에서 가까운 숙소와 한식을 따로 지원했다. 2016년 리우올림픽에선 선수단 전용 트레일러, 휴게실, 물리치료실, 샤워실 등을 마련했다. 선수들이 우승 때마다 가장 먼저 정 회장에게 달려가는 이유다. 2021년 도쿄올림픽에서 3관왕을 차지한 안산 선수는 정 회장의 축하에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정 회장은 2021년 양궁인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13대 협회장으로 재선출됐다.
정의선 회장은 2005년부터 대한양궁협회장을 맡으면서 한국 양궁 발전을 위해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2016년 8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올림픽 양궁 경기가 끝난 뒤 선수단이 정 회장을 헹가래하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연합뉴스
정의선 회장은 2005년부터 대한양궁협회장을 맡으면서 한국 양궁 발전을 위해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2016년 8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올림픽 양궁 경기가 끝난 뒤 선수단이 정 회장을 헹가래하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연합뉴스
어느덧 한국 양궁은 현대차그룹과 닮아가고 있다. 고객을 향한 끝없는 변화와 혁신, 실력 우선주의, 팀워크, 실전 같은 대비 등 현대차그룹의 성공 공식을 한국 양궁에 적용한 결과다. 현대차그룹이 양궁에서 배우는 것도 많다. 정 회장은 지난해 모교인 고려대 졸업식 영상 축사에서 “오랜 시간 우리 양궁 선수들을 지켜보면서 완벽한 순간을 만드는 비결은 바로 ‘반복’이라는 것을 배웠다”고 전했다.

사실 정 회장은 어렸을 때부터 ‘운동광’이었다. 테니스, 수영, 스키 등 운동 실력이 수준급이다. 어렸을 적 할아버지, 아버지와 종종 다니던 등산도 지금까지 즐긴다. 골프도 그가 좋아하는 운동이다. 드라이버 거리가 230m에 달하는 장타자이면서 주말 골퍼로는 수준급인 80대타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운영하는 ‘해비치 컨트리클럽 서울’ 등을 종종 찾는다.
정의선 회장은 세계적인 골프 선수 타이거 우즈(오른쪽 첫 번째)와 손잡고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을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특급 대회’로 격상시켰다. 2022년 2월 대회에서 정 회장과 우즈 선수가 우승자인 호아킨 니만 선수를 축하하고 있다. 한경DB
정의선 회장은 세계적인 골프 선수 타이거 우즈(오른쪽 첫 번째)와 손잡고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을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특급 대회’로 격상시켰다. 2022년 2월 대회에서 정 회장과 우즈 선수가 우승자인 호아킨 니만 선수를 축하하고 있다. 한경DB
그의 성품은 골프 매너에서도 잘 드러난다. 본인이 초대한 모임에서는 꼭 남성 캐디를 찾는다. 공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갔을 때 공을 찾으러 가는 여성 캐디를 보기 미안해서다. 캐디피도 정액보다 훨씬 후하게 지급한다. 본인이 회사 오너라는 이유로 다른 손님을 모실 때보다 고생이 심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세계 유명 골퍼들과 친분도 두텁다. 2021년 제네시스 GV80를 타고 가다 큰 사고를 당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건강을 회복한 뒤 정 회장에게 식사를 대접했다. GV80의 안전성 덕에 더 크게 다치지 않아 고맙다는 이유에서였다. 두 사람은 2017년 손을 잡고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을 ‘특급 대회’로 격상시키며 친분을 쌓았다.

제네시스, 글로벌 名車 반열로

사실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의 출발을 이끈 것도 정 회장이다. 2015년 11월 4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알림1관. 정 회장이 6년 만에 국내 공식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또 하나의 새로운 출발을 하고자 한다”며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의 출범을 선언했다. 당시 회사 안팎에서는 글로벌 시장에서 ‘가성비’로 승부하던 현대차가 프리미엄 브랜드를 내놓는 건 무리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그러나 제네시스는 고급차 시장에 빠르게 안착했다. 국내 프리미엄 시장에서 경쟁 브랜드를 압도한 데 이어 미국 등 해외에서도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올해 4월까지 92만4521대가 팔리며 누적 판매 100만 대 돌파를 눈앞에 뒀다.
정의선 회장은 2015년 현대차의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를 성공적으로 출범시켰다. 제네시스는 오는 7월께 누적 판매 100만 대 돌파가 예상된다. 한경DB
정의선 회장은 2015년 현대차의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를 성공적으로 출범시켰다. 제네시스는 오는 7월께 누적 판매 100만 대 돌파가 예상된다. 한경DB
현대차 전체 판매에서도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현대차 글로벌 판매 중 제네시스 비중은 2016년 1.2%에서 지난해 5.4%로 높아졌다. 일본 도요타의 고급 브랜드 렉서스는 1989년 출범 후 32년 만인 2011년에야 도요타 전체 판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넘었다. 제네시스는 렉서스의 성장 역사를 4분의 1로 단축해 달성한 셈이다.

현대차의 도전정신이 없었다면 제네시스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란 평가가 많다. 정 회장은 브랜드 출범 당시 “뭐든지 도전해야 변화할 수 있고 바뀌어야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고 강조했다. 고급차 브랜드를 성공하지 못하면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제네시스는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연내 개인 맞춤 차량인 비스포크 사양을 정식 출시한다. 브랜드는 ‘원오브원(one of one)’이다. ‘나만을 위한 단 하나의 차’란 개념으로, 럭셔리 자동차 시장 공략을 강화하려는 전략이다. 전기차 전환도 가속화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브랜드 중 가장 빠르게 2025년부터 내놓는 모든 신차를 전기차로 출시하겠다는 계획이다.

현대차그룹, 세계 3위 완성차 회사 등극

정 회장이 2018년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하며 사실상 지휘봉을 잡은 다음부터 현대차그룹은 완전히 새로운 회사로 거듭나고 있다. ‘넥타이 부대’ ‘군대식 문화’로 이름 높았던 현대차그룹은 이제 가장 진보적인 기업문화로 1등 하는 회사가 됐다.

정 회장은 복장은 물론 근무 시간·장소를 자율화했다. 여름철이면 반바지에 샌들을 신은 직원도 쉽게 볼 수 있다. 2019년에는 국내 대기업 최초로 신입사원 정기 공채를 없앴다. 각각 6단계, 5단계에 이르던 임원과 직원 직급도 4단계, 2단계로 단순화했다. 회사 내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고 효율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갖추겠다는 의지에서다. 장황한 보고서와 대면 결재까지 없앴다. 급할 땐 모바일 메신저로 보고받고 피드백도 몇 시간 안에 직접 한다.

2020년 그가 회장을 맡은 지 3년 만에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완성차 시장의 판을 뒤집고 있다. 2010년 글로벌 판매 5위에 오른 지 12년 만인 지난해 판매 3위로 등극했다. 올해 1분기에는 영업이익 6조4667억원을 거두며 세계 1위 도요타마저 넘어섰다. 코로나19에 이은 반도체 공급난, 전기차 수요 급증에 선제적으로 대응한 결과다.

전문가들은 현대차그룹이 과거 ‘패스트 팔로어’에서 ‘퍼스트 무버’로 변신했다고 평가한다. “2026년에는 도요타와 폭스바겐을 제치고 세계 판매 1위에 올라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의선 회장이 2022년 1월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에서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네 발로 걷는 로봇 ‘스팟’ 과 함께 무대에 오르고 있다. 김병언 기자
정의선 회장이 2022년 1월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에서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네 발로 걷는 로봇 ‘스팟’ 과 함께 무대에 오르고 있다. 김병언 기자
정 회장은 다시 미래를 고민하고 있다. 도심항공교통(UAM), 로보틱스 등 미래 모빌리티산업을 선도하기 위해서다. 그러면서 다시 할아버지, 아버지를 생각한다. 현대차는 지난달 이탈리아 코모호수에서 ‘현대 리유니온’ 행사를 열고 ‘포니 쿠페 콘셉트’ 복원 모델을 최초 공개했다. 과거를 돌아봄으로써 미래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그는 “정주영 선대 회장은 1970년대 ‘완벽하게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는 나라는 심지어 항공기까지 무엇이든 생산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독자적인 한국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실현했다”며 “정주영 선대 회장님과 정세영 회장님, 정몽구 명예회장님, 그리고 우리 모두의 노력으로 오늘날 우리가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의 역사도 이제 50년을 바라본다. 정 회장은 “계속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지만 과거를 정리하고 알아가면서 다시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