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이 임명한 '쓴소리 위원장'…경찰대 1호 금배지 윤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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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대 수석 입학·졸업 … 경기지방경찰청장 등 요직 거쳐
“목소리 크다고 이기는 건 아냐” 협치 추구하는 의회주의자
원내대표 당선 이후 자세 낮추며 “앞으로 ‘윤 순경’ 되겠다”
겸손한 성품으로 후배들의 신망도 두터웠다. 경찰 재직 시절 ‘일이 잘되면 창문을 보고, 일이 잘못되면 거울을 보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일이 잘되면 창문 밖 직원들이 도와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일이 잘못되면 거울을 보며 부족한 점을 반성했다는 의미다.
2010년 1월 40대 나이에 경기지방경찰청장 자리에 올라 유력한 경찰청장 후보였으나, 조현오 전 청장에게 밀려 낙마하면서 경찰복을 벗었다. 일각에서는 경찰대와 비경찰대 사이의 갈등에 대한 책임으로 낙마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당시 그는 퇴임식에서 “개인의 명예를 위해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공직자로서 자중자애해야 한다.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진다”고 말해 묘한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시 현역이던 이해봉의 불출마로 빈 대구 달서구을에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해 경찰대 출신 최초의 국회의원이라는 타이틀까지 얻게 됐다.
의정 활동의 상당 기간을 경찰청을 관할하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소속돼 활동했다. 당시 "때로는 후배들의 잘못을 앞장서 들춰내고 추궁해야 함에 마음이 무거울 때가 많지만, 1등 치안의 1등 경찰이 될 수 있도록 쓴소리를 하는 것이 국회의원 윤재옥이 경찰을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표현하며 경찰 조직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나’를 내세우지 않는 정치인= 화려한 스펙과 달리 좀처럼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정치인이다. "부고 빼고는 기사화를 원한다"는 일반적인 국회의원에 대한 인상과는 대조적이다. 원내대표가 되기 전까지 당내에서는 “샤이하고 과묵한 성격”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술도 거의 마시지 않는다. 3선 중진 의원임에도 의원총회 등 현장에서 여러 의원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앉아 있는 모습이 주로 목격됐다.
흥분하거나 목소리를 높이는 법이 없고, 꼭 필요한 말만 하는 편이다. 그만큼 신중하고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자신이 추구하는 바도 ‘소리 없이 강한 정치’다. 윤재옥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아무리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기는 세상이라 하지만 묵묵히 우직하게 자기 일을 성실하게 추진하고, 원래 지향한 목표를 하나씩 달성해 가는 개인과 기업이 더 존경스럽다”고 표현했다. 좌우명은 ‘절제와 균형’이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성품 때문에 대중 정치인으로서의 한계를 보인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3선 중진 의원임에도 대중적 인지도가 높지 않다는 평가다. 좀처럼 자극적이고 화제가 되는 발언은 하지 않아 언론에 노출되는 일도 적었다. 원내대표 선거 출마는 정치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그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는 나를 내세우는 정치를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중진 의원으로서 역할을 해야 할 때가 됐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선거 공보물 표지에 자신의 사진 대신 선거 캠프 때 사용한 야전침대 사진을 넣은 것은 이런 그의 성품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소리 없이 강한 리더십= 나를 내세우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를 배려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그의 태도는 목소리를 키우지 않고도 당내 리더십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 핵심 당직을 맡고 있는 한 국민의힘 의원의 전언이다. “국회에 처음 입성했을 때 한강이 한눈에 보이는 고급 일식당에 식사 초대를 받았다. 초선 의원과 만나는 자리인데 국회 근처에서 편하게 먹을 수도 있을 텐데, 상대를 귀하게 여기고 대접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후에도 초선 의원들과 일대일로 식사 자리를 만들고, 골프 모임을 함께하기도 했다. 진중한 모습과 대비되는 섬세한 '선물 센스'도 의원들 사이에서 회자된다. 한 여성 의원은 “화이트데이에 평범한 초콜릿이 아니라 명품 브랜드 핸드크림을 선물받았는데, 가격을 떠나 선물 하나를 고를 때도 정성스럽게 챙긴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이 밖에 윤 원내대표는 초선 의원들이 꼭 필요한 순간에 도움을 주면서 차곡차곡 관계를 쌓았다고 한다. 2023년 4월 원내대표 선거에서 ‘수도권 원내대표론’을 내세운 김학용 의원을 제치고 당선된 데는 이 같은 치밀함과 성실함이 배경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21대 국회에서 정무위원장직을 맡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상임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피감기관이나 공직자, 참고인, 증인들에게 늘 존댓말을 쓴다. 정무위원회는 유독 피감기관이 많은데, 피감기관 기관장들과 꼭 한 차례씩 만나 식사를 하고 현안을 공부했다.
사모펀드 사태, 암호화폐 논란 등 굵직한 현안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정무위원회는 가장 분위기가 좋은 상임위 중 하나로 꼽혔다. 국민의힘 소속 정무위원장이었지만 윤재옥은 최대한 민주당 입장에서 사안을 바라보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국정감사 기간에는 정무위 소속 민주당 의원 전원과 돌아가며 식사를 했다. 서로에게 공격의 칼날을 들이대야 하는 국감 특성상 여야 대립이 심해지면서 상대 당 의원과는 만남도 꺼리는 분위기가 팽배할 때였다. 윤재옥은 식사 소통을 이어가면서 민주당 의원들의 마음을 열었고, 이는 원활한 상임위 운영의 밑바탕이 됐다.
윤재옥은 "민주당과의 실무 협상은 전쟁 그 자체였다"고 표현했다. 합의한 내용도 자고 일어나면 뒤집어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는 협상은 '힘'으로만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믿었다. 지킬 것은 지키고, 양보할 것은 양보하면서 접점을 찾아나갔다.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 입장에선 추가경정예산안 처리가 급하다는 점을 파고들었다. 자유한국당은 추경안과 특검법을 동시에 통과시키는 방식으로 '드루킹 특검'을 관철시키게 된다. 이 협상으로 그의 치밀하고 꼼꼼한 협상력이 증명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쓴소리 위원장’에서 ‘야전 사령관’으로= 검찰의 핵심 요직을 거친 윤석열 대통령과 엘리트 경찰 코스를 밟은 윤재옥 사이에는 접점이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1년 국민의힘에 입당한 후 몇 달 뒤 김태호 의원 부친 장례식장에서 우연히 만난 것이 첫만남이었다.
윤재옥이 2022년 윤석열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전략자문위원장을 맡으며 두 사람의 본격적인 인연이 시작됐다. 매주 윤 후보에게 민심을 전달하는 자리였는데, 당시 윤 후보는 그를 '쓴소리 위원장'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구원투수 역할도 했다. 여론조사에서 윤 후보의 지지율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역전당하면서 기존 선대위를 해체하고 꾸려진 선대본부에서 상황실장으로 발탁된 것. 윤 원내대표는 당시를 회상하며 "상황실장은 판단하고 결정하는 자리였는데, 상황실이 일할 수 있도록 꼬이고 얽힌 것들을 풀어주는 것이 내 역할이었다"며 "캠프 각 분야의 업무를 빠르게 조율하고,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자세로 일하자 조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상황실장이 되자마자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5층 상황실에 간이침대를 들였다. 씻을 때를 제외하고는 상황실에 상주하며 24시간 실무자들에게 보고를 받았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건의 결정 사항이 그의 손을 거쳐갔다. "보고 책임은 내가 진다"며 부정적인 보고에 대한 당직자들의 마음의 부담을 줄여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와 함께 일한 적이 있는 사람은 입을 모아 '치밀하고 꼼꼼하다'는 평가를 한다. 단순히 꼼꼼하기만 한 게 아니라 '일이 되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했다. 윤석열 캠프에서 그와 함께 일했던 당 지도부 관계자는 "권영세 선대본부장은 똑똑하고 선이 굵은 스타일이었다면, 윤재옥 부본부장 겸 상황실장은 똑똑하면서도 꼼꼼한 스타일"이라며 "중요한 포인트를 알고 꼭 필요한 부분을 치밀하게 챙기면서 선거 캠프에서 시너지가 났다"고 평가했다. ▶원내대표 당선= 지난 5월 새 원내사령탑을 뽑은 국민의힘에 필요한 것은 '안정'이었다. 최고위원들의 잇따른 설화와 대통령 거부권 행사에 따른 정국 경색으로 내우외환에 빠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수도권 원내대표론'을 내건 김학용 후보와 '치밀한 전략통'임을 내세운 윤재옥 후보 간의 2파전이었다. 김기현 대표를 포함해 당 지도부가 영남권으로 꾸려진 상황에서 수도권 의원인 김학용 후보가 앞서고 있다는 전망이 우세했다. 윤 후보는 포기하지 않았다. 경선날 정견발표에서 20% 의원들의 표심이 뒤집힌다는 판단으로 정견 발표문을 고치고 또 고쳤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자신이 어떻게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부터 공천 물갈이를 우려하는 영남권 의원들을 겨냥해 "공천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맞춤형 멘트까지 선보였다. 결과는 21표 차 승리. 국회 입성 때부터 그와 인간적 신뢰를 쌓은 '신(新)윤핵관' 박성민 전략기획부총장이 윤재옥을 밀면서 판세가 뒤집혔다는 후문이다. 원내대표 취임 직후 자신이 주재한 첫 원내대책회의에서 그의 취임 일성은 "앞으로 '윤 순경'이 되겠다"는 것이었다. 치안정감(1급)이 마지막 계급이었던 윤 원내대표가 9급 순경을 자처한 것이다. 겸손한 자세로 상임위 정책 전반을 꼼꼼하게 챙기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면서도 필요할 땐 당의 기강을 잡는 역할을 했다. 민주당이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을 본회의에서 재의결하려고 하자 의원들에게 출국금지령을 내렸다. 장관을 겸직하고 있는 의원들에게까지 총동원령을 내렸다. 민주당보다 의석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참석률이 저조해 법안이 통과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였다. 결국 본회의에 다시 돌아온 양곡관리법은 최종 부결돼 폐기됐다.
당내에서는 상임위 간사에게 수시로 현안을 보고받으면서도 이들에게 협상력을 주며 원내 현안을 체계적으로 관리했다. '주 69시간 논란'으로 브레이크가 걸린 윤석열 정부의 노동 개혁을 뒷받침하기 위해 노동개혁특별위원회를 '1호 특위'로 구성하고 개혁안 마련 작업에 착수했다. 당 밖으로는 야당과의 주기적인 소통 창구를 개설했다. 박광온 민주당 원내대표와 매주 월요일 오찬을 함께하며 주요 현안에 대해 의견을 조율한다.
의원들에게 쟁점 법안에 대한 협상 진행 상황과 대응 논리를 체계적으로 공유했다. 간호법 등 여야 쟁점 법안에 대해서는 소관 부처 장관이 참여한 가운데 여당 의원들과 정책 의원총회를 진행했다. 민감한 현안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의원 개개인이 정책 현안에 대해 완벽하게 공부가 돼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지역구 챙기기’ 법안= 영남권 의원답게 '지역구 챙기기'도 그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다. 쉽게 공약을 내걸지는 않지만, 한 번 내뱉은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국민의힘 텃밭'인 대구에서 이미 3선을 한 만큼 다음 총선 관문을 넘기 위해서는 지역 민원 해결 실적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지역 민원법 통과에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은행 본점을 대구에 두도록 하는 중소기업은행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원내수석부대표를 할 때는 지역 숙원사업인 물기술산업법을 통과시켰고, 원내대표가 된 후에는 전임자인 주호영 전 원내대표가 추진한 광주 군공항 이전법과 대구경북(TK) 신공항 특별법 패키지를 본회의에서 통과시키는 역할을 했다. 양곡관리법, 간호법을 둘러싸고 정국이 냉각된 상황에서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지역민들의 숙원사업에 어렵게 여야가 합의한 만큼 신속하게 본회의에 올려 통과시키자고 제안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에게 ‘원포인트’ 법사위 개최를 설득하면서 두 법안이 빠르게 본회의 궤도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고 한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목소리 크다고 이기는 건 아냐” 협치 추구하는 의회주의자
원내대표 당선 이후 자세 낮추며 “앞으로 ‘윤 순경’ 되겠다”
‘경찰대 수석 입학 및 수석 졸업’의 기록을 보유한 대구·경북(TK) 지역 3선 의원이다. 경남 합천 태생인 윤재옥은 대구 오성고를 나와 경찰대 1기를 수석으로 입학하고 수석으로 졸업했다. 이후 경북지방경찰청장, 경찰청 정보국장, 경기지방경찰청장 등 경찰 조직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12년 총선에서 대구 달서구을 국회의원에 당선돼 19대 국회에 입성했다. 이후 같은 지역구에서 20대, 21대 국회까지 내리 3선을 했다.경찰청을 관할하는 행정안전위원회 간사에 이어 20대 국회에서는 자유한국당 원내수석부대표를, 21대 국회에선 정무위원장과 외교통일위원장을 지냈다. 20대 대선을 앞두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중앙선거대책본부 부본부장 겸 상황실장을 맡았다. 2023년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윤재옥을 말해주는 키워드
▶'경찰대 1호' 국회의원= 윤재옥은 ‘경찰대 1호 제조기’로 통한다. 1981년 224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경찰대 1기에 수석 입학했고, 수석으로 졸업했다. 경찰대 역사상 아직 깨지지 않은 기록이라고 한다. 1985년 경찰대 졸업식 당시 "수석 졸업의 영광보다는 국립 경찰대학의 제1기 졸업생이 됐다는 데 더 긍지를 느낀다"는 겸손한 소감을 남겼다. 이후 경찰로서의 삶은 이를 증명하는 과정이었다. 경감 총경 경무관 치안감 치안정감 등 모든 직급에 ‘경찰대 출신 1호’로 진급했다.겸손한 성품으로 후배들의 신망도 두터웠다. 경찰 재직 시절 ‘일이 잘되면 창문을 보고, 일이 잘못되면 거울을 보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일이 잘되면 창문 밖 직원들이 도와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일이 잘못되면 거울을 보며 부족한 점을 반성했다는 의미다.
2010년 1월 40대 나이에 경기지방경찰청장 자리에 올라 유력한 경찰청장 후보였으나, 조현오 전 청장에게 밀려 낙마하면서 경찰복을 벗었다. 일각에서는 경찰대와 비경찰대 사이의 갈등에 대한 책임으로 낙마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당시 그는 퇴임식에서 “개인의 명예를 위해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공직자로서 자중자애해야 한다.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진다”고 말해 묘한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시 현역이던 이해봉의 불출마로 빈 대구 달서구을에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해 경찰대 출신 최초의 국회의원이라는 타이틀까지 얻게 됐다.
의정 활동의 상당 기간을 경찰청을 관할하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소속돼 활동했다. 당시 "때로는 후배들의 잘못을 앞장서 들춰내고 추궁해야 함에 마음이 무거울 때가 많지만, 1등 치안의 1등 경찰이 될 수 있도록 쓴소리를 하는 것이 국회의원 윤재옥이 경찰을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표현하며 경찰 조직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나’를 내세우지 않는 정치인= 화려한 스펙과 달리 좀처럼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정치인이다. "부고 빼고는 기사화를 원한다"는 일반적인 국회의원에 대한 인상과는 대조적이다. 원내대표가 되기 전까지 당내에서는 “샤이하고 과묵한 성격”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술도 거의 마시지 않는다. 3선 중진 의원임에도 의원총회 등 현장에서 여러 의원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앉아 있는 모습이 주로 목격됐다.
흥분하거나 목소리를 높이는 법이 없고, 꼭 필요한 말만 하는 편이다. 그만큼 신중하고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자신이 추구하는 바도 ‘소리 없이 강한 정치’다. 윤재옥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아무리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기는 세상이라 하지만 묵묵히 우직하게 자기 일을 성실하게 추진하고, 원래 지향한 목표를 하나씩 달성해 가는 개인과 기업이 더 존경스럽다”고 표현했다. 좌우명은 ‘절제와 균형’이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성품 때문에 대중 정치인으로서의 한계를 보인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3선 중진 의원임에도 대중적 인지도가 높지 않다는 평가다. 좀처럼 자극적이고 화제가 되는 발언은 하지 않아 언론에 노출되는 일도 적었다. 원내대표 선거 출마는 정치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그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는 나를 내세우는 정치를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중진 의원으로서 역할을 해야 할 때가 됐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선거 공보물 표지에 자신의 사진 대신 선거 캠프 때 사용한 야전침대 사진을 넣은 것은 이런 그의 성품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소리 없이 강한 리더십= 나를 내세우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를 배려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그의 태도는 목소리를 키우지 않고도 당내 리더십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 핵심 당직을 맡고 있는 한 국민의힘 의원의 전언이다. “국회에 처음 입성했을 때 한강이 한눈에 보이는 고급 일식당에 식사 초대를 받았다. 초선 의원과 만나는 자리인데 국회 근처에서 편하게 먹을 수도 있을 텐데, 상대를 귀하게 여기고 대접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후에도 초선 의원들과 일대일로 식사 자리를 만들고, 골프 모임을 함께하기도 했다. 진중한 모습과 대비되는 섬세한 '선물 센스'도 의원들 사이에서 회자된다. 한 여성 의원은 “화이트데이에 평범한 초콜릿이 아니라 명품 브랜드 핸드크림을 선물받았는데, 가격을 떠나 선물 하나를 고를 때도 정성스럽게 챙긴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이 밖에 윤 원내대표는 초선 의원들이 꼭 필요한 순간에 도움을 주면서 차곡차곡 관계를 쌓았다고 한다. 2023년 4월 원내대표 선거에서 ‘수도권 원내대표론’을 내세운 김학용 의원을 제치고 당선된 데는 이 같은 치밀함과 성실함이 배경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21대 국회에서 정무위원장직을 맡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상임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피감기관이나 공직자, 참고인, 증인들에게 늘 존댓말을 쓴다. 정무위원회는 유독 피감기관이 많은데, 피감기관 기관장들과 꼭 한 차례씩 만나 식사를 하고 현안을 공부했다.
사모펀드 사태, 암호화폐 논란 등 굵직한 현안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정무위원회는 가장 분위기가 좋은 상임위 중 하나로 꼽혔다. 국민의힘 소속 정무위원장이었지만 윤재옥은 최대한 민주당 입장에서 사안을 바라보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국정감사 기간에는 정무위 소속 민주당 의원 전원과 돌아가며 식사를 했다. 서로에게 공격의 칼날을 들이대야 하는 국감 특성상 여야 대립이 심해지면서 상대 당 의원과는 만남도 꺼리는 분위기가 팽배할 때였다. 윤재옥은 식사 소통을 이어가면서 민주당 의원들의 마음을 열었고, 이는 원활한 상임위 운영의 밑바탕이 됐다.
윤재옥의 결정적 순간
▶'드루킹 특검법' 협상=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윤재옥은 2018년 자유한국당 시절 원내수석부대표를 맡아 ‘드루킹 특검법’을 통과시킨 경험을 이렇게 표현한다. 숫자로만 보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시에는 '여소야대'가 아니라 '여대야소' 국면의 힘없는 야당이었기 때문이다. 김성태 당시 원내대표는 단식 투쟁과 천막 농성으로 협상력을 높였고, 실무 협상은 윤재옥이 모두 책임졌다.윤재옥은 "민주당과의 실무 협상은 전쟁 그 자체였다"고 표현했다. 합의한 내용도 자고 일어나면 뒤집어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는 협상은 '힘'으로만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믿었다. 지킬 것은 지키고, 양보할 것은 양보하면서 접점을 찾아나갔다.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 입장에선 추가경정예산안 처리가 급하다는 점을 파고들었다. 자유한국당은 추경안과 특검법을 동시에 통과시키는 방식으로 '드루킹 특검'을 관철시키게 된다. 이 협상으로 그의 치밀하고 꼼꼼한 협상력이 증명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쓴소리 위원장’에서 ‘야전 사령관’으로= 검찰의 핵심 요직을 거친 윤석열 대통령과 엘리트 경찰 코스를 밟은 윤재옥 사이에는 접점이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1년 국민의힘에 입당한 후 몇 달 뒤 김태호 의원 부친 장례식장에서 우연히 만난 것이 첫만남이었다.
윤재옥이 2022년 윤석열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전략자문위원장을 맡으며 두 사람의 본격적인 인연이 시작됐다. 매주 윤 후보에게 민심을 전달하는 자리였는데, 당시 윤 후보는 그를 '쓴소리 위원장'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구원투수 역할도 했다. 여론조사에서 윤 후보의 지지율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역전당하면서 기존 선대위를 해체하고 꾸려진 선대본부에서 상황실장으로 발탁된 것. 윤 원내대표는 당시를 회상하며 "상황실장은 판단하고 결정하는 자리였는데, 상황실이 일할 수 있도록 꼬이고 얽힌 것들을 풀어주는 것이 내 역할이었다"며 "캠프 각 분야의 업무를 빠르게 조율하고,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자세로 일하자 조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상황실장이 되자마자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5층 상황실에 간이침대를 들였다. 씻을 때를 제외하고는 상황실에 상주하며 24시간 실무자들에게 보고를 받았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건의 결정 사항이 그의 손을 거쳐갔다. "보고 책임은 내가 진다"며 부정적인 보고에 대한 당직자들의 마음의 부담을 줄여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와 함께 일한 적이 있는 사람은 입을 모아 '치밀하고 꼼꼼하다'는 평가를 한다. 단순히 꼼꼼하기만 한 게 아니라 '일이 되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했다. 윤석열 캠프에서 그와 함께 일했던 당 지도부 관계자는 "권영세 선대본부장은 똑똑하고 선이 굵은 스타일이었다면, 윤재옥 부본부장 겸 상황실장은 똑똑하면서도 꼼꼼한 스타일"이라며 "중요한 포인트를 알고 꼭 필요한 부분을 치밀하게 챙기면서 선거 캠프에서 시너지가 났다"고 평가했다. ▶원내대표 당선= 지난 5월 새 원내사령탑을 뽑은 국민의힘에 필요한 것은 '안정'이었다. 최고위원들의 잇따른 설화와 대통령 거부권 행사에 따른 정국 경색으로 내우외환에 빠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수도권 원내대표론'을 내건 김학용 후보와 '치밀한 전략통'임을 내세운 윤재옥 후보 간의 2파전이었다. 김기현 대표를 포함해 당 지도부가 영남권으로 꾸려진 상황에서 수도권 의원인 김학용 후보가 앞서고 있다는 전망이 우세했다. 윤 후보는 포기하지 않았다. 경선날 정견발표에서 20% 의원들의 표심이 뒤집힌다는 판단으로 정견 발표문을 고치고 또 고쳤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자신이 어떻게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부터 공천 물갈이를 우려하는 영남권 의원들을 겨냥해 "공천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맞춤형 멘트까지 선보였다. 결과는 21표 차 승리. 국회 입성 때부터 그와 인간적 신뢰를 쌓은 '신(新)윤핵관' 박성민 전략기획부총장이 윤재옥을 밀면서 판세가 뒤집혔다는 후문이다. 원내대표 취임 직후 자신이 주재한 첫 원내대책회의에서 그의 취임 일성은 "앞으로 '윤 순경'이 되겠다"는 것이었다. 치안정감(1급)이 마지막 계급이었던 윤 원내대표가 9급 순경을 자처한 것이다. 겸손한 자세로 상임위 정책 전반을 꼼꼼하게 챙기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면서도 필요할 땐 당의 기강을 잡는 역할을 했다. 민주당이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을 본회의에서 재의결하려고 하자 의원들에게 출국금지령을 내렸다. 장관을 겸직하고 있는 의원들에게까지 총동원령을 내렸다. 민주당보다 의석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참석률이 저조해 법안이 통과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였다. 결국 본회의에 다시 돌아온 양곡관리법은 최종 부결돼 폐기됐다.
윤재옥의 관심사
▶의회 정치 복원= 원내대표 선출 직후 원내대책회의가 열리는 국회 본청 245호에는 '의회 정치 복원'이라는 문구가 쓰인 현수막이 걸렸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거야(巨野)의 입법 폭주에 휘둘리는 상황이 반복된 가운데 협상력을 발휘해 의회 정치를 복원하겠다는 의지였다. 이런 점에서 자신을 '매파'이자 '비둘기파'라고 표현한다. 얻어낼 것이 있다면 때로는 양보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당내에서는 상임위 간사에게 수시로 현안을 보고받으면서도 이들에게 협상력을 주며 원내 현안을 체계적으로 관리했다. '주 69시간 논란'으로 브레이크가 걸린 윤석열 정부의 노동 개혁을 뒷받침하기 위해 노동개혁특별위원회를 '1호 특위'로 구성하고 개혁안 마련 작업에 착수했다. 당 밖으로는 야당과의 주기적인 소통 창구를 개설했다. 박광온 민주당 원내대표와 매주 월요일 오찬을 함께하며 주요 현안에 대해 의견을 조율한다.
의원들에게 쟁점 법안에 대한 협상 진행 상황과 대응 논리를 체계적으로 공유했다. 간호법 등 여야 쟁점 법안에 대해서는 소관 부처 장관이 참여한 가운데 여당 의원들과 정책 의원총회를 진행했다. 민감한 현안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의원 개개인이 정책 현안에 대해 완벽하게 공부가 돼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지역구 챙기기’ 법안= 영남권 의원답게 '지역구 챙기기'도 그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다. 쉽게 공약을 내걸지는 않지만, 한 번 내뱉은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국민의힘 텃밭'인 대구에서 이미 3선을 한 만큼 다음 총선 관문을 넘기 위해서는 지역 민원 해결 실적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지역 민원법 통과에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은행 본점을 대구에 두도록 하는 중소기업은행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원내수석부대표를 할 때는 지역 숙원사업인 물기술산업법을 통과시켰고, 원내대표가 된 후에는 전임자인 주호영 전 원내대표가 추진한 광주 군공항 이전법과 대구경북(TK) 신공항 특별법 패키지를 본회의에서 통과시키는 역할을 했다. 양곡관리법, 간호법을 둘러싸고 정국이 냉각된 상황에서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지역민들의 숙원사업에 어렵게 여야가 합의한 만큼 신속하게 본회의에 올려 통과시키자고 제안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에게 ‘원포인트’ 법사위 개최를 설득하면서 두 법안이 빠르게 본회의 궤도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고 한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