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왜 의사단체와 협의할까…"시민참여 기구 논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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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역단체와 정원 논의 '의대'뿐…"논의 테이블 폭넓게 짜야"
2020년 의정합의서 '의대 정원 협의' 약속…의협 반대로 논의 지체
인력정책 논의 '보정심'은 개점휴업…정부 "별도 협의체 구성 고려 안 해" 정부와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지난 8일 진통 끝에 의대 정원을 확대하는 방안에 합의해 관련 논의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앞으로 정원 확대 폭을 놓고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관련 논의를 정부와 의협, 두축만을 중심으로 계속 진행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대학 학과 정원 결정에 의협 같은 직능 단체가 참여하는 것이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드물기 때문이다.
시민이나 전문가, 지자체 등이 논의 과정에서 배제된 만큼 폭넓은 사회구성원이 참여하는 공론화 기구에서 이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 의사들 집단반발에 의대 정원 협의…'직능단체 의견 반영' 의대뿐
정부와 의협이 의정(醫政)간 협의기구인 의료현안협의체 회의에서 의대 정원 확대에 합의한 것은 지난 1월 말 첫 회의를 한 이후 넉 달 반 만이다.
대학 입학 정원은 직전년 4월 결정되는데, 그동안 협의가 지지부진하면서 정부는 2024년도 입시에 의대 정원 확대를 반영할 기회를 놓쳤다.
정부가 이렇게 일정을 늦춰가면서까지 의협과 의대 정원 확대를 논의하는 것은 정원을 늘릴 경우 예상되는 의사들의 반발을 피하기 위해서다.
정부는 이전 정부 때인 2020년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신설 등을 추진했으나 의료계가 집단 휴진하고 의대생이 국가고시를 거부하는 등 거세게 반발하자 철회한 바 있다.
당시 갈등은 '의정합의'를 통해 봉합됐는데, 합의에는 '코로나19 사태가 안정되는 대로 의대 증원과 공공의대 신설 등에 대해 논의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런 합의 내용은 정부가 의협에 의대정원 논의를 요구하는 명분이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관련 논의가 정부와 의협 간 협의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결과를 낳았다.
교육 당국의 설명에 따르면 대학 정원을 정할 때 정부가 직능단체와 협의하는 경우는 사실상 의학 계열뿐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대학 정원은 기본적으로 대학이 자체적으로 정하는 영역이지만, 교원과 의료인력 양성과 관련한 정원은 정부가 관여한다"고 설명했다.
의정합의에 따라 의대 정원 협의를 하고 있긴 하지만 의정합의에서 정한 안건이 모두 논의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안건에는 공공의대 신설도 포함돼있지만, 논의를 부담스러워하는 복지부와 공공의대 신설을 반대하는 의협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관련 논의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국장은 "복지부는 '의정합의 때문에 의협과의 논의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하지만 의료현안협의체가 법정기구도 아닌데도 꼭 양자간 논의를 거치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 인력 논의기구 있지만 활동 無…의사수 논의에 의료이용자는 '배제'
의대 정원 논의가 의료현안협의체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사실 정부 내에는 의대 정원 관련 내용을 심의할 위원회 조직이 있다.
2021년 1월 꾸려진 보건의료인력정책심의위원회가 그것이다.
2019년 10월 제정된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은 이 위원회가 심의할 내용 중 하나로 '보건의료인력 양성 및 수급관리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위원회는 복지부 차관인 위원장을 비롯해 노동자단체, 시민단체, 의료인단체, 의료인력단체, 의료기관단체, 전문가 등 25명의 위원으로 구성됐다.
위원들에 따르면 그동안 회의가 개최된 것이 2회뿐일 정도로 개점휴업 상태다.
필수의료 위기 상황에서 의료인력 확충의 중요성이 커지는데도 정작 관련 위원회를 통한 의견 수렴에는 소홀했던 것이다.
전문가와 시민단체들은 이제라도 이 위원회를 활성화해 의대 정원 확대폭과 구체적인 방식을 논의하거나 아니면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별도의 공론화 기구를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윤 서울대 의대(의료관리학) 교수는 "의료현안협의체를 중단하고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나 보건의료인력정책심의위원회 같은 공론화기구에서 논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실련 남은경 국장도 "복지부가 폭넓게 논의 테이블을 구성해 시민사회, 지자체, 전문가 등 다양한 주체가 토론하면서 의대 정원 확대 규모와 방식을 논의를 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방안이 도출되면 복지부가 결정을 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논의 상황에서 (건강보험) 가입자는 배제돼있다.
(소비자단체, 환자단체 등이 참여하는) 이용자협의체가 있기는 하지만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런 공론화기구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운영 계획에 대해서는 일관된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형훈 보건의료정책관은 지난 4월 25일 브리핑에서 "인력 확충 및 증원, 양성과 관련해 의사 인력에 대한 수급위원회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으나, 복지부는 관련 보도가 나온 뒤 5월 1일 배포한 자료에서 "향후 별도 협의체 구성·운영에 대해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말을 바꿨다.
◇ 의사들 "의대 증원이 유일한 해법 아냐"…확대폭 놓고 갈등 예상
의대 정원 관련 논의의 폭을 넓힐 필요가 있는 것은 의정이 합의한 '의대 정원 확대'라는 방향보다도 정원 확대의 폭과 방식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원 확대 폭을 놓고는 의약분업 당시 줄었던 351명을 다시 늘리는 안이나 이보다 많은 512명 증원하는 안이 거론되지만, 이 정도는 의사 부족 상황을 해결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은 의사 공급과 의사 업무량이 현재 수준으로 유지될 경우 2035년엔 2만7천232명의 의사가 부족할 것이라고 작년 말 예측한 바 있다.
산술적으로 10년간 2천700여명씩 늘려야 의사 수 부족을 막을 수 있다.
정원을 확대할 경우 어떻게 하면 늘어난 의사 수가 필수의료나 지방의료에 기여하도록 할지에 대한 논의도 중요하다.
의사가 늘어나도 필수의료 분야나 지방의료 현장에서 일하는 것을 기피하는 상황이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증원 폭 산정 방식과 관련해 복지부와 의협은 의견차를 드러내고 있다.
의정은 의대정원 확대 규모를 논의하기 앞서 조만간 전문가포럼을 열어 인력수급 추계를 할 계획인데, 지난 8일 브리핑에서 양측은 추계 방식과 관련해 "한국개발연구원(KDI)나 보사연 추계를 기본으로 할 것"(차전경 복지부 의료정책과장), "(의협의) 의료정책연구소는 다른 (추계) 결과를 갖고 있다"(이정협 의협 상근부회장)고 말하며 신경전을 펼치기도 했다.
의협은 필수의료 강화를 위해 의대 정원 확충보다는 수가 확대, 의사 처우 개선 등이 중요하다는 입장이어서 작은 증원 폭을 염두에 두고 논의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광래 인천광역시의사회 회장은 지난 8일 의료현안협의체 회의를 시작하면서 "의대 정원 증원만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분위기가 있다.
의대 증원에만 의존하지 말고 의대생과 인턴들이 필수의료과에 지원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연합뉴스
2020년 의정합의서 '의대 정원 협의' 약속…의협 반대로 논의 지체
인력정책 논의 '보정심'은 개점휴업…정부 "별도 협의체 구성 고려 안 해" 정부와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지난 8일 진통 끝에 의대 정원을 확대하는 방안에 합의해 관련 논의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앞으로 정원 확대 폭을 놓고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관련 논의를 정부와 의협, 두축만을 중심으로 계속 진행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대학 학과 정원 결정에 의협 같은 직능 단체가 참여하는 것이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드물기 때문이다.
시민이나 전문가, 지자체 등이 논의 과정에서 배제된 만큼 폭넓은 사회구성원이 참여하는 공론화 기구에서 이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 의사들 집단반발에 의대 정원 협의…'직능단체 의견 반영' 의대뿐
정부와 의협이 의정(醫政)간 협의기구인 의료현안협의체 회의에서 의대 정원 확대에 합의한 것은 지난 1월 말 첫 회의를 한 이후 넉 달 반 만이다.
대학 입학 정원은 직전년 4월 결정되는데, 그동안 협의가 지지부진하면서 정부는 2024년도 입시에 의대 정원 확대를 반영할 기회를 놓쳤다.
정부가 이렇게 일정을 늦춰가면서까지 의협과 의대 정원 확대를 논의하는 것은 정원을 늘릴 경우 예상되는 의사들의 반발을 피하기 위해서다.
정부는 이전 정부 때인 2020년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신설 등을 추진했으나 의료계가 집단 휴진하고 의대생이 국가고시를 거부하는 등 거세게 반발하자 철회한 바 있다.
당시 갈등은 '의정합의'를 통해 봉합됐는데, 합의에는 '코로나19 사태가 안정되는 대로 의대 증원과 공공의대 신설 등에 대해 논의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런 합의 내용은 정부가 의협에 의대정원 논의를 요구하는 명분이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관련 논의가 정부와 의협 간 협의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결과를 낳았다.
교육 당국의 설명에 따르면 대학 정원을 정할 때 정부가 직능단체와 협의하는 경우는 사실상 의학 계열뿐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대학 정원은 기본적으로 대학이 자체적으로 정하는 영역이지만, 교원과 의료인력 양성과 관련한 정원은 정부가 관여한다"고 설명했다.
의정합의에 따라 의대 정원 협의를 하고 있긴 하지만 의정합의에서 정한 안건이 모두 논의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안건에는 공공의대 신설도 포함돼있지만, 논의를 부담스러워하는 복지부와 공공의대 신설을 반대하는 의협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관련 논의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국장은 "복지부는 '의정합의 때문에 의협과의 논의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하지만 의료현안협의체가 법정기구도 아닌데도 꼭 양자간 논의를 거치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 인력 논의기구 있지만 활동 無…의사수 논의에 의료이용자는 '배제'
의대 정원 논의가 의료현안협의체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사실 정부 내에는 의대 정원 관련 내용을 심의할 위원회 조직이 있다.
2021년 1월 꾸려진 보건의료인력정책심의위원회가 그것이다.
2019년 10월 제정된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은 이 위원회가 심의할 내용 중 하나로 '보건의료인력 양성 및 수급관리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위원회는 복지부 차관인 위원장을 비롯해 노동자단체, 시민단체, 의료인단체, 의료인력단체, 의료기관단체, 전문가 등 25명의 위원으로 구성됐다.
위원들에 따르면 그동안 회의가 개최된 것이 2회뿐일 정도로 개점휴업 상태다.
필수의료 위기 상황에서 의료인력 확충의 중요성이 커지는데도 정작 관련 위원회를 통한 의견 수렴에는 소홀했던 것이다.
전문가와 시민단체들은 이제라도 이 위원회를 활성화해 의대 정원 확대폭과 구체적인 방식을 논의하거나 아니면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별도의 공론화 기구를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윤 서울대 의대(의료관리학) 교수는 "의료현안협의체를 중단하고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나 보건의료인력정책심의위원회 같은 공론화기구에서 논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실련 남은경 국장도 "복지부가 폭넓게 논의 테이블을 구성해 시민사회, 지자체, 전문가 등 다양한 주체가 토론하면서 의대 정원 확대 규모와 방식을 논의를 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방안이 도출되면 복지부가 결정을 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논의 상황에서 (건강보험) 가입자는 배제돼있다.
(소비자단체, 환자단체 등이 참여하는) 이용자협의체가 있기는 하지만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런 공론화기구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운영 계획에 대해서는 일관된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형훈 보건의료정책관은 지난 4월 25일 브리핑에서 "인력 확충 및 증원, 양성과 관련해 의사 인력에 대한 수급위원회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으나, 복지부는 관련 보도가 나온 뒤 5월 1일 배포한 자료에서 "향후 별도 협의체 구성·운영에 대해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말을 바꿨다.
◇ 의사들 "의대 증원이 유일한 해법 아냐"…확대폭 놓고 갈등 예상
의대 정원 관련 논의의 폭을 넓힐 필요가 있는 것은 의정이 합의한 '의대 정원 확대'라는 방향보다도 정원 확대의 폭과 방식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원 확대 폭을 놓고는 의약분업 당시 줄었던 351명을 다시 늘리는 안이나 이보다 많은 512명 증원하는 안이 거론되지만, 이 정도는 의사 부족 상황을 해결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은 의사 공급과 의사 업무량이 현재 수준으로 유지될 경우 2035년엔 2만7천232명의 의사가 부족할 것이라고 작년 말 예측한 바 있다.
산술적으로 10년간 2천700여명씩 늘려야 의사 수 부족을 막을 수 있다.
정원을 확대할 경우 어떻게 하면 늘어난 의사 수가 필수의료나 지방의료에 기여하도록 할지에 대한 논의도 중요하다.
의사가 늘어나도 필수의료 분야나 지방의료 현장에서 일하는 것을 기피하는 상황이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증원 폭 산정 방식과 관련해 복지부와 의협은 의견차를 드러내고 있다.
의정은 의대정원 확대 규모를 논의하기 앞서 조만간 전문가포럼을 열어 인력수급 추계를 할 계획인데, 지난 8일 브리핑에서 양측은 추계 방식과 관련해 "한국개발연구원(KDI)나 보사연 추계를 기본으로 할 것"(차전경 복지부 의료정책과장), "(의협의) 의료정책연구소는 다른 (추계) 결과를 갖고 있다"(이정협 의협 상근부회장)고 말하며 신경전을 펼치기도 했다.
의협은 필수의료 강화를 위해 의대 정원 확충보다는 수가 확대, 의사 처우 개선 등이 중요하다는 입장이어서 작은 증원 폭을 염두에 두고 논의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광래 인천광역시의사회 회장은 지난 8일 의료현안협의체 회의를 시작하면서 "의대 정원 증원만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분위기가 있다.
의대 증원에만 의존하지 말고 의대생과 인턴들이 필수의료과에 지원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