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을 통째로 중국에 복제하려고 했던 시도가 알려지면서 산업계는 충격에 휩싸인 분위기다. 국내 간판 반도체업체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만 28년간 근무해온 주요 임원이 중국 자본의 유혹에 핵심 기술을 통째로 넘기려 한 점은 이전의 기술 유출을 뛰어넘는 사례로 꼽힌다. 여기에 중국 지방정부, 대만 자본 등이 손잡고 ‘타도 삼성’을 겨냥한 ‘노하우 탈취’를 시도했다는 것이 특히 주목할 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상상초월’ 기술 유출에 업계 긴장

이번 사건의 주범인 A씨는 삼성전자 상무, SK하이닉스 부사장 등을 지낸 반도체 분야 대표 전문가다. 그는 삼성전자 ‘공장 복제’를 위해 회사 설립에서부터 투자금 유치, 인력 영입 등을 치밀하게 준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청두시로부터 4600억원을 확보해 중국에 회사를 세웠다. 대만에서는 손꼽히는 전자제품업체로부터 8조원대 투자를 약속받고 싱가포르에 반도체업체를 설립했다. 두 회사를 통해 한꺼번에 복제 공장 건설을 추진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존 연봉의 두 배 이상을 제시하는 파격 당근책으로 국내 반도체 전문가 200여 명을 영입했다.

대만 기업이 약정한 8조원 투자가 불발되면서 한쪽에서 추진하던 공장 설립은 실패했지만, 청두시 자본이 대거 투입된 회사는 지난해 반도체공장 중 연구개발동을 완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제품도 생산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국내 반도체산업 기술의 상당 부분이 유출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솜방망이 처벌'에 더 대담해지는 기술 유출
업계에서는 이번 기술 유출 사건을 두고 중국 지방정부와 대만 자본이 손잡고 삼성전자가 오랫동안 축적한 기술 노하우를 단숨에 탈취하려는 시도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중국, 대만 등이 반도체 분야에서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반도체기업의 중요 경쟁 상대라는 점, 삼성전자 청두 공장에서 불과 1.5㎞ 떨어진 지역에 복제 공장을 지으려 한 대담함 등을 고려할 때 이 같은 분석에 설득력이 있다.

첨단기술을 해외로 빼돌리려는 시도가 갈수록 거세지면서 국내 기업들은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월 미국 반도체기업 인텔로 이직을 준비하던 중 최첨단 3㎚(나노미터·1㎚=10억분의 1m) 공정과 관련한 기밀을 외부로 유출한 혐의를 받는 삼성전자 직원이 구속 기소됐다. 그해 10월엔 삼성엔지니어링의 반도체 초순수시스템 첨단기술 자료를 중국 업체에 유출한 삼성엔지니어링 전·현직 연구원 등 9명이 한꺼번에 재판에 넘겨졌다. 올 들어서도 삼성전자의 자회사인 세메스의 반도체 세정장비 기술을 중국에 넘긴 세메스 전 직원과 협력업체 대표 등이 기소됐다.

기술 유출 규모 갈수록 커져

업계와 법조계에서 초대형 기술 유출이 가능한 데는 솜방망이 형사 처벌도 일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검찰청의 ‘기술 유출 범죄 양형기준에 관한 연구’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부터 8년간 기술 유출 관련 범죄로 유죄를 선고받은 496명(1심 기준) 중 실형 사례는 73명에 불과했다. 실형을 받더라도 평균 형량이 징역 12개월에 그쳤다.

양형기준이 현행법에서 정한 형량보다 낮다 보니 ‘솜방망이’ 처벌이 이어지고 기술 유출 범죄도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현재 양형기준은 해외로 기술을 빼돌린 범죄의 형량을 기본 징역 1년~3년6개월, 가중 처벌하면 최장 징역 6년으로 규정한다. 국가 핵심기술을 해외로 유출했을 때 3년 이상 징역을 받는다는 산업기술보호법보다 양형기준이 낮은 셈이다. 대법원은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난 산업 유출 사례를 고려해 이날 양형위원회를 열고 기술 유출 범죄의 양형기준 변경 방안을 논의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