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아이칸 아이칸 엔터프라이즈 회장
칼 아이칸 아이칸 엔터프라이즈 회장
세계 1위 유전자 분석기기 제조사인 일루미나의 프란시스 데소우자 CEO가 사임했다. 행동주의 투자자인 칼 아이칸이 부적절한 인수 결정 등을 이유로 일루미나 경영진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지 약 3개월만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일루미나는 11일(현지시간) 데소우자의 후임자를 찾는 동안 회사 법률고문인 찰스 대즈웰이 임시 CEO를 맡는다고 발표했다. 데소우자는 다음달 31일까지 고문으로 근무하게 된다. 일루미나는 유전자 변이 및 생물학 기능 분석을 위한 통합 시스템을 만들어 판매하는 회사다.

데소우자의 사임은 사실상 아이칸과의 대결에서 백기를 든 것으로 해석된다. 아이칸은 암 진단 기기 개발업체 '그레일'을 인수한 일루미나의 결정을 비판하면서 지난 3월 위임장 대결(주주 총회에서 의결권 행사 위임장을 확보해 기업 경영권을 확보하는 전략)을 선포했다. 규제 당국이 반대하는 상황에서도 무리하게 인수를 추진해 주주들에게 500억달러(약 65조원)의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에서다. 아이칸은 올해 상반기로 예정된 정기 주주총회에서 일루미나 이사회의 이사 3명을 지명하겠다고 밝혔다.
프란시스 데소우자 일루미나 최고경영자(CEO)가 2021년 10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베벌리힐스에서 열린 2021 밀켄연구소 글로벌 콘퍼런스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
프란시스 데소우자 일루미나 최고경영자(CEO)가 2021년 10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베벌리힐스에서 열린 2021 밀켄연구소 글로벌 콘퍼런스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
일루미나는 2016년 회사에서 20억달러 규모로 분사한 그레일을 다시 인수한다고 2020년 발표했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와 EU(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독점금지법 저촉을 이유로 일루미나를 제소했다. 규제당국의 제동에도 일루미나가 80억달러 규모의 인수합병을 마무리하자 EU는 그레일 재매각을 명령했다. 아울러 규제 당국의 허가 없이 합병 거래를 종결한 데 대해 연 매출 10%에 해당하는 벌금을 부과한다고 예고했다.

그레일 인수 이후 일루미나 주가는 60% 가량 급락했다. 2021년 8월 517.32달러였던 주가가 지난 9일(현지시간) 200.53달러까지 떨어진 것이다.아이칸이 위임장 대결을 선언하며 지분을 매입했다고 밝히자, 일루미나 주가는 하루만에 17% 가까이 올랐다.

회사 관계자들에 따르면 데소우자는 지난 8일(현지시간) 이사회에 사임 결정을 통보했다. 데소우자는 2013년부터 일루미나에서 근무, 2016년부터 CEO로 재직했다. 차기 상임 CEO는 회사 외부에서 영입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WSJ은 전했다. 아이칸은 트위터를 통해 "최근 일루미나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을 보게 되어 기쁘다"며 "매우 긍정적인 일"이라고 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