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신현문구사 서충성씨 "계속 찾아오는 아이들 보며 힘내"
[휴먼n스토리] 40년간 한자리에…동심 지키는 문방구 사장님
"이것도 일종의 의리라고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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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서구 신현초등학교 정문 앞에는 허름한 문방구가 길 한편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

미닫이문을 지나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진열장을 빼곡히 채운 물품들이 본모습을 드러낸다.

'꽝 없는 뽑기판'이 입구를 지키는 가운데 학종이 상자는 주인을 찾지 못해 먼지가 쌓였다.

서충성(73)씨는 이곳에서 신현문구사라는 간판을 달고 40년 가까이 아이들을 맞이하고 있다.

서씨는 아내와 함께 1982년 신현초 개교에 맞춰 이듬해 학용품을 갖다 놓고 장사를 시작했다.

해마다 학생 수가 크게 늘면서 연필과 볼펜, 크레파스 등이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서씨는 1986년 원래 다니던 타이어 공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문방구 운영에 뛰어들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동네 문방구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었다.

등교 시간에는 준비물을 사러 밀려드는 어린 손님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수업이 끝나면 약속하지 않아도 삼삼오오 모이는 만남의 장소가 되기도 했다.

서씨는 9일 "지금은 신현초 전체 학생 수가 400명이 안 되지만, 1990년대에는 한 학년에만 500명이 넘었다"며 "그야말로 정신을 빼놓고 일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인파가 몰리면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은 몸집 큰 형들한테 막혀 한참이나 벗어나지 못하다가 울면서 나가는 일도 부지기수였다"고 덧붙였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든 과목 준비물이 이곳 문방구에 준비돼 있었다.

운동회나 과학의날을 맞으면 가게가 특히 붐볐다고 한다.

서씨는 미니카가 유행할 때 일본산 '타미야'를 사러 꼭두새벽부터 서울 용산에 있는 완구 상사로 달려가곤 했다.

정신없는 일상이 계속됐지만, 미니카를 검은 봉지에 담아 돌아올 때면 절로 콧바람을 흥얼거리던 시절이었다.

[휴먼n스토리] 40년간 한자리에…동심 지키는 문방구 사장님
하지만 학교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던 문방구는 2010년대를 지나며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원도심에 위치한 학교 특성상 학생 수가 계속 감소한 가운데 교육청 지원 사업으로 학용품이나 문제집을 학교에서 지급하면서 문방구가 설 자리는 좁아졌다.

새 학기마다 잘 나가던 종이 노트의 자리는 태블릿 PC가 차지했다.

온라인을 통한 물품 구매가 활발해지면서 아날로그식 문방구가 경쟁하기엔 버거운 순간이 찾아왔다.

한때 인근 동네에만 20곳이 넘는 문방구가 있었지만, 하나둘 장사를 접더니 10년 전부터는 서씨의 가게만 남게 됐다.

그러나 서씨는 여전히 문방구를 찾는 손님들을 생각하면 이곳 가게만큼은 문 닫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문방구를 찾아오던 도매상들도 어느 순간부터 대부분 연락이 끊겼다"며 "이제는 과거와 같은 매출은 기대하긴 힘들지만, 문방구를 의지해주는 손님들이 계속 찾아오고 있어 문을 닫을 순 없다"고 설명했다.

서씨의 가게는 '만능 공간'과 같다.

손님이 원하는 물건이 없는 경우가 생기지 않도록 가게를 채우다 보니 웬만한 물품과 서비스를 두루 갖췄다.

짧은 인터뷰 시간에도 서씨는 어린 학생을 위해 바람 빠진 공에 공기를 주입해주고, 누군가에게는 서류를 건네받아 팩스를 보내줬다.

놀다가 목이 말라 생수를 사러 온 아이도, 작은 지우개 하나 집어 계산대에 올리는 아이도 모두 친절하게 맞이했다.

서씨는 이름 모를 단골이던 어린 손님이 어느새 딸과 함께 와서 물건을 고르고 있으면 본인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다고 했다.

70대 중반의 나이에도 서씨는 꼬마손님들과의 추억을 더 새록새록 쌓아가고 싶다며 미소를 내비쳤다.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문방구를 지키고 싶어요.

문방구를 찾는 손님들과 지켜야 할 일종의 의리 같은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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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n스토리] 40년간 한자리에…동심 지키는 문방구 사장님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