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큰둥 해졌는데… 메타버스는 정말 실체가 있는 건가? [책마을]
기술이 어떻게 세상을 바꿀지 가늠하기란 매우 어렵다. 2007년 아이폰이 등장했을 때 스티브 발머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경영자(CEO)는 이렇게 말했다. “가격이 500달러라고요? 전액 보조금이 지원되나요? 약정인가요? 저는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휴대전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비즈니스 고객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키보드가 없으니까요.”

금방 세상이 바뀔 것처럼 난리가 벌어지기도 한다. 1990년대 닷컴버블이 그랬다. 인터넷이 세상을 바꿀 것이란 예상은 맞았지만, 진정한 변화는 거품이 꺼지고 난 뒤에 본격화됐다.

그리고 이제 ‘메타버스’가 있다. 광풍이 지나가고 지금은 시큰둥한 단계다. 최근 애플이 3499달러짜리 ‘비전 프로’라는 혼합현실(MR) 기기를 내놓았을 때 ‘좋긴 한데 쓸모가 있을까’란 회의적인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메타버스는 정말 실체가 있을까. <메타버스 모든 것의 혁명>의 저자는 그렇다고 말한다. “메타버스가 인터넷의 미래”라고 말한다. 하지만 넘어야 할 장애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는 사실을 더 강조한다. 메타버스란 말을 만들어 낸 닐 스티븐슨의 1992년 소설 <스노우 크래시>나 스티븐 스필버그의 2018년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수준의 메타버스가 가능하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여타 메타버스 책과 또 다른 점이라면 저자의 무게감이다. 책을 쓴 매튜 볼은 벤처캐피털 에필리온 CEO다. 2018년부터 자기 홈페이지에 올린 메타버스 분석 글로 명성을 얻었다. 마크 저커버그가 2021년 페이스북의 사명을 메타로 바꾼 것에도 영향을 준 인물이다.
요즘 시큰둥 해졌는데… 메타버스는 정말 실체가 있는 건가? [책마을]

왜 메타버스가 우리의 미래일까. 그는 인터넷이 실제 세상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초기 인터넷은 텍스트 위주였다. 이후 사진과 동영상이 추가됐고, 점점 고화질로 업그레이드됐다. 평면에서 펼쳐지던 컴퓨터 게임이 이제는 3차원(3D)으로 구현된 것처럼 인터넷도 그렇게 바뀔 것이란 얘기다.

그는 메타버스를 ‘실시간 렌더링(합성) 된 3D 가상 세계로 구성된 네트워크’라고 정의한다. ‘대규모 확장과 상호 운영이 가능하며, 사실상 무한한 수의 사용자가 실재감을 가지고 동시에 영속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세상’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이를 구현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흔히 메타버스를 동시에 많은 사용자가 접속하는 온라인 게임과 비슷한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의 온라인 게임은 실시간도 아니고, 대규모의 사용자를 수용하지도 못한다. 게임 속 세상을 여러 서버에 복제해 놓고 적정 규모로 사용자를 분리해 정해진 규칙 속에 게임을 즐기도록 할 뿐이다.

에픽게임즈는 2020년 자사의 게임 ‘포트나이트’에서 1250만명이 넘는 사람이 참석한 콘서트를 열었다고 자랑했지만, 엄밀히 말해 게이머들이 본 건 25만개로 똑같이 복제된 콘서트였다.

수많은 사람이 한 공간에 모여 매끄럽게 소통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줌 화상회의를 생각해 보면 쉽다. 단순히 얼굴 영상과 음성을 전달하기만 하면 되는데도 끊김이 발생할 때가 많다. 메타버스 세상에서 사람과 사물의 움직임이 버벅댄다면 그곳에 머물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을 것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네트워크의 문제이기도 하다. 광케이블이 데이터를 빛의 속도로 전달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이는 반만 맞는 얘기다. 광케이블 속에서 빛은 지그재그로 움직이기 때문에 이동 경로가 늘어난다. 케이블이 직선으로 깔린 것도 아니다. 미국 북동부에서 남동부로 데이터를 전송하는데 35밀리초 걸리고, 미국 북동부에서 동북아시아까지는 350~400밀리초 걸린다. 이런 지연 시간은 메타버스 구축에 큰 장애물이다.

결국 SF영화 속 메타버스를 구현하려면 지금보다 100배는 더 강력한 컴퓨팅 능력, 더 빠른 인터넷 연결 속도, 실시간 데이터 처리를 돕는 새로운 인터넷 프로토콜, 더 발전된 가상현실(VR) 기기가 필요하다. 그 밖에도 많은 문제가 있다.

다만 기술은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은 가상 세계를 구축하는 데 도움을 줄 전망이다. 완벽한 메타버스가 등장하기 전이라도 관련 기술은 교육이나 엔터테인먼트, 패션, 데이팅 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수 있다.

무늬만 전문가가 아닌 진짜 전문가의 내공이 느껴지는 책이다. 메타버스뿐 아니라 인터넷, 네트워크, 게임 등에 관해 많은 지식을 전달한다. 어떤 기업에 투자하면 좋을지 궁금한 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만하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