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란 예술가들의 작업장이자 구심점 된 광복동 다방 거리
[정전 70년, 피란수도 부산] ⑪ 김동리의 '밀다원 시대'
'밀다원은 광복동 로터리에서 시청 쪽으로 조금 내려가서 있는 2층 다방이었다.

간판 바로 곁에 달린 도어를 밀고 들어서니 키가 조그맣고 얼굴이 샛노란 평론가 조현식과 키가 크고 얼굴빛이 시뻘건 허윤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중구를 보자 반가운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당신도 왔군"하는 것이 조현식이요, "결국 다 오는군요"하는 것은 허윤이었다.

'
1955년 발표된 김동리의 단편소설 '밀다원 시대' 속 장면이다.

6·25 전쟁 때 부산으로 피란 온 가난한 소설가 이중구가 '밀다원' 다방에서 다른 예술인들과 재회하는 장면을 묘사했다.

소설 속 '밀다원'은 실제로 피란 시기 광복동에 있었던 다방이다.

전국에서 피란을 온 예술가들로 당시 부산에서는 문화·예술 활동이 꽃피었는데, 그 구심점이 되는 곳들이 밀다원과 같은 다방이었다.

서울을 중심으로만 있었던 다방 문화가 서울이 폐허가 되고 난 뒤 부산으로 옮겨와 꽃을 피운 것이다.

10일 부산연구원에 따르면 당시 광복동에는 밀다원 외에도 금강다방, 대청동다방, 대도회 다방, 뉴서울 다방, 다이아몬드다방, 루네쌍스 다방, 봉선화 다방, 늘봄다방, 휘가로 다방, 에덴 다방 등이 있었다.

광복동 바로 옆 창선동에는 실로암 다방이, 국제시장 안에는 태양다방, 동광동에는 설야다방, 귀원다방, 정원다방, 일번지 다방, 상록수 다방, 망향 다방 등도 있었다.

음악감상실을 겸한 밀다원, 레인보 에덴, 오아시스, 망향, 칸타빌레 등에는 김동리, 황순원, 김수영, 이중섭, 김환기, 윤이상, 유치환 등 유명 예술가들이 드나들며 서로 교류했다.

광복동 일대에 다방이 몰린 것은 인근 국제시장이 당시 전국의 상권을 좌지우지하는 곳으로 급부상하며 돈과 사람이 몰려든 곳이었기 때문이다.

국제시장 주변은 전쟁 중에도 댄스홀과 유곽 등이 생겨나 1951년 1월 11일 자 동아일보에는 '보이소, 피란 왔소, 유람왔소'라는 제목으로 전쟁을 망각한 세태를 꼬집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전국에서 몰린 피란 예술가들은 창작에 대한 영감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만들어 냈다.

유네스코 무형 문화유산인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커피하우스가 3백여년 전 베토벤, 슈베르트, 카프카, 프로이트 등 거장들의 사교장이 됐던 것처럼 피란 시절 부산의 다방들은 비슷한 역할을 했다.

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소장은 "그 시절 다방은 오갈 곳 없는 화가나 문인, 음악가들의 작업장이자 연락처 노릇을 톡톡히 했다"면서 "피란 예술가들이 혼란의 시대를 이겨내고 예술 활동을 꽃피웠던 곳이 부산 광복동의 다방"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