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노잼' 금융광고
얼마 전 유튜브를 켰다가 반가운 일이 있었다. 필자가 브랜드 담당 임원으로 재직하던 시절에 직원들과 만들었던 광고 영상 ‘하늘 같은 든든함, 아버지’ 편이 놀랍게도 목록 상단에 떠 있었던 것이다. “8년 전 광고 영상이 왜?”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종일 신기하고 내심 즐거운 마음이 컸다.

가족의 소중함을 주제로 한 이 영상은 2015년도 당시 기업 광고로는 매우 이례적으로 한 달여 만에 유튜브 조회수 500만 건을 기록하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여러 언론사에서 광고 제작 배경에 대한 인터뷰를 요청해 올 정도로 화제가 됐었다. 개인적으로도 애착을 가진 광고지만, 이번에 필자가 더 놀란 건 8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 이 영상의 조회 수가 자그마치 1100만 건에 달했기 때문이다. 댓글창 제일 꼭대기에는 7000개의 ‘엄지 척’과 함께 “2023년도에도 보고 우시는 분?”이라는 댓글이 달려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 중에는 “옛날에 그 ‘아버지’ 광고, 진짜 좋았다” “아직도 그 광고가 가슴 찡하게 남아있다”며 기억해주는 이들이 종종 있다. 참 감사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광고를 왜 다시 못 만들어?” 또는 “요즘 만드는 광고는 왜 이렇게 밋밋해?”라는 핀잔처럼 들려 마음이 무겁기도 하다.

금융회사 광고는 대체로 뻔하거나 고루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요즘 말로 ‘노잼’이다. 무난하긴 하지만 특이점을 찾기 힘들다. 동의한다. 하지만 영상광고는 시청각적 요소를 자극하는 게 중요한데, 실체가 보이지 않는 금융상품은 기본적으로 재미를 섞어 광고하기가 쉽지 않다.

보험은 존재론적 한계도 지니고 있다. 보험은 미래를 위한 약속이자 고객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그렇기에 보험회사는 변화보다는 안정을, 유행보다는 뚝심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약속한다’ ‘한결같다’ ‘함께한다’ 등 보험 광고의 전형적 클리셰들에는 이루 다 말 못할 고민이 서려 있는 것이다.

다행히 올해 우리 회사에서 만든 자녀보험 광고는 비교적 재밌다는 평을 받는다. 육아멘토 오은영 박사와 ‘서준맘’이라는 부캐로 더 유명한 개그우먼 박세미 씨를 더블캐스팅한 것이 주효했다. 오 박사의 신뢰도야 말할 것도 없고, 서준맘 특유의 하이텐션과 애드리브 덕에 보험광고치고는 꽤 선방할 수 있었다.

‘마케팅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이비드 오길비는 “재미없는 제품이란 없다. 재미없는 카피라이터만 있을 뿐”이라고 했다. 따끔한 조언이다. 금융광고에도 재미와 감동을 더하는 노력이 계속 이어져 사람들에게 “그래그래, 그 광고!”로 회자되는 작품이 많이 탄생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