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도화>, 자연과의 교감을 노래한 청록파 시인 박목월의 첫 시집
― 박목월 시집 / 산도화(山桃花) / 영웅출판사 / 1955년 12월 20일 초판 발행


박목월(朴木月, 1915~1978) 시인의 본명은 박영종(朴泳鍾), 경상북도 월성군(지금의 경주시) 출신이다. 1935년 대구 계성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잠시 머물다 귀국했다. 1946년 무렵부터 교직에 종사하여 대구 계성중학교, 이화여자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연세대학교·홍익대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1962년부터 한양대학교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한때 출판사 산아방(山雅房)·창조사(創造社) 등을 경영하기도 했으며, 잡지 <아동>(1946)·<동화>(1947)·<여학생>(1949)·<시문학(詩文學)>(1950∼1951) 등을 편집했고, 1973년부터는 월간 시 전문지 <심상(心象)>을 발행하기도 했다.

박목월은 1933년 잡지 <어린이>에 출품한 동시 ‘통딱딱 통딱딱’이 특선으로 뽑혔고, 같은 해 <신가정(新家庭)>에 동요 ‘제비맞이’가 당선된 이후 동시를 쓰는 것으로 시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939년 9월 본격 문예지 <문장(文章)>에 ‘길처럼’, ‘그것은 연륜(年輪)이다’ 등으로 정지용(鄭芝溶, 1902~1950) 시인의 추천을 받았고, 이어서 ‘산그늘’(1939.12), ‘가을 으스름’(1940.09), ‘연륜(年輪)’(1940.09) 등을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이름을 올렸다.

1930년대 말부터 세상에 나온 박목월 시인의 초기 작품들은 향토적 서정에 민요적 율조가 가미된 짤막한 서정시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문학적 경향은 <청록집>(1946)·<산도화>(1955) 등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6·25전쟁을 겪으면서 이러한 향토적 서정성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여 1959년에 간행된 시집 <난(蘭)·기타>와 1964년의 <청담>에 이르면 현실에 대한 관심이 작품 속에 표출되고 있다. 인간의 운명이나 사물의 본성에 관한 깊은 통찰과 함께 주로 가족이나 생활 주변에서 소재를 선택하되 여전히 담담하게 소박한 생활사상(生活事象)을 노래하고 있다. 1967년에 간행된 <어머니>는 어머니에 대한 찬미를 담고 있는 장시집(長詩集)으로 기독교에 귀의한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다. 1968년의 <경상도의 가랑잎>부터는 현실 인식이 더욱 심화되어 소재가 생활 주변에서 역사적·사회적 현실로 확대되고 있으며, 사물의 본질을 추구하려는 관념성(觀念性)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1973년 발행된 <사력질(砂礫質)>에서는 이 같은 양상이 더욱 심화되어 사물의 본질에 대한 냉철한 통찰이 담겨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밖에도 박목월은 <구름의 서정>(1956), <토요일의 밤하늘>(1958), <행복의 얼굴>(1964) 등의 수필집을 내기도 했으며, <보랏빛 소묘(素描)>(1959)는 자작시 해설로서 시작(詩作) 방법과 자신의 시 세계에 대해 풀어놓고 있다. 문학사적 측면에서 보면 김소월(金素月)과 김영랑(金永郎)을 계승하여 향토적 서정성을 심화시키면서도 애국적인 사상을 기저에 깔고 있으며, 민요조를 개성 있게 수용하여 재창조한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1955년 12월에 초판본이 발행된 <산도화(山桃花)>는 박목월 시인의 첫 시집이다. 유명한 “강나루 건너서/밀밭길을//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로 시작하는 시 ‘나그네’가 실려 있는 바로 그 시집이다.

박두진(朴斗鎭, 1916~1998), 조지훈(趙芝薰, 1920~1968) 등과 함께 이른바 청록파(靑鹿派)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박목월은 1939년부터 문예지 <문장>에 시를 발표하고, 3인시집 <청록집>을 발행하는 등 시인으로서 본격적으로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시집 <산도화>는 박목월 시인이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 지 15년이 넘어서야 비로소 펴낸 첫 시집인 셈이다.

이 시집 초판본은 4×6판(128㎜×182㎜) 크기에 본문 126쪽 분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모두 6부에 걸쳐 36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시작품 이외에 시인의 해제(解題)와 박두진·조지훈·황금찬(黃錦燦, 1918~2017) 시인의 발문(跋文)이 실려 있다.

먼저 표지를 보면 왼쪽 상단에 세로글씨로 단출하게 <시집 산도화>라는 한자 제목이 활자체로 선명하게 새겨져 있고, 다른 글자나 그림은 보이지 않는다. [사진1 참조]

<산도화>, 자연과의 교감을 노래한 청록파 시인 박목월의 첫 시집
[사진 1]

표지를 넘기면 표지와 본문을 연결해 주는 면지(面紙)가 나오고, 이어서 시인이 스스로 쓴 ‘해제(解題)’가 본문 맨 처음에 실려 있다. 첫 시집을 낸 시인의 소회(所懷)를 포함하여 자신의 작품 세계에 대한 설명을 통해 시집을 소개하고 있다.
해제에 이어 목차가 나온다. 이에 따르면 시집 1부에는 ‘구강산(九江山)1’ 등 8편, 2부에는 ‘산색(山色)’ 등 6편, 3부에는 ‘모란여정(牡丹餘情)’ 등 6편, 4부에는 ‘구름밭에서’ 등 6편, 5부에는 ‘임에게 1’ 등 5편, 6부에는 ‘월야(月夜)’ 등 5편이 수록되어 있다. [사진 2-1~3 참조]
<산도화>, 자연과의 교감을 노래한 청록파 시인 박목월의 첫 시집
[사진 2-1]
<산도화>, 자연과의 교감을 노래한 청록파 시인 박목월의 첫 시집
[사진 2-2]
<산도화>, 자연과의 교감을 노래한 청록파 시인 박목월의 첫 시집
[사진 2-3]

이처럼 3쪽에 걸쳐 조판되어 있는 차례가 끝나고 나면 이어서 속표지가 나타난다. 겉표지와 달리 속표지에는 좌우 중앙에 제목 ‘시집 산도화’와 함께 ‘박목월’이란 시인의 이름이 한자 활자체로 새겨져 있다. [사진3 참조]

<산도화>, 자연과의 교감을 노래한 청록파 시인 박목월의 첫 시집
[사진 3]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비로소 시작품이 등장하는데, 첫 번째로 실린 시는 ‘구강산1’이란 작품이다. 구강산(九江山)은 아홉 개의 강과 산이란 뜻을 품고 있으며 표제작 ‘산도화’에도 등장하는데, 실제로 존재하는 지명(地名)이라기보다는 시인이 꿈꾸고 있는 이상향 또는 상상의 표현이다.

이 시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모두 박목월 시인이 1940년대 초반에 쓴 시들로서 자연과의 교감(交感)을 바탕에 깔고 있다. 작품의 소재는 대부분 향토적인 색채를 띠고 있으며, 시인 스스로 밝히고 있는 것처럼 한국적인 정서 위에서 청춘의 애달픔을 노래하다 보니 우리 전통의 민요적인 가락에 기대고 있다는 점도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집의 표제작인 ‘산도화’ 연작시만 보더라도 자연에 깃든 선(仙)의 정신을 노래하고 있다. 표제작 ‘산도화1’을 시집 초판본에 실린 원문 그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사진4 참조]

<산도화>, 자연과의 교감을 노래한 청록파 시인 박목월의 첫 시집
[사진 4]

山桃花1

山은
九江山
보랏빛 石山

山桃花
두어송이
송이 버는데

봄눈 녹아 흐르는
玉같은
물에

사슴이
내려 와
발을 씻는다.

이 시에서 초판본에 실린 “사슴이/내려와/발을 씻는다”는 부분이 나중에 “사슴은/암사슴/발을 씻는다”로 바뀌게 된다. 그런데 기실 이 시집에 실려 있는 다른 시 ‘삼월’에서 “봄 눈 녹아 내리는/옥같은 물에//사슴은 앞사슴/발을 씻는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 밖에 박목월 시인을 비롯하여 박두진·조지훈 시인을 묶어 청록파(靑鹿派) 시인이란 별칭을 낳게 했다는 또 다른 대표작 ‘청노루’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산도화> 초판본에 실린 이 시의 원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사진5 참조]

<산도화>, 자연과의 교감을 노래한 청록파 시인 박목월의 첫 시집
[사진 5]

청노루

머언 산 靑雲寺
낡은 기와집

山은 紫霞山
봄눈 녹으면

오리목
속잎 피는 열두구비를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여기서도 <청운사>와 <자하산>은 <청노루>를 상징화하기 위해 만들어 낸 가상의 공간이다. 아울러 이 작품 역시 나중에는 연(聯) 구분 없이 “머언 산 청운사/낡은 기와집/산은 자하산/봄눈 녹으면/느릅나무/속잎 피어나는 열두 굽이를/청노루/맑은 눈에/도는/구름”으로 개작된 것을 볼 수 있다. 특이하게도 애초에 자작나무 계열의 ‘오리나무’를 왜 팽나무 계열의 ‘느릅나무’로 바꾸었는지 의아한 일이다. 아울러 시집 <산도화> 초판본에 실린 시 ‘나그네’를 원문 그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사진6 참조]

<산도화>, 자연과의 교감을 노래한 청록파 시인 박목월의 첫 시집
[사진 6]

나그네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南道三百里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시집 <산도화> 초판본 본문에 실린 작품 36편을 일별하고 나면 뒤이어 세 편의 발문(跋文)이 실려 있다. 박두진, 조지훈, 황금찬의 순으로 편집되어 있는 발문을 보면 그들의 끈끈한 우정과 더불어 인간 박목월과 시인 박목월의 면모를 고루 만날 수 있다. 작품집에 있어 대개의 경우 발문이 아예 없거나 한 편 정도 실려 있게 마련인데, 세 편이나 실려 있는 것도 이채롭다.

먼저 박두진 시인의 발문을 본다. 한마디로 “새삼스레 무슨 말을 하랴”로 요약되는 이 발문에서 박두진은 목월의 문학적 성과를 ‘불멸의 시업’으로 칭송한다. [사진7 참조]

<산도화>, 자연과의 교감을 노래한 청록파 시인 박목월의 첫 시집
[사진 7]
이어 조지훈 시인의 발문이 나오는데, 조지훈은 이 발문에서 주로 박목월 시인의 등단 무렵부터 첫 만남이 있었던 순간에 대한 회고와 더불어 문학적 교류의 세월에 대한 단상을 자세히 적고 있다. 여기서 조지훈은 어느 날 불현듯 목월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에 편지를 썼고, 목월이 “경주박물관에는 지금 노오란 산수유꽃이 한창입니다. 늘 외롭게 가서 보곤 하던 싸느란 옥적(玉笛)을 마음속에 그리던 임과 함께 볼 수 있는 감격을 지금부터 기다리겠습니다.”라는 답장을 보내온 것을 계기로 1942년 어느 이른 봄날 빗방울이 흩날리는 저녁 무렵에 ‘박목월’이란 깃대를 들고 마중을 나온 박목월과 경주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단다. [사진8 참조]

<산도화>, 자연과의 교감을 노래한 청록파 시인 박목월의 첫 시집
[사진 8]

세 번째 발문은 황금찬 시인의 것이다. 황금찬은 이 글에서 “벌써 나왔어야 할 시집이었다. 이 시집에 시기라는 말을 적용시킨다면 8·15 전후(前後)였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시집에 수록된 계열의 시가 그 당시에 있어서는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 시집의 출판이 좀 늦은 감도 있으나, 산나물 같은 생리(生理)를 지닌 시집을 대할 것이 새삼스럽기도 하다.”라는 말로 시작하여 이 시집에 실린 목월의 작품에 대한 시론적(詩論的) 견해를 써내려가고 있다. [사진9 참조]

<산도화>, 자연과의 교감을 노래한 청록파 시인 박목월의 첫 시집
[사진 9]

드디어 이 시집의 끝자락에 이르렀다. 본문 맨 마지막에 나와 있는 간기면을 보면 <우리의 맹서>를 가장 위에 두고 단기(檀紀)로 발행일이 표기되어 있다. 그 아래에 저자명과 발행인, 발행처, 등록번호, 인쇄소 등이 나타나 있고, 맨 아래에 정가 표시가 있는데, 이 시집의 정가는 400환(圜)으로 표기되어 있다. 다만, 발행처의 주소지가 없다. [사진10 참조]

<산도화>, 자연과의 교감을 노래한 청록파 시인 박목월의 첫 시집
[사진 10]

여기까지만 보면 이상한 점을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이 시집을 펴낸 영웅출판사(英雄出版社)가 자리한 곳은 서울이 아니라 대구였다. 발행인 한병용(韓秉庸)은 한국전쟁 직후 대구에서 영웅출판사를 세워 수많은 문인들의 책을 출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집을 인쇄한 청구출판사도 당시에는 전국적 규모를 자랑한 인쇄소였다고 한다. 오늘날 여전히 그 흔적이 남아 있는 대구지역의 인쇄·출판 산업의 위용이 그들로부터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박목월 시인이 대구에서 먼저 인연을 맺었던 출판사 현암사(玄岩社)가 1956년에야 서울로 근거지를 옮겼으니 이 시집이 나올 때까지만 해도 박목월 시인 또한 대구에서 활동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이 글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까 고민이 깊어졌다. 박두진 선생이 발문에서 “목월의 시에 대해서 내가 이제 새삼 무슨 말을 하랴”고 적었던 심정을 헤아리는 동안 문득 조지훈 선생의 발문 마지막 부분에 눈길이 머물렀다. 이로써 마무리에 갈음하는 것도 큰 허물은 아니겠다 싶어 띄어쓰기만 고친 채 여기에 그대로 옮긴다.

스무 해 가까운 生(생) 우리의 젊음도 많이는 갔고 우리의 詩(시)도 적지 않이 달라졌다. 그러나 처음 詩를 쓸 때에 그 마음은 다름이 없으며 서로 아는 本來(본래)의 그 詩觀(시관)에도 아무런 변함이 없음을 이글을 쓰면서 다시 깨닫는다. 詩 때문에 우리의 靑春(청춘)이 병들었더니 詩로하여 우리의 뜻이 다시 서게 되었구나.
木月(목월)! 그대의 半生經濟(반생경제)는 몇 편 詩가 남았는가. 그대 웃으며 가리키는 이 <山桃花(산도화)> 한 가지…… 옛날의 佛國寺(불국사)에 눈이 내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