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뒤 테슬라 주가 맞혀라"…확률형 파생상품 봇물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테슬라처럼 변동성이 큰 기술주 단일 종목을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결합사채(ELB)가 잇따라 출시되고 있다. 원금을 보장하면서 두자릿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어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러나 수익률이 높을수록 수익 조건을 충족하기가 쉽지 않다. 일각에선 금융상품이라기보다 '동전 던지기' 같은 확률 게임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9일 증권가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은 지난 7일부터 테슬라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TRUE ELB 제1874회' 청약 접수를 받고 있다. 마감은 오는 14일이다. 모집 한도는 50억원이고, 만기는 청약 마감일로부터 약 1년 뒤(내년 6월 11일)다.
이 상품은 만기일에 테슬라 종가가 청약 마감일 대비 '100% 초과~143% 이하' 범위에 있으면 원금과 주가 상승률 만큼의 수익을 준다. 상품 유지 기간 내 테슬라 하루 종가가 조건 가격 범위를 밑으로는 넘어가도 되지만 위로는 한 번도 넘어가면 안 된다. 조건이 미충족되면 만기 때 수익금 없이 원금만 돌려받는다. 이 경우 이자 없는 1년짜리 예금이나 다름 없어 물가상승률을 생각하면 사실상 손해다. 한국투자증권은 이같은 구조의 상품을 올 2월 처음 판매했다. 이번 1874회는 19번째 상품이다. 기초자산은 테슬라가 가장 많고 애플, 엔비디아, AMD, 삼성전자, 네이버 등 국내외 다른 기술주도 있다. 조건가격 범위, 수익률 등 세부 조건은 다르지만 기본 구조는 대부분 유사하다.
삼성증권, NH투자증권, KB증권, 키움증권 등도 올 들어 비슷한 구조의 상품을 판매했다. 이런 상품은 지난해까지는 판매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올 들어선 통상 30억~50억원 규모인 청약이 80회 넘게 진행됐다.
이들 ELB는 대부분 만기가 1년이다. 수익 지급 조건이 되는 기초자산 주가의 상승 허용 범위는 15~50% 선이다. 주가가 설정일 대비 떨어지거나, 상승 허용 범위보다 많이 오르면 수익금 없이 원금만 돌려준다. 받을 수 있는 수익금은 테슬라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상품의 경우 수십%에 달하지만 10%가 안 되는 것도 있다. 이달 청약이 마감된 한국투자증권의 삼성전자와 애플 기반 상품은 조건 달성 시 수익률이 각각 5.3%, 8.4%다.
증권사가 이같은 구조의 ELB를 줄줄이 출시하는 건 최근 증시 변동성이 커지며 손실 가능성이 높아졌고, 이에 따라 원금을 보장 받고자 하는 투자자의 욕구가 커졌기 때문이다. 기술주 상승에서 소외되고 싶지는 않은 사람들이 이런 상품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시장 금리가 높아지면서 저비용 유동성 조달에 대한 기관의 수요가 커진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이 상품을 판매한 증권사는 외국 기관과 백투백 계약을 맺어 위험(리스크)을 회피(헤지)하는 게 보통이다. 투자자에게 받은 돈으로 채권에 투자해 안정적인 수익을 내고, 이 수익금으로 기초자산 종목에 대해 외국 기관이 발행한 콜옵션을 매수한다.
외국 기관은 콜옵션의 리스크가 너무 높아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기초자산 가격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아지면 옵션을 행사할 수 없다는 조건을 붙인다. 이 때문에 기초자산 가격이 일정 범위 내에 있을 때만 국내 증권사가 콜옵션 행사를 통해 수익을 내고, 이를 투자자에게 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기술주 종목의 1년 뒤 주가를 종목 밸류에이션, 시장 분석 등을 통해 합리적으로 예측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대세 상승이나 하락은 예측할 수 있지만 특정 시점의 주가를 비교적 정확하게 맞추는 건 확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원 판례에 따르면 확률에 대한 의존은 사행성 게임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다.
수익 조건 달성 확률을 뜯어보면 높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각 상품의 투자설명서에 따르면 기초자산의 과거 주가 흐름을 봤을 때 수익 조건이 충족될 확률은 5~20% 선이다. TRUE ELB 제1874회는 테슬라의 2010년 6월~2022년 5월 주가 흐름에 비춰 수익 조건이 충족될 확률(1년 뒤 주가가 100~143% 범위 내에 있고 위쪽으로는 한 번도 돌파하지 않았을 확률)이 16.8%라고 안내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기간 대부분 테슬라의 변동성은 크지 않았다. 테슬라는 2019년 9월부터 대세 상승 국면에 접어들며 변동성이 커졌는데, 이 시점 이후로만 보면 수익 조건 달성 확률은 0.9%로 쪼그라든다.
한 전문가는 "최근 사행성 게임과 투자의 경계에 있는 금융 상품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이런 ELB도 그런 상품 중 하나"라고 말했다. 한국투자증권 측은 "시장 상황에 따라 다양한 헤지 전략을 구사해 안정성을 높인 상품"이라고 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1년 뒤 테슬라 주가 예측할 수 있나
9일 증권가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은 지난 7일부터 테슬라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TRUE ELB 제1874회' 청약 접수를 받고 있다. 마감은 오는 14일이다. 모집 한도는 50억원이고, 만기는 청약 마감일로부터 약 1년 뒤(내년 6월 11일)다.
이 상품은 만기일에 테슬라 종가가 청약 마감일 대비 '100% 초과~143% 이하' 범위에 있으면 원금과 주가 상승률 만큼의 수익을 준다. 상품 유지 기간 내 테슬라 하루 종가가 조건 가격 범위를 밑으로는 넘어가도 되지만 위로는 한 번도 넘어가면 안 된다. 조건이 미충족되면 만기 때 수익금 없이 원금만 돌려받는다. 이 경우 이자 없는 1년짜리 예금이나 다름 없어 물가상승률을 생각하면 사실상 손해다. 한국투자증권은 이같은 구조의 상품을 올 2월 처음 판매했다. 이번 1874회는 19번째 상품이다. 기초자산은 테슬라가 가장 많고 애플, 엔비디아, AMD, 삼성전자, 네이버 등 국내외 다른 기술주도 있다. 조건가격 범위, 수익률 등 세부 조건은 다르지만 기본 구조는 대부분 유사하다.
삼성증권, NH투자증권, KB증권, 키움증권 등도 올 들어 비슷한 구조의 상품을 판매했다. 이런 상품은 지난해까지는 판매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올 들어선 통상 30억~50억원 규모인 청약이 80회 넘게 진행됐다.
이들 ELB는 대부분 만기가 1년이다. 수익 지급 조건이 되는 기초자산 주가의 상승 허용 범위는 15~50% 선이다. 주가가 설정일 대비 떨어지거나, 상승 허용 범위보다 많이 오르면 수익금 없이 원금만 돌려준다. 받을 수 있는 수익금은 테슬라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상품의 경우 수십%에 달하지만 10%가 안 되는 것도 있다. 이달 청약이 마감된 한국투자증권의 삼성전자와 애플 기반 상품은 조건 달성 시 수익률이 각각 5.3%, 8.4%다.
확률에 대한 의존은 사행성의 요소
증권사가 이같은 구조의 ELB를 줄줄이 출시하는 건 최근 증시 변동성이 커지며 손실 가능성이 높아졌고, 이에 따라 원금을 보장 받고자 하는 투자자의 욕구가 커졌기 때문이다. 기술주 상승에서 소외되고 싶지는 않은 사람들이 이런 상품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시장 금리가 높아지면서 저비용 유동성 조달에 대한 기관의 수요가 커진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이 상품을 판매한 증권사는 외국 기관과 백투백 계약을 맺어 위험(리스크)을 회피(헤지)하는 게 보통이다. 투자자에게 받은 돈으로 채권에 투자해 안정적인 수익을 내고, 이 수익금으로 기초자산 종목에 대해 외국 기관이 발행한 콜옵션을 매수한다.
외국 기관은 콜옵션의 리스크가 너무 높아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기초자산 가격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아지면 옵션을 행사할 수 없다는 조건을 붙인다. 이 때문에 기초자산 가격이 일정 범위 내에 있을 때만 국내 증권사가 콜옵션 행사를 통해 수익을 내고, 이를 투자자에게 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기술주 종목의 1년 뒤 주가를 종목 밸류에이션, 시장 분석 등을 통해 합리적으로 예측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대세 상승이나 하락은 예측할 수 있지만 특정 시점의 주가를 비교적 정확하게 맞추는 건 확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원 판례에 따르면 확률에 대한 의존은 사행성 게임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다.
수익 조건 달성 확률 뜯어보니
수익 조건 달성 확률을 뜯어보면 높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각 상품의 투자설명서에 따르면 기초자산의 과거 주가 흐름을 봤을 때 수익 조건이 충족될 확률은 5~20% 선이다. TRUE ELB 제1874회는 테슬라의 2010년 6월~2022년 5월 주가 흐름에 비춰 수익 조건이 충족될 확률(1년 뒤 주가가 100~143% 범위 내에 있고 위쪽으로는 한 번도 돌파하지 않았을 확률)이 16.8%라고 안내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기간 대부분 테슬라의 변동성은 크지 않았다. 테슬라는 2019년 9월부터 대세 상승 국면에 접어들며 변동성이 커졌는데, 이 시점 이후로만 보면 수익 조건 달성 확률은 0.9%로 쪼그라든다.
한 전문가는 "최근 사행성 게임과 투자의 경계에 있는 금융 상품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이런 ELB도 그런 상품 중 하나"라고 말했다. 한국투자증권 측은 "시장 상황에 따라 다양한 헤지 전략을 구사해 안정성을 높인 상품"이라고 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