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제조한 자율주행 반도체와 SK의 배터리가 장착된 현대자동차의 전기차. 이 차량에 올라탄 운전자는 LG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계기판을 보며 도로 위를 달린다. 5년 전만 해도 ‘꿈 같은 일’로 여겨지던 상황이 현실이 됐다. ‘글로벌 전기차 리더’로 성장한 현대차가 전장(電裝·전자장치) 사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삼성, SK, LG 등과 긴밀한 협업 관계를 구축하면서다. 첨단 부품 경쟁력이 중요한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등 미래차 시대가 다가오면 ‘4대 그룹 전장동맹’은 더 단단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현대차에 삼성칩·SK배터리·LG패널…'K-전차연합' 뜬다

삼성·현대차, 반도체 협력 강화

11일 산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가 14나노미터(㎚·1㎚=10억분의 1m) 공정에서 제조한 차량 인포테인먼트시스템(IVI)용 통합칩셋(SoC) ‘돌핀 플러스(+)’가 현대차의 프리미엄 세단 제네시스에 장착된 것으로 확인됐다. IVI용 SoC는 차량에서 실시간 운행정보 등을 처리하는 반도체다. 제네시스에선 헤드업디스플레이(HUD) 구동을 담당한다. 설계는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기업)인 텔레칩스가 맡았다.

지난 7일엔 삼성전자가 “자동차 인포테인먼트시스템(IVI)용 반도체 ‘엑시노스’를 2025년 현대차에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차량용 제품 경쟁력이 올라가면서 현대차가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현대차가 먼저 러브콜

현대차가 차량용 디스플레이, 배터리, 조명 등을 삼성, SK, LG 제품으로 사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예컨대 현대차의 간판 전기차 ‘아이오닉 5’를 보면 편의 기능인 ‘사이드뷰 카메라’에 사용하는 OLED 패널은 삼성디스플레이, 배터리는 SK온이 납품했다. GV60 같은 제네시스 전기차엔 삼성전자의 이미지센서(반도체)가 들어갔다. 요즘 출시되는 현대차 차량의 계기판용 액정표시장치(LCD)는 대부분 LG디스플레이 제품이다.

현대차를 중심으로 한 4대 그룹 전장동맹이 구축된 것은 삼성, SK, LG가 대규모 투자를 통해 전장 경쟁력을 끌어올린 덕분이다. 예컨대 삼성전자는 차량용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사업에 매년 수조원을 투입한다. 삼성전기는 전기차용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 투자를 늘리고 있다.

LG는 LG디스플레이(패널), LG이노텍(카메라모듈), LG마그나(파워트레인), LG전자(OS·인포테인먼트시스템) 등 주력 부품 사업에서 세계 1, 2위를 다투고 있다. 배터리사업과 관련해선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이 세계 시장을 주도한다.

한국산 전장 부품의 기술력이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는 사례도 늘고 있다. 예컨대 삼성전자는 IVI용 반도체를 아우디, 폭스바겐 등에 납품했다. LG디스플레이는 2021년 벤츠에 디지털콕핏용 OLED를 공급한 이후 고객사를 확대하고 있다. 4대 그룹의 한 관계자는 “최근 ‘해외에 납품한 부품을 우리도 볼 수 있냐’는 현대차 구매팀의 연락이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중심 미래차 공급망 구축

글로벌 미래차 시장의 주도권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4대 그룹 전장동맹은 더 강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래차에선 센서, AP, IVI, 디스플레이 등 한국 전장 기업들이 강점을 지닌 첨단 부품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도 국내 기업들과의 협업에 공을 들이는 분위기다. 한국을 중심으로 미래차 핵심 부품의 공급망을 구축할 수 있어서다. 운송비를 줄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현대차 본사와 가까운 곳에 실시간 소통이 가능한 부품업체들이 생긴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4대 그룹의 협업 사례가 많아질수록 국내 전자·자동차 부품·소재·장비 관련 중소·중견기업 생태계가 강화되는 점도 긍정적 요인으로 평가된다.

황정수/최예린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