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전쟁터의 패션피플…하늘하늘 레이스도 군복이었다
"패션도 여유가 있을 때나 챙기지…."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생각을 한다. 돈이건, 시간이건 여유가 있어야 옷, 신발, 가방에 눈이 간다는 얘기다. 하지만 총탄이 날아오고 생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전쟁터에도 '패피(패션 피플)'는 있었다. 그리고 그 때 태어난 패션중 상당수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쟁 스토리 텔러'로 잘 알려진 남보람은 신간 <캣워크 위의 나폴레옹>을 통해 전쟁 속 피어난 패션 이야기를 펼친다. 이번 신간은 그가 지금까지 펴낸 '전쟁 그리고 패션'의 세번째 시리즈다. 그는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군사 기록 및 전쟁사를 연구하며 이른바 '전쟁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군복 패션의 진수는 모자에서 찾을 수 있다. 군인들이 생존을 위해 발명한 모자가 민간에 전파되면서 패션이 됐다. 가장 대표적인 게 겨울철 흔히 볼 수 있는 털모자 '비니'다. 비니의 정확한 명칭은 '와치 캡'. 영국에서 배를 타던 선원들이 쓰던 모자를 미국 해군이 1930년대부터 군용품으로 병사들에게 보급했다.

비니의 가장 큰 특징은 머리에 딱 달라붙는 재질에 모자 높이가 낮다는 것이다. 전투에 잘 맞게 디자인한 것이다. 머리에 딱 맞고 위에 남는 부분이 없어야 쉽게 벗겨지지 않는데다 위에 전투모를 쓰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이 군용 모자가 일반인들에게 인기를 끌게 된 건 영화배우 스티브 맥퀸의 영향이 컸다. 그는 당대 최고 출연료를 받는 배우이자 패션 유행을 선도하는 스타였다. 그는 미국에 '밀리터리 룩'을 들여온 선구자로 통한다. 미 해병대에서 복무했던 맥퀸은 제대 후 영화배우 활동을 하면서도 군복을 즐겨 입고 와치 캡으로 불렸던 비니를 자주 착용한 채 공식 석상에 섰다. 그 모습에 매료된 미국인들이 너도나도 비니를 쓰기 시작했고, 이게 패션이 됐다.

오늘날 여성복에서 자주 보이는 디자인 '레이스'. 하늘하늘한 매력에 여성들이 자주 입는 블라우스와 원피스에 주로 쓰이는 요소다. 하지만 이 레이스도 군복에서부터 유래된 패션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군복과 레이스가 어울리나?'라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적의 눈에 띄지 않아야 하는 군인에게 화려한 레이스는 '나 여기 있습니다'라고 알려주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레이스 군복은 군악대에만 지급됐다. 군악대 군복의 빨간 바탕에 금장, 은장 장식이 모두 레이스다. 군악대는 군대가 행진할 때 선봉에 섰고, 교전 때는 나팔로 신호를 보내주는 이른바 '통신 수단'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이들을 다른 병사들과 구분하자는 의미에서 군복에 레이스를 달아주었던 것이다.

이런 군악대용 레이스가 예뻐 보였던 장교들은 18세기 들어 자신의 군복에도 하나 둘 레이스를 달기 시작했다. 그러다 18세기 중반에는 대부분의 장교들이 레이스가 달린 군복을 입었다. 19세기엔 화려한 군복이 기본 복장이 됐다. 계급장 주변, 목 부분, 소매, 바짓단에 레이스를 한껏 달아 화려하게 꾸몄다. 이 시절 군부대 단체 사진을 보면 마치 날개를 편 공작마냥 누구의 군복이 더 화려한가 경쟁하는 것처럼 보인다.

전쟁이 낳은 신소재도 있다. 옷감에 자주 쓰이는 흔한 합성섬유 '나일론'이다. 나일론을 처음으로 발명한 회사는 미국 듀폰이다. 이들은 1934년 나일론 합성에 성공해 4년 후인 1938년 시포드에 세계 첫번째 나일론 공장을 세웠다.

듀폰은 전쟁 기업이었다. 나일론을 발명하기 한참 전부터 탄약 등 전투 물자를 미군에 보급했다. 나일론은 보온복, 낙하산 등에 쓰이는 고급 소재 실크를 대체하며 점점 세력을 넓혔다.

1941년 12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나일론은 옷 뿐 아니라 총기 끈, 타이어, 밧줄, 연료통 등 여러 곳에 쓰이기 시작했다. 유연하고 탄력이 좋은데다 가격마저 쌌기 때문이다. 나일론의 영토는 전쟁 이후 일반 의류로 확대됐다.

책은 패션이라는 쉬운 주제를 통해 전쟁사를 풀어낸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군사학을 잘 몰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풍부한 자료 사진 덕분에 술술 읽힌다.

하지만 너무 다양한 내용을 담으려다 보니, 이야기가 중구난방으로 섞인 측면이 있다. 모자 이야기를 하다가 양말로 넘어가더니, 다음 장에서 다시 모자로 돌아온다. 신발 끈처럼 꼬여버린 이야기만 잘 정돈하면, 쉽고 재미있는 군사 관련 책으로 추천받을만 하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