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고 싶었다"…공직의 '꽃' 사무관 그만두고 광야로 나온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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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고시 합격 '영광' 내려놓고
새 길 찾아 민간으로 나온 사무관들 좌담회
공직 떠난 이유는?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공직사회는 그대로...주어진 레인 벗어나고 싶었다"
"젊은 나이에 큰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매력이지만 어느 순간 한계"
공직의 한계는?
"다양성-전문성 없이 제네럴리스트만 키우는 순환보직제"
"세종 이전 이후 민간과 유리된채 성장 멈춰"
공직사회에 제언한다면?
"최고 인재들이 몰린 공직...경쟁력 살려주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퇴사를 '이탈'로 볼게 아니라 민관 있는 인재풀로 활용해야"
새 길 찾아 민간으로 나온 사무관들 좌담회
공직 떠난 이유는?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공직사회는 그대로...주어진 레인 벗어나고 싶었다"
"젊은 나이에 큰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매력이지만 어느 순간 한계"
공직의 한계는?
"다양성-전문성 없이 제네럴리스트만 키우는 순환보직제"
"세종 이전 이후 민간과 유리된채 성장 멈춰"
공직사회에 제언한다면?
"최고 인재들이 몰린 공직...경쟁력 살려주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퇴사를 '이탈'로 볼게 아니라 민관 있는 인재풀로 활용해야"
‘행정고시’는 한국의 경제 발전사를 논할 때 결코 빠지지 않는 제도다. 해방 이후 척박한 환경 속에서 1949년 국가공무원법이 제정되며 시작된 행정고시는 공직사회에 젊은 엘리트 인재들을 영입하는 통로가 되며 한국이 반세기만에 최빈국에서 선진국 대열로 올라서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0년부터 ‘5급 공채’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공직사회 내에서나 일반 대중들에겐 여전히 ‘행시’로 통하는 이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매년 전국 유수의 인재들이 신림동 고시촌을 찾는다. 하루 종일보는 IQ테스트나 다름없는 1차 시험과 5일 간 경제학, 행정법, 행정학 등 전공 과목 실력을 겨루는 2차, 마지막으로 6명 가운데 1명은 떨어지는 이틀 간의 3차 면접까지 피말리는 경쟁을 이겨낸 이들만이 ‘공직사회의 꽃’이라 불리는 5급 사무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처럼 청춘을 불사르며 얻어낸 사무관이란 자리를 내려놓고 다른 꿈을 찾아떠나는 이들이 최근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지난해 자발적으로 공직을 떠난 사무관만 500명에 이른다. 우리 경제의 컨트롤타워로 공직사회 내에서도 최고 엘리트 집단으로 꼽히는 기획재정부도 예외는 아니다.
본지는 기재부를 떠나 대기업, 벤처, 법조계, 학계, 국제기구 등으로 진출한 6명의 전직 사무관들과 좌담회를 갖고 이들이 공직을 떠난 이유와 소위 ‘광야(廣野)’로 나와 얻게 된 생각을 들어봤다. 이들 대다수가 기재부에서 “성장의 한계를 느꼈다”고 말했다. 전문성보단 ‘승진’ 자체를 위한 수단으로 존재하는 인사 경로, 세종시 이전과 김영란법 시행 이후 갈라파고스섬처럼 점점 더 민간과 유리된 채 직장으로서의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얘기다.
젊은 공무원들의 퇴사를 공직을 등진 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 공공 인재풀의 확장이라 보고 폐쇄적인 인사 시스템을 깨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제안도 내왔다. 복잡해진 사회만큼 공직사회 역시 다양한 니즈(수요)를 가진 인재를 담을 수 있는 곳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황정환 한국경제신문 기자(사회)=자기 소개를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신병진 SL파트너스 대표변호사(이하 신병진)=2009년에 행정고시를 합격해 2011년부터 기재부에서 일을 했습니다. 소득세제과 등 세제실에서 주로 근무를 하다 2016년에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갔습니다. 로스쿨 졸업 후 2019년부터 법무법인 율촌에서 조세, 가상자산 쪽 자문을 했고, 얼마전 독립해서 제 법무법인을 차렸습니다.
▷이현우 피플펀드 정책전략총괄팀장(이하 이현우)=2011년부터 사무관 생활을 시작해 국세청에서 2년을 근무하고, 기재부로 옮겨서 2022년 4월까지 근무했습니다. 기재부에선 세제실, 경제구조개혁국에서 근무했습니다. 퇴직 후엔 개발자로 잠시 일을 했고 지금은 온라인 투자연계 금융기관인 피플펀드에서 사업 전략과 대관 파트를 맡고 있습니다.
▷정호용 국민대 경제학과 부교수(이하 정호용)=2008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2010년부터 기재부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대외경제국, 경제구조개혁국 등에 있었고 중간에 유학을 가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았습니다. 귀국 후 기재부에 복귀했다 학계로 나왔고, 지금은 국민대 경제학과 부교수로 있습니다.
▷이정선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전문관(이하 이정선)=2009년에 행시를 합격해 2010년부터 기재부에서 일했습니다. 기재부에선 국고국, 정책조정국에 있었고 2018년부터 필리핀 마닐라에 있는 아시아개발은행(ADB)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ADB에선 각국 대표들로 구성된 이사회 운영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백산 쿠팡 프로덕트매니저(이하 백산)=2007년 국회 사무처에서 일을 하다 2008년부터 3년 간 기재부 경제정책국에서 3년 간 공직생활을 했습니다. 2011년 스탠퍼드 경영대학원(MBA)유학을 가서 마치면서 공직을 그만뒀고,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에버노트, 몰로코등 테크 회사에서 일했습니다. 작년 11월 쿠팡으로 이직해 광고사업을 맡고 있습니다.
▷김가람 SK수펙스 프로젝트리더(이하 김가람)=2009년부터 12년 간 기재부에서 일했습니다. 2021년에 국회의원실 비서관으로 이직해 1년 정도 일하다 작년부터 SK수펙스추구협의회에서 그룹사에 영향을 미치는 국제 규제 동향을 모니터링하고 대책을 세우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사회=공직을 떠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현우=언제부턴가 갑갑함을 느꼈습니다. 초년 사무관 때 일에 치여살면서 정신이 없었는데 10년차가 되니 제 앞날이 너무 쉽게 그려졌습니다. 승진을 하면 어딜 다녀오고 과장이 되 어느 보직을 거치면 국장이 되고 하는 식이지요. 미래가 구체적으로 보이니 갑갑해서 조금 더 불확실성이 열려있는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백산=다이나믹하고 성장하는 삶을 살고 싶어 행시를 봤습니다. 분명 사회 초년 젊은 나이에 아무나 할 수 없는 경험을 공직에서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공직사회의 일하는 방식이나 모든 것들은 그에 비해 너무 느리고, 나 역시 주어진 레인을 벗어날 수 없겠단 위기감이 들었습니다.
▷김가람=어느 순간 정책을 결정하는 힘이 정부에서 의회로 넘어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바꿔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 공직을 택했는데, 나라 일을 하는 입장에서 좀 더 실효성이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사회=더 큰 성장을 하기엔 한계를 느끼거나 경직적인 인사 경로가 갑갑했다는 것이군요.
▷백산=사무관이란 자리는 처음에 배우는 것이 정말 많은 자리임은 분명합니다.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위한 ‘보고서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을 집중적으로 트레이닝합니다. 하지만 그것 이상으로 창의적인 답을 찾기 위해 토론을 한다거나 사람을 매니징하는 그런 것을 경험하기엔 조직의 일하는 방식이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현우=앞의 얘기처럼 사안을 빠르게 정리해서 전달하는 것은 배웠지만 정책을 만들 때 충분히 숙려되지 못하다고 느낀 적이 많았습니다. 국회 단계로 넘어간 일 역시 충분히 숙려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고 내가 일을 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비단 기재부 뿐 아니라 공직 전체의 한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사회=공직사회가 전문성을 키워주지 못한다는 뜻일까요
▷신병진=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 출장을 가보니 다른 나라 사람들은 다들 그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해 서로 친한데 한국 사람들과는 서먹서먹한 게 느껴졌습니다. 순환보직제에 따라 1~2년마다 담당자가 바뀌다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순환보직제는 결국 장차관처럼 전체를 총괄하는 제네럴리스트를 육성하기 위한 시스템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지금은 공무원 조직 자체가 커지면서 행시가 곧 장차관이란 공식이 깨졌음에도 우리는 아직도 행시 출신인 것만으로 고위 관료로 가는 동일한 사람이란 프레임에 갖혀 전문성이나 다양성을 인사 제도에 녹여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가람=기재부 정책 라인을 예로 들면 내게 주어지는 어떤 ‘기회’들이 공무원으로서의 나를 성장시키고 여기서 배운 것들이 곧 전문성이라 생각합니다. 제네럴리스트로서의 공무원은 수많은 사안의 이해관계자와 전문가들을 만나며 보다 효과적인 정책을 만들어나가고 그 과정에서 성장이 이뤄진다고 보는데 당장 제가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던 10여년 전보다도 그런 기회들이 줄고 점차 사라져간다고 느꼈습니다. 지금 세종시의 공무원들은 국책 연구기관을 빼면 맘 편히 볼 수 있는 상대가 없습니다.
▷정호용=저는 조금은 다르게 생각합니다. 전 기재부 공무원의 전문성은 기재부라는 조직이 오랜 기간 쌓아온 방대한 유무형의 자산들과 일하는 방식을 배우는 데 있다고 봅니다. 이런 것들은 기재부, 나아가 공직이 아니라면 배울 수 없는 것들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선 공직사회가 전문성을 키워주지 못한다고만 볼 순 없어보입니다.
▷이정선=전문가는 결국 ‘프로블럼 솔빙’(문제 해결)을 하는 사람인데 기재부는 정책 과정에서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하는 과정에 특화된 조직이라 생각합니다. 문제해결 능력 자체가 전문성이 아닐까요.
▷사회=최근 행시 출신들의 퇴사 현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가람=성과에 대한 보상이 점차 희미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재부에선 소위 자신을 갈아넣어 일을 한다고들 많이 얘기합니다. 과거에는 그렇게 7~8년을 고생하면 유학이나 국제기구 파견을 통해 잠시 템포를 늦추고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고, 그런 시간들을 버티면 승진하는 패턴이 존재했습니다. 그게 공무원들이 일을 하는 동력이기도 했구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언젠가부터 그 패턴은 무너지고 공무원들의 혹사에 의존하는 구조만이 남았습니다.
▷이정선=MZ세대는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무엇이든 해보고 싶은 것을 한번 도전해보는 그런 세대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회가 변하고 있고 기재부도 사회의 트렌드 안에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세종시 이전이 공무원과 공직사회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신병진=세종시로의 이전과 김영란법이 정부와 민간 사이에 일종의 ‘선’을 그어버린 것 같습니다. 10년 전만해도 기재부나 공정위의 공무원들이 정책을 만들 때 민간 관계자들과 만나 이야기하는 것을 크게 꺼리지 않았고, 죄악시되지도 않았습니다. 이제는 물리적으로도 법적으로도 선이 그어졌습니다. 요즘 공무원들은 민간 사람을 만나도 정말 믿을 수 있는 사람만 만난다고 합니다. 이런 것들이 젊은 공무원들에게 한편으론 성장의 동력을 꺾는 요소로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현우=서울에 모든 것이 모여 있는 한국에서 세종에 동떨어져 있다보니 젊은 세대 공무원들의 꿈도 그만큼 축소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윗 세대는 청운의 꿈을 품고 야심가들이 많았는데 또래 공무원들에게 이야길 들어보면 많이들 그런 꿈을 접었습니다.
▷사회=민간의 몸을 담고 있는 입장에서 공직 사회와 젊은 공무원들에게 제언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까
▷백산=외국에서 10년 넘게 지내면서 한국 사회가 너무 위험 기피적이고 위축돼있고 다른 사람 눈치를 보며 정답만 찾는 사회가 아닌가 하는 고민을 했습니다. 한 때 한국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들이 공직에 들어왔다가 지금은 로스쿨로 몰리고 있다는데 과연 공공조직이 인재들이 가진 높은 경쟁력을 제대로 살리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합니. 젊은 공무원들에겐 약간 다른 길을 간다고 해서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란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이정선=저희가 모일 때 “우리는 늘공, 어공도 아니고 ‘비공’들”이라고 말합니다. 비(非)공이 아니라 비욘드(Beyond·그 너머)공무원이란 뜻입니다. 각자가 추구하는 바를 따라 새로운 영역으로 왔지만 비공들은 얼마가 됐든 공무원 출신만의 색깔을 갖고 각자의 추구하는 바를 찾아갑니다. 비공들을 그저 공직을 떠난 사람이라고 볼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영역을 이어줄 수 있는 매체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정호용=공무원들의 퇴사를 그저 공직 이탈이라고 볼 것이 아니라 공공 인재풀의 확장이라 보고 폐쇄적인 인사 시스템을 깨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복잡해진 사회만큼 공직사회 역시 다양한 수요를 가진 인재를 담을 수 있는 곳으로 바뀔 필요가 있습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2010년부터 ‘5급 공채’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공직사회 내에서나 일반 대중들에겐 여전히 ‘행시’로 통하는 이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매년 전국 유수의 인재들이 신림동 고시촌을 찾는다. 하루 종일보는 IQ테스트나 다름없는 1차 시험과 5일 간 경제학, 행정법, 행정학 등 전공 과목 실력을 겨루는 2차, 마지막으로 6명 가운데 1명은 떨어지는 이틀 간의 3차 면접까지 피말리는 경쟁을 이겨낸 이들만이 ‘공직사회의 꽃’이라 불리는 5급 사무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처럼 청춘을 불사르며 얻어낸 사무관이란 자리를 내려놓고 다른 꿈을 찾아떠나는 이들이 최근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지난해 자발적으로 공직을 떠난 사무관만 500명에 이른다. 우리 경제의 컨트롤타워로 공직사회 내에서도 최고 엘리트 집단으로 꼽히는 기획재정부도 예외는 아니다.
본지는 기재부를 떠나 대기업, 벤처, 법조계, 학계, 국제기구 등으로 진출한 6명의 전직 사무관들과 좌담회를 갖고 이들이 공직을 떠난 이유와 소위 ‘광야(廣野)’로 나와 얻게 된 생각을 들어봤다. 이들 대다수가 기재부에서 “성장의 한계를 느꼈다”고 말했다. 전문성보단 ‘승진’ 자체를 위한 수단으로 존재하는 인사 경로, 세종시 이전과 김영란법 시행 이후 갈라파고스섬처럼 점점 더 민간과 유리된 채 직장으로서의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얘기다.
젊은 공무원들의 퇴사를 공직을 등진 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 공공 인재풀의 확장이라 보고 폐쇄적인 인사 시스템을 깨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제안도 내왔다. 복잡해진 사회만큼 공직사회 역시 다양한 니즈(수요)를 가진 인재를 담을 수 있는 곳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황정환 한국경제신문 기자(사회)=자기 소개를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신병진 SL파트너스 대표변호사(이하 신병진)=2009년에 행정고시를 합격해 2011년부터 기재부에서 일을 했습니다. 소득세제과 등 세제실에서 주로 근무를 하다 2016년에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갔습니다. 로스쿨 졸업 후 2019년부터 법무법인 율촌에서 조세, 가상자산 쪽 자문을 했고, 얼마전 독립해서 제 법무법인을 차렸습니다.
▷이현우 피플펀드 정책전략총괄팀장(이하 이현우)=2011년부터 사무관 생활을 시작해 국세청에서 2년을 근무하고, 기재부로 옮겨서 2022년 4월까지 근무했습니다. 기재부에선 세제실, 경제구조개혁국에서 근무했습니다. 퇴직 후엔 개발자로 잠시 일을 했고 지금은 온라인 투자연계 금융기관인 피플펀드에서 사업 전략과 대관 파트를 맡고 있습니다.
▷정호용 국민대 경제학과 부교수(이하 정호용)=2008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2010년부터 기재부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대외경제국, 경제구조개혁국 등에 있었고 중간에 유학을 가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았습니다. 귀국 후 기재부에 복귀했다 학계로 나왔고, 지금은 국민대 경제학과 부교수로 있습니다.
▷이정선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전문관(이하 이정선)=2009년에 행시를 합격해 2010년부터 기재부에서 일했습니다. 기재부에선 국고국, 정책조정국에 있었고 2018년부터 필리핀 마닐라에 있는 아시아개발은행(ADB)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ADB에선 각국 대표들로 구성된 이사회 운영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백산 쿠팡 프로덕트매니저(이하 백산)=2007년 국회 사무처에서 일을 하다 2008년부터 3년 간 기재부 경제정책국에서 3년 간 공직생활을 했습니다. 2011년 스탠퍼드 경영대학원(MBA)유학을 가서 마치면서 공직을 그만뒀고,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에버노트, 몰로코등 테크 회사에서 일했습니다. 작년 11월 쿠팡으로 이직해 광고사업을 맡고 있습니다.
▷김가람 SK수펙스 프로젝트리더(이하 김가람)=2009년부터 12년 간 기재부에서 일했습니다. 2021년에 국회의원실 비서관으로 이직해 1년 정도 일하다 작년부터 SK수펙스추구협의회에서 그룹사에 영향을 미치는 국제 규제 동향을 모니터링하고 대책을 세우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사회=공직을 떠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현우=언제부턴가 갑갑함을 느꼈습니다. 초년 사무관 때 일에 치여살면서 정신이 없었는데 10년차가 되니 제 앞날이 너무 쉽게 그려졌습니다. 승진을 하면 어딜 다녀오고 과장이 되 어느 보직을 거치면 국장이 되고 하는 식이지요. 미래가 구체적으로 보이니 갑갑해서 조금 더 불확실성이 열려있는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백산=다이나믹하고 성장하는 삶을 살고 싶어 행시를 봤습니다. 분명 사회 초년 젊은 나이에 아무나 할 수 없는 경험을 공직에서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공직사회의 일하는 방식이나 모든 것들은 그에 비해 너무 느리고, 나 역시 주어진 레인을 벗어날 수 없겠단 위기감이 들었습니다.
▷김가람=어느 순간 정책을 결정하는 힘이 정부에서 의회로 넘어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바꿔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 공직을 택했는데, 나라 일을 하는 입장에서 좀 더 실효성이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사회=더 큰 성장을 하기엔 한계를 느끼거나 경직적인 인사 경로가 갑갑했다는 것이군요.
▷백산=사무관이란 자리는 처음에 배우는 것이 정말 많은 자리임은 분명합니다.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위한 ‘보고서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을 집중적으로 트레이닝합니다. 하지만 그것 이상으로 창의적인 답을 찾기 위해 토론을 한다거나 사람을 매니징하는 그런 것을 경험하기엔 조직의 일하는 방식이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현우=앞의 얘기처럼 사안을 빠르게 정리해서 전달하는 것은 배웠지만 정책을 만들 때 충분히 숙려되지 못하다고 느낀 적이 많았습니다. 국회 단계로 넘어간 일 역시 충분히 숙려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고 내가 일을 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비단 기재부 뿐 아니라 공직 전체의 한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사회=공직사회가 전문성을 키워주지 못한다는 뜻일까요
▷신병진=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 출장을 가보니 다른 나라 사람들은 다들 그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해 서로 친한데 한국 사람들과는 서먹서먹한 게 느껴졌습니다. 순환보직제에 따라 1~2년마다 담당자가 바뀌다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순환보직제는 결국 장차관처럼 전체를 총괄하는 제네럴리스트를 육성하기 위한 시스템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지금은 공무원 조직 자체가 커지면서 행시가 곧 장차관이란 공식이 깨졌음에도 우리는 아직도 행시 출신인 것만으로 고위 관료로 가는 동일한 사람이란 프레임에 갖혀 전문성이나 다양성을 인사 제도에 녹여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가람=기재부 정책 라인을 예로 들면 내게 주어지는 어떤 ‘기회’들이 공무원으로서의 나를 성장시키고 여기서 배운 것들이 곧 전문성이라 생각합니다. 제네럴리스트로서의 공무원은 수많은 사안의 이해관계자와 전문가들을 만나며 보다 효과적인 정책을 만들어나가고 그 과정에서 성장이 이뤄진다고 보는데 당장 제가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던 10여년 전보다도 그런 기회들이 줄고 점차 사라져간다고 느꼈습니다. 지금 세종시의 공무원들은 국책 연구기관을 빼면 맘 편히 볼 수 있는 상대가 없습니다.
▷정호용=저는 조금은 다르게 생각합니다. 전 기재부 공무원의 전문성은 기재부라는 조직이 오랜 기간 쌓아온 방대한 유무형의 자산들과 일하는 방식을 배우는 데 있다고 봅니다. 이런 것들은 기재부, 나아가 공직이 아니라면 배울 수 없는 것들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선 공직사회가 전문성을 키워주지 못한다고만 볼 순 없어보입니다.
▷이정선=전문가는 결국 ‘프로블럼 솔빙’(문제 해결)을 하는 사람인데 기재부는 정책 과정에서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하는 과정에 특화된 조직이라 생각합니다. 문제해결 능력 자체가 전문성이 아닐까요.
▷사회=최근 행시 출신들의 퇴사 현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가람=성과에 대한 보상이 점차 희미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재부에선 소위 자신을 갈아넣어 일을 한다고들 많이 얘기합니다. 과거에는 그렇게 7~8년을 고생하면 유학이나 국제기구 파견을 통해 잠시 템포를 늦추고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고, 그런 시간들을 버티면 승진하는 패턴이 존재했습니다. 그게 공무원들이 일을 하는 동력이기도 했구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언젠가부터 그 패턴은 무너지고 공무원들의 혹사에 의존하는 구조만이 남았습니다.
▷이정선=MZ세대는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무엇이든 해보고 싶은 것을 한번 도전해보는 그런 세대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회가 변하고 있고 기재부도 사회의 트렌드 안에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세종시 이전이 공무원과 공직사회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신병진=세종시로의 이전과 김영란법이 정부와 민간 사이에 일종의 ‘선’을 그어버린 것 같습니다. 10년 전만해도 기재부나 공정위의 공무원들이 정책을 만들 때 민간 관계자들과 만나 이야기하는 것을 크게 꺼리지 않았고, 죄악시되지도 않았습니다. 이제는 물리적으로도 법적으로도 선이 그어졌습니다. 요즘 공무원들은 민간 사람을 만나도 정말 믿을 수 있는 사람만 만난다고 합니다. 이런 것들이 젊은 공무원들에게 한편으론 성장의 동력을 꺾는 요소로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현우=서울에 모든 것이 모여 있는 한국에서 세종에 동떨어져 있다보니 젊은 세대 공무원들의 꿈도 그만큼 축소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윗 세대는 청운의 꿈을 품고 야심가들이 많았는데 또래 공무원들에게 이야길 들어보면 많이들 그런 꿈을 접었습니다.
▷사회=민간의 몸을 담고 있는 입장에서 공직 사회와 젊은 공무원들에게 제언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까
▷백산=외국에서 10년 넘게 지내면서 한국 사회가 너무 위험 기피적이고 위축돼있고 다른 사람 눈치를 보며 정답만 찾는 사회가 아닌가 하는 고민을 했습니다. 한 때 한국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들이 공직에 들어왔다가 지금은 로스쿨로 몰리고 있다는데 과연 공공조직이 인재들이 가진 높은 경쟁력을 제대로 살리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합니. 젊은 공무원들에겐 약간 다른 길을 간다고 해서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란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이정선=저희가 모일 때 “우리는 늘공, 어공도 아니고 ‘비공’들”이라고 말합니다. 비(非)공이 아니라 비욘드(Beyond·그 너머)공무원이란 뜻입니다. 각자가 추구하는 바를 따라 새로운 영역으로 왔지만 비공들은 얼마가 됐든 공무원 출신만의 색깔을 갖고 각자의 추구하는 바를 찾아갑니다. 비공들을 그저 공직을 떠난 사람이라고 볼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영역을 이어줄 수 있는 매체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정호용=공무원들의 퇴사를 그저 공직 이탈이라고 볼 것이 아니라 공공 인재풀의 확장이라 보고 폐쇄적인 인사 시스템을 깨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복잡해진 사회만큼 공직사회 역시 다양한 수요를 가진 인재를 담을 수 있는 곳으로 바뀔 필요가 있습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