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도안, 튀르키예 중앙銀 총재도 월가 출신 앉혔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중앙은행 총재에 미국 월가 출신 여성을 앉혔다. 지난 3일 메를린치 출신 메흐메트 심셰크 전 부총리를 재무장관으로 발탁한 지 1주일 만이다. 튀르키예 양대 경제 수장이 모두 시장친화적 인물로 채워지면서 금리 정책 정상화에 대한 기대가 한층 커졌다.

11일 주요 외신을 종합하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 9일 하피즈 가예 에르칸(44)을 새 중앙은행 총재로 임명했다. 튀르키예 최초의 여성 총재다. 전 세계적으로 통화 정책 결정권이 여성에게 있는 나라는 24개에도 못 미친다고 블룸버그가 전했다.

튀르키예계 미국인인 에르칸은 월가에서 오랜 기간 경력을 쌓았다. 이스탄불에서 태어난 그는 튀르키예 보가지시대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한 뒤 곧바로 미국으로 넘어갔다. 하버드경영대학원의 고급 경영자 프로그램(AMP)을 거쳐 프린스턴대에 진학해 금융공학 박사 학위를 땄다. 이후 골드만삭스에서 10년 가까이 일하면서 대형 은행을 상대로 건전성 평가(스트레스 테스트) 관련 자문을 제공했다. 에르칸은 이곳에서 짐 허버트 퍼스트리퍼블릭은행 창립자와 만나 동업에 나섰고, 2021년 7월 최고경영자(CEO) 지위까지 올라섰다. 같은 해 12월 사임해 올해 3월 은행 위기를 겪진 않았다.

시장 논리에 충실할 것으로 기대되는 인물이 잇달아 기용되자 에르도안 대통령이 통화정책 방향을 완전히 틀었다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장기 불황 속에서도 ‘고금리가 만악의 근원’이라는 신조에 따라 통화당국에 금리 인하를 강요해 왔다. 그 결과 물가가 치솟았고, 중앙은행은 추락한 리라화 가치를 보전하는 데 올해에만 250억달러(약 32조원)를 썼다. 셀바 데미랄프 이스탄불 코츠대 경제학 교수는 CNBC에 “에르칸의 이력을 고려하면 정통 경제학 논리에 기반한 정책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크다”며 오는 22일 예정된 통화정책 회의에서 금리를 올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티머시 애쉬 블루베이자산운용 신흥시장부문 전략가는 에르칸 총재와 심셰크 장관이 “최고의 팀을 이룰 것”이라며 “시장이 두 배로 기뻐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튀르키예 통화정책의 예측 가능성도 한층 커졌다는 평가다. 에르칸은 2019년 이후 임명된 다섯 번째 중앙은행 총재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저금리 정책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이견을 보인 중앙은행 총재를 잇달아 해임하며 시장 불안정성을 키우고, 리라화 가치 폭락을 부추겼다.

에르칸의 통화정책 관련 성향이 ‘매파’(긴축 선호)인지, ‘비둘기파’(완화 선호)에 가까운지 알려지지 않은 점은 변수다. 정책 수립 과정에 참여한 경험이 거의 없는 데다 경제학보다는 금융 분야 전문가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재선에 성공한 에르도안 대통령이 강력한 권력 구도를 구축했다는 점도 우려 요인으로 거론된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 2년간 자신과 손발을 맞춰 저금리 기조를 이어온 샤합 카브즈오을루 전 중앙은행 총재를 금융감독청(BRSA) 청장에 지명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