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셀로 속의 불안, 질투보다 무서웠던 그것
“장군님, 질투를 조심하세요.”

때 아닌 셰익스피어 붐이다. ‘오늘 밤도 셰익스피어는 공연된다’는 말처럼 전 세계 극장 어디에서든 셰익스피어 작품이 올려지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라지만,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이 이렇게 비슷한 시기에 공연된 적이 있었나.

그러고 보니,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이었던 2014년 이후 무척 오랜만의 일이다. 지난 봄 국립오페라단이 베르디 오페라 ‘맥베스’(4.27~30,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로 문을 열더니, 예술의전당 개관 30주년 기념작으로 ‘오셀로’(5.12~6.4 토월극장)가 공연되고, ‘최고령 리어왕’으로 기네스북에 도전하는 이순재의 ‘리어왕’(6.1~6.18 LG아트센터), ‘플레이 위드 햄릿’(6.23~7.9, 산울림소극장), 여기에 ‘베니스의 상인들’(6.8~6.11 국립극장 해오름극장)까지 창극으로 공연될 예정이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은 엘리자베스 여왕에서 제임스 1세로 왕권이 넘어가던 시기에 완성되었다. 정권이 교체되는 시대의 불안 속에서 탄생한 4대 비극의 인물들은 긴 시간을 관통하는 메시지로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말을 건네고 있다.

나는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에서 <맥베스>를 가장 높게 치고, <오셀로>가 가장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왔다. 셰익스피어의 장기는 나약한 인간을 옴짝달짝 못하는 운명의 수레바퀴 아래 밀어넣고 ‘이제 어쩌나 보자’라는 음흉한 시선으로 사건을 펼쳐내는 것이지만, 무어인 장군 오셀로에게 던져놓은 이아고의 미끼는 도무지 손쓸 수 없는 궁지다. 그 무서운 미끼가 바로 ‘아내의 사랑을 의심하는 질투’다.

사실 <오셀로>는 엉뚱한 제목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오셀로가 아니라 '이아고'다. 오셀로가 속수무책으로 스스로 파멸해 갈 때, 이아고는 연극의 장마다 모든 계략을 휘몰아치며 입체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이아고 역의 손상규 배우는 그간 여러 작품에서 연기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2016년 국립극장 무대에 오른 로버트 알폴디 연출의 ‘겨울이야기’가 지금도 인상 깊게 남아 있다.

이 역시 셰익스피어 작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오셀로’에서 손상규 배우는 오셀로에게 질투의 불꽃을 지펴 파멸로 몰아가는 이아고 역을 맡았지만, ‘겨울이야기’에서는 자신의 친구와 부인이 식사자리에서 나누는 가벼운 스킨쉽을 보고 질투에 불길에 휩싸이는 주인공 레온테스 왕 역을 맡았다.
오셀로 속의 불안, 질투보다 무서웠던 그것
‘오셀로’에서도 그는 자칫 비극의 침울함으로만 흐를 수 있는 무대에서 힘의 강약을 조절해 웃음을 주면서도 오셀로를 파멸로 빠트리면서 느끼는 일말의 죄책감과 양심 사이를 배회하는 간악한 이아고라는 인간상을 보여주었다. 국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은 언제나 극장의 ‘아우라’를 만들어낸다. 깊은 공간감을 한껏 활용하여 어두운 벙커로 설정한 여신동의 무대도 좋았고, 특히 1막 빗물 떨어지는 장면이 만들어내는 청각의 감각만 오롯이 돋게 하는 수분의 여백 연출은 무척 아름다웠다.

공연을 보고 나오는데 문득, 깨달았다. 오셀로를 파멸에 이르게 한 것은 이아고가 아니라 오셀로 자기 자신이었음을. 아내에 대한 질투가 아니라 스스로의 불안이었음을. 이 무어인 장군은 온갖 전쟁터를 누비며 용기와 강인함을 칭송받았지만, 그는 자신의 검은 피부 때문에 사회의 이방인으로 살아가며 주류 사회에 진입하지 못하게 될 두려움이 늘 뒷덜미를 잡았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이젠 늙어가는 자신의 육체에 대한 불안은 젊고 아름다운 아내 데스데모나와 자신의 충직한 부하 카시오가 사랑을 나누었다는 믿음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아고가 오셀로에게 경고했건만 소용없다. “장군님, 질투를 조심하세요.” 파스빈더 감독 영화의 제목처럼 불안은 질투를 넘어 영혼을 잠식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