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실버타운 실습생이 됐다…'인어공주' 다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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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문화재단 계간지 <대산문화> 여름호
고정욱 등 여섯 작가의 '인어공주 이어쓰기'
고정욱 등 여섯 작가의 '인어공주 이어쓰기'
영화 '인어공주' 중 한 장면.
"내가 인어실버타운의 실습생이 된 지는 이제 갓 한 달이 지났다."(김유담의 단편소설 '열다섯 살' 중에서)
디즈니 실사 영화 '인어공주'가 화제인 요즘, 대산문화재단이 발간하는 계간지 <대산문화> 여름호에 소설가들이 다시 쓴 인어공주 이야기가 실렸다. '열다섯 살'을 비롯해 총 여섯 편이다.
참여 작가는 고정욱, 해이수, 강성은, 이신조, 김유담, 전삼혜 등 여섯 명이다. 이들은 '안데르센 동화 인어공주 이어쓰기' 코너를 통해 인어공주 동화를 재해석하거나 뒷이야기를 상상한 단편소설들을 공개했다.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예컨대 소설가 김유담의 소설 '열다섯 살'은 공주와 왕자가 있는 중세가 아닌 먼 미래, 2183년을 배경으로 삼았다. 미래 사회에서 부유한 노인들은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인어가 되는 수술을 받는다. 인간은 길어야 120살 언저리를 살지만, 인어의 평균 수명은 300살이 넘기 때문. 이 수술은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가족 중에 인어가 있다는 건 부유함의 상징이다. '인어수저'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이 이야기가 허무맹랑하게 다가오지 않는 건 현실의 어떤 장면들이 스치기 때문이다. 열다섯 살 주인공 ‘나’는 마이스터고에 진학해 인어실버타운의 실습생으로 일한다. '나'는 전문잠수부가 아니지만 제주 출신이라 잠수를 잘한다는 이유로 심해 심부름 업무를 떠안는다. 미성년자인 실습생이 어른들의 방임 또는 압력에 떠밀려 바다로 향하는 이야기는 현실의 비극을 떠올리게 한다.
소설 속 '나'의 독백은 긴 여운을 남긴다. "인어공주는 열다섯 살에 죽었다. 지금의 내 나이다. (생략) 어떤 10대들의 꿈은 너무 쉽게 물거품이 되어버리곤 한다. 그걸 그들의 선택이라고만 말할 수 있는 걸까."
아름다운 목소리로 인간을 유혹해 목숨을 빼앗는 '세이렌'으로 인어를 재해석한 '사랑을 잃고 나는 부르네'(전삼혜), 빨래방 세탁기 속 물거품으로 살아가는 인어공주를 그린 '세탁기 속의 그녀'(이신조) 등도 우리가 전혀 몰랐던 인어공주를 보여준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