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에 악용되는 분양·임대차 동시 진행 사례에도 적용될 듯
대법 "주택 분양계약 중도 해지돼도 세입자 임차권은 보호"(종합)
임대차 계약을 체결한 후 임대인 측의 주택 분양 계약이 중도에 해지됐더라도 세입자의 권리는 보호받을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세입자 A씨가 집주인과 공인중개사 등을 상대로 낸 보증금반환 청구 소송에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지법에 돌려보냈다.

분쟁은 A씨가 입주한 공동주택의 임대인 B씨가 공인중개사를 끼고 분양과 임대차 계약을 '동시 진행'하면서 불거졌다.

B씨는 경기 광주시의 공동주택을 매수하기로 2016년 11월 건물주와 분양계약을 맺었다.

이때 '잔금일 전에 임대가 이뤄지면 임대 나간 세대는 임차인 입주와 동시에 잔금을 치르고 B씨 앞으로 소유권을 이전한다'고 약정했다.

이듬해 10월 B씨는 건물의 한 호를 A씨에게 2020년 3월까지 내주는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다.

임대차계약서에는 "이 건물을 매수하는 B씨를 임대인으로 해 계약을 진행하고 건물주에서 매수인에게 등기이전되는 일체의 과정은 공인중개사가 책임지고 진행한다"는 특약이 포함됐다.

그런데 B씨가 분양대금을 제때 치르지 못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건물주는 분양 계약을 해제하고 B씨에게 퇴거를 요구했다.

건물주는 새로운 매수인에게 A씨가 임차한 호를 팔았다.

이 과정에서 임대차계약의 승계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으면서 A씨는 공인중개사와 건물주, 새 매수인을 상대로 보증금을 돌려달라며 2020년 5월 소송을 냈다.

새 매수인은 A씨를 상대로 "무단 거주 기간만큼 월세를 지급하라"며 맞소송을 냈다.

1·2심은 공인중개사가 A씨에게 보증금을 돌려주고 A씨는 새 매수인이 집을 산 시점부터 계산한 월세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A씨가 불복해 사건은 대법원으로 넘어왔다.

대법원은 우선 B씨가 세입자에게 집을 빌려줄 권리를 적법하게 가졌다고 인정했다.

건물주와 분양계약을 체결하면서 주택에 관한 임대 권한을 부여받았고 잔금도 일부 치렀다는 이유였다.

따라서 A씨가 계약 해제 이전 적법한 임대차계약을 맺었고 전입 신고까지 마쳐 대항력(계약의 효력을 주장할 수 있는 권리)도 갖췄다면 그의 임차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봤다.

민법 548조1항에 따르면 계약을 해제해 채권·채무 등이 소멸하더라도 제3자의 권리를 침해할 수는 없다.

대법원은 분양계약 당사자 간의 문제로 계약이 해제되더라도 이를 이유로 적법하게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임차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는 없다고 이 조항을 해석했다.

A씨에게 적법한 임차권이 있다면 임대차보증금 반환을 새 매수인에게 요구할 수 있고 '계약의 무효'를 전제로 하는 월세 요구도 들어주지 않아도 된다.

이번 사건과 같은 동시진행 방식은 자본 없이도 주택을 여러 채 사들일 수 있어 전세사기 등에 악용되기도 한다.

법조계에서는 최근 '빌라왕 사건' 등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집주인, 공인중개사 등을 상대로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을 때 이번 대법원 판결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A씨를 대리한 법무법인 삼양 황귀빈 변호사는 "최근 전세사기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상황에서 동시진행 신축빌라 분양 관련 분쟁 사건을 비롯한 관련 실무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