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열풍으로 인해 애플, 구글 등에 쏠렸던 투자자들의 관심이 완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AI 거품이 꺼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특정 기술주에 몰렸던 투자 수요가 평준화됐다는 관측도 나온다.

8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특정 기술주에 집중됐던 투자 수요가 평준화되기 시작했다. 지난 5일부터 이날까지 인베스코S&P동일비중ETF(티커명 RSP)에 10억달러 이상 유입됐다. 지난 20여년간 가장 큰 금액이 한 주 동안 들어온 것이다.

RSP는 S&P500 지수를 추종하지만 가중평균 없이 모든 종목을 동일하게 매수하는 상장지수펀드(ETF)다. 시가총액 순으로 투자 비중을 달리하는 SPDR S&P500 ETF 트러스트(SPY) 등 다른 ETF와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RSP는 올해 초부터 지난달 말까지 4개월 연속 S&P500 지수를 밑돌았다. 이달 들어 주식 시장에서 대형 기술주 주가가 내려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RSP가 S&P500을 1%포인트 이상 웃도는 증가율을 기록한 것이다.
"AI 거품 꺼질라"…애플·구글에 몰렸던 자금, 쓸어담는 곳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사바타 수브라마니안 애널리스트는 "RSP의 강세가 시장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RSP에 대한 수요가 더 커질 것이란 기대감으로 인해 유입되는 투자금이 점점 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4주간 RSP에 16억달러가 유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초부터 이날까지 미국 주식형 ETF에 유입된 자금은 783억달러에 그쳤다. 총유입금액의 2%를 한 달 만에 쓸어 담은 셈이다.

RSP에 대규모 자금이 쏠린 이유는 AI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S&P500과 연관된 ETF는 포트폴리오에서 기술주 비중이 지나치게 커졌다는 판단에서다. 올 초부터 지난달까지 AI 열풍을 타고 기술주가 상승세를 타면서다.

전문가들은 AI 관련 종목이 과대 평가됐다고 보고 있다. 시티그룹은 투자자 서한을 통해 이번 주부터 AI 랠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모건스탠리는 IT기업의 이익이 축소해서 주가가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러한 우려 탓에 기술주에 몰렸던 자금이 시장 전체에 확산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자산운용사 존 핸콕 인베스트먼트는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특정 기업 몇 개에만 투자 수요가 몰리면서 이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며 "AI에 쏠렸던 관심이 이제야 다각화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의 흐름과 달리 헤지펀드는 여전히 AI에 배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AI 열풍 덕에 포트폴리오 성과가 작년에 비해 크게 개선돼서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중 하나인 타이거 글로벌은 지난해 손실률이 56%에 달했지만, 올해 15.5%로 반등했다. 마이크로소프트 등 기술주가 랠리를 펼치며 손실을 만회한 것이다. 엔비디아 비중이 큰 웨일 록 캐피털도 올해 들어 수익률을 23% 이상 끌어올렸다.

월가의 억만장자 투자자인 스탠리 드러켄밀러도 엔비디아 주식을 장기 보유할 것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드러켄밀러는 월가의 대표적인 AI 예찬론자로 평가받는다. 그는 지난 7일 블룸버그 투자콘퍼런스에서 "AI는 인터넷보다 혁신적일 것"이라며 "때문에 엔비디아를 2~3년 정도 장기 보유할 수 있다"고 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