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을 선언한 지 30년 되는 날이었다. 삼성은 기념행사와 대내외 메시지 없이 차분하게 신경영 선언 30주년을 맞았다. 글로벌 복합위기와 반도체 패권 경쟁 속에서 삼성이 직면한 도전의 엄중함을 반영한 것이라는 평가다. 이 선대회장은 당시 삼성 임원 200여 명을 소집해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된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야 한다”면서 뼈를 깎는 혁신을 주문했다. 제품은 물론 체질과 관행, 의식, 제도를 양(量) 위주에서 질(質) 위주로 바꾸라는 절절한 호소이자 명령이었다.

한 세대가 흘렀다. 삼성전자는 현재 메모리 반도체와 TV, 스마트폰 등 10개 품목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 D램이 없다면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삼성이 이룬 지난 30년의 혁신과 성취는 있는 그대로 평가받아야 한다. 투자와 고용, 수출 등에서의 기여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초일류 기업, 현재 삼성의 위상은 그러나 과거 성취의 결과일 뿐이다. 새로운 비전과 혁신이 없다면 삼성의 미래가 밝을 수만은 없다.

1993년 28조원에 불과했던 삼성전자 매출은 2008년 100조원을 돌파했고 2016년 200조원, 2022년엔 300조원을 넘어서는 등 파죽지세로 성장했다. 하지만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구글 메타 등 삼성보다 역사가 짧거나 비슷한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성장세는 그 이상이다. 테슬라, 엔비디아와 같은 혁신 기업이 끝없이 등장해 세상을 바꾸고 있다. 특히 최근의 인공지능(AI) 혁명은 세계 산업계의 판도를 일거에 뒤흔들 변수로 떠올랐다. 삼성이 앞으로도 미래 산업의 주역이 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신경영 선언 30주년을 맞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뉴비전을 고대하는 이유다. 사법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게 부담일 수 있겠다. 하지만 더 적극적으로 나설 때가 됐다. 이재용의 경영철학, 그리고 새로운 30년의 비전을 그의 언어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활활 타오르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는 임직원들의 열의와 열정에도 다시 불이 붙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