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미국법인은 2019년까지 5년 연속 적자에 시달렸다. 급성장하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시장에 대응할 신차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9년 대형 SUV 팰리세이드, 2020년 고급 SUV GV80 등을 현지 투입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현대차그룹, 배당 받아 전기차 투자…"빌리는 돈 줄이고 경상수지 개선 기여"
현대차 미국법인은 2020년 3001억원을 벌어들이며 흑자로 돌아선 뒤 2021년 1조285억원, 지난해 2조5494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12일 현대차그룹이 역대 최대 규모인 59억달러(약 7조8000억원)의 해외법인 유보금을 국내 본사에 배당하기로 결정한 배경이다.

현대차 미국법인뿐 아니다. 이번 국내 배당에는 인도법인, 체코생산법인 등도 참여했다. 지난해 인도법인은 7109억원, 체코생산법인은 6801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현대차가 이번에 국내에 들여오는 해외법인 잉여금 21억달러(약 2조8100억원)는 미국, 인도, 체코에서 지난해 벌어들인 돈(3조9404억원)의 약 71%에 해당한다.

기아는 이번에 33억달러를 들여온다. 미국법인, 오토랜드슬로바키아, 유럽법인 등이 참여했다. 기아 미국법인 역시 지난해 2조5255억원을 벌어들이며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경영 실적이 개선되면서 많은 잉여금을 보유한 해외법인이 이번 본사 배당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정부의 법인세법 개정도 현대차그룹의 ‘자본 리쇼어링’에 큰 역할을 했다. 작년까지는 해외 자회사의 잉여금이 국내로 배당되면 해외와 국내에서 모두 과세된 뒤 일정 한도 내에서만 외국 납부세액을 공제받아 사실상 ‘이중과세’의 부담을 떠안아야 했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해외에서 이미 과세된 배당금에 대해서는 배당금의 5%에 한해서만 국내에서 과세하는 방식으로 법이 개정됐다.

현대차그룹의 자본 리쇼어링은 우선 그룹 재무구조 개선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2030년까지 국내 전기차 분야에 24조원을 투자할 계획인 현대차그룹은 이번 해외법인 유보금 배당 덕분에 그만큼 차입을 줄일 수 있게 됐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배당금을 차세대 전기차 전용 플랫폼 개발, 제품 라인업 확대 등에 활용할 계획이다.

국내 경상수지 개선 효과도 기대된다. 지난 4월 경상수지는 한 달 만에 7억9000만달러 적자로 돌아섰다. 이는 외국인 배당으로 인해 배당소득수지가 5억5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한 영향이 컸다. 현대차 해외법인의 국내 배당은 배당소득수지 흑자 전환을 통한 경상수지 개선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국내 달러 공급 증가에 따른 환율 안정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재계에선 삼성, SK, LG 등 글로벌 대기업들이 자본 리쇼어링에 동참할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해외 소득의 국내 재투자를 통한 부가가치와 일자리 창출 효과가 기대된다”고 분석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