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PRO] 한국거래소, 조회공시 허점 악용 속수무책…투자자들만 '눈물'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한경 마켓PRO 텔레그램을 구독하시면 프리미엄 투자 콘텐츠를 보다 편리하게 볼 수 있습니다. 텔레그렘에서 ‘마켓PRO’를 검색하면 가입할 수 있습니다.
상장사 답변에만 의존하는 조회공시 제도
이화그룹주 조회공시 위반해도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
공시위반으로 차라리 벌금낸다는 일부 상장사
조회공시 크로스체크 기능 등 검증제 도입 시급 일부 상장사들이 현행 조회공시 제도의 허점을 악용하면서 애꿎은 투자자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조회공시를 요구받은 상장사가 악재를 축소해 답변하더라도 한국거래소가 진위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추후 조회공시 위반 사실을 적발하더라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면서 조회공시 위반 사례는 수년째 반복되고 있다.
제재금 부과와 공시책임자 교체도 요구했다. 거래소는 이화전기와 이트론은 4000만원, 이아이디는 2억1000만원으로 제재금 부과를 결정했다. 또 이들 상장사의 공시책임자가 고의로 중대한 위반을 저질렀다고 판단해 공시책임자를 모두 교체하라고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이화그룹주의 거래재개 상황만 보고 투자한 개인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봤다. 거래소는 지난달 10일 장 마감 후 이화전기에 전·현직 임원 등의 횡령·배임 혐의에 대해 사실 여부 조회공시를 요구하며 거래를 정지시켰다. 이후 이화전기가 대표의 횡령 금액이 8억원가량이라고 공시하자 12일 개장부터 거래정지를 풀었다.
하지만 같은 날 오후 2시22분께 '사실상 업무집행 지시자의 대규모 횡령·배임 혐의설의 사실 여부 및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조회공시를 요구하며 이화전기의 거래를 다시 정지시켰다. 이화전기 대표가 아닌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된 김영준 전 이화그룹 회장을 지칭해 다시 공시를 요구한 것이다. 계열사인 이트론과 이아이디도 10일 장 마감 후 거래가 정지됐다가 다음날 재개됐다. 하지만 12일 다시 이화전기와 같이 거래가 정지됐다. 거래재개 직후 이화그룹주를 산 투자자들은 몇시간 만에 투자금이 거래정지로 묶인 것이다.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거래소는 다시 거래재개를 시켰으나 검찰이 기소한 내용과 회사 측이 공시한 횡령·배임 규모가 크게 차이가 나자 거래소가 재차 조회공시를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거래소 측은 외부에서 이화그룹주에 대한 추가 제보가 들어와 조회공시를 요구했다고 설명한다.
이번 사태는 거래소의 조회공시 제도가 회사 측 답변에 의존하다 보니 발생한 일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상장사의 조회공시 답변을 조사하듯 확인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데, 원칙상 문제가 없다면 거래정지를 풀어주는 것이 절차"라면서 "상장사가 답변공시를 내놓을 때 제출하는 이사회록 등을 근거로 진위를 판단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조회공시 제도를 비웃기라도 하듯 악용하는 사례가 수년째 잇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회사 매각 등 중대사안에 대해서도 '진행 중인 사안이 없다'고 부인하다가 이를 번복하는 사례 있는가 하며, '최근 현저한 시황변동(주가급등)과 관련하여 현재 진행 중이거나 결정된 사항은 없다'는 무성의한 답변만을 내놓는다. 거래소의 조회공시만으로는 상장사의 현저한 시황변동에 대한 실체 파악이 쉽지 않은 것.
실제로 연초 코스닥 상장 코스나인도 현저한 시황변동 관련 조회공시 답변 이후 15일 이내 최대주주 변경 공시에 대한 번복으로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지난 1월17일 코스나인 주가가 치솟자 거래소는 현저한 시황변동에 따른 조회공시 답변을 요구했다. 당시 코스나인은 전환사채(CB), 타법인출자 또는 출자지분 처분 외에는 공시할 중요 정보가 없다고 답변을 내놨는데, 이후 10거래일 만에 최대주주가 변경됐다고 공시했다. 이에 따라 거래소는 코스나인에 대해 벌점 9.5점과 제재금 3800만원을 부과했다.
물론 풍문은 풍문일 뿐, 회사가 '그런 일 없다'고 말한다 해서 무조건 의심할 필요는 없다. 터무니없는 루머가 정보로 포장돼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담은 사설정보지 '지라시'로 시장에 돌고 있기 때문.
업계에선 조회공시 위반 상장사에 대한 거래소의 처벌이 약하다고 지적한다. 통상 코스피 상장사는 최근 1년간 누적 벌점이 15점에 이르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 같은 조건에서 코스닥 상장사는 주식 거래가 정지되며, 상장 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에 오른다.
이번 이화그룹주가 받은 벌점은 10~10.5점에 불과하다. 거짓 또는 축소된 공시로 투자자들 피해를 야기하더라도 관리종목에 지정될 뿐 상장폐지 등 강한 제재는 받지 않는다. 누적 벌점이 쌓여있다면 상장폐지 사유가 생길 수 있으나 조회공시 위반만으로는 시장에서 퇴출이 불가하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1년간 쌓인 벌점을 계산해 영악하게 조회공시 요구에 대응하는 상장사 경영진도 있는데, 시장에 알려질 바에는 차라리 벌점과 벌금이 부과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고 있다"면서 "조회공시를 악용하는 사례를 줄이기 위해선 거래소가 조회공시 내용을 제대로 크로스 체크하는 기능을 갖추거나, 위반 시 과감하게 시장에서 퇴출하는 방식의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류은혁 기자 ehryu@hankyung.com
상장사 답변에만 의존하는 조회공시 제도
이화그룹주 조회공시 위반해도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
공시위반으로 차라리 벌금낸다는 일부 상장사
조회공시 크로스체크 기능 등 검증제 도입 시급 일부 상장사들이 현행 조회공시 제도의 허점을 악용하면서 애꿎은 투자자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조회공시를 요구받은 상장사가 악재를 축소해 답변하더라도 한국거래소가 진위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추후 조회공시 위반 사실을 적발하더라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면서 조회공시 위반 사례는 수년째 반복되고 있다.
이화그룹주 거래정지 사태로 본 조회공시 허점
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거래소는 지난 9일 이화전기와 이트론에 벌점 10점, 이아이디에 벌점 10.5점을 각각 부과했다. 벌점이 10점 이상인 경우 주식거래가 하루 정지된다. 하지만 세 상장사 모두 매매거래 중단 상황이라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제재금 부과와 공시책임자 교체도 요구했다. 거래소는 이화전기와 이트론은 4000만원, 이아이디는 2억1000만원으로 제재금 부과를 결정했다. 또 이들 상장사의 공시책임자가 고의로 중대한 위반을 저질렀다고 판단해 공시책임자를 모두 교체하라고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이화그룹주의 거래재개 상황만 보고 투자한 개인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봤다. 거래소는 지난달 10일 장 마감 후 이화전기에 전·현직 임원 등의 횡령·배임 혐의에 대해 사실 여부 조회공시를 요구하며 거래를 정지시켰다. 이후 이화전기가 대표의 횡령 금액이 8억원가량이라고 공시하자 12일 개장부터 거래정지를 풀었다.
하지만 같은 날 오후 2시22분께 '사실상 업무집행 지시자의 대규모 횡령·배임 혐의설의 사실 여부 및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조회공시를 요구하며 이화전기의 거래를 다시 정지시켰다. 이화전기 대표가 아닌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된 김영준 전 이화그룹 회장을 지칭해 다시 공시를 요구한 것이다. 계열사인 이트론과 이아이디도 10일 장 마감 후 거래가 정지됐다가 다음날 재개됐다. 하지만 12일 다시 이화전기와 같이 거래가 정지됐다. 거래재개 직후 이화그룹주를 산 투자자들은 몇시간 만에 투자금이 거래정지로 묶인 것이다.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거래소는 다시 거래재개를 시켰으나 검찰이 기소한 내용과 회사 측이 공시한 횡령·배임 규모가 크게 차이가 나자 거래소가 재차 조회공시를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거래소 측은 외부에서 이화그룹주에 대한 추가 제보가 들어와 조회공시를 요구했다고 설명한다.
이번 사태는 거래소의 조회공시 제도가 회사 측 답변에 의존하다 보니 발생한 일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상장사의 조회공시 답변을 조사하듯 확인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데, 원칙상 문제가 없다면 거래정지를 풀어주는 것이 절차"라면서 "상장사가 답변공시를 내놓을 때 제출하는 이사회록 등을 근거로 진위를 판단한다"고 말했다.
연초 코스나인도 조회공시 번복…거래소 처벌 약하단 지적도
조회공시는 특정 종목의 시황이 급변하면 투자자 보호를 위해 회사경영과 관련한 중요 정보의 유무에 대한 공시를 상장사에 요구하는 제도다. 거래소는 조회공시를 활용해 시장에 도는 각종 풍문에 대한 진위를 밝혀야 한다. 선의의 투자자 피해를 막고 올바른 정보 유통을 통해 시장 실패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문제는 조회공시 제도를 비웃기라도 하듯 악용하는 사례가 수년째 잇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회사 매각 등 중대사안에 대해서도 '진행 중인 사안이 없다'고 부인하다가 이를 번복하는 사례 있는가 하며, '최근 현저한 시황변동(주가급등)과 관련하여 현재 진행 중이거나 결정된 사항은 없다'는 무성의한 답변만을 내놓는다. 거래소의 조회공시만으로는 상장사의 현저한 시황변동에 대한 실체 파악이 쉽지 않은 것.
실제로 연초 코스닥 상장 코스나인도 현저한 시황변동 관련 조회공시 답변 이후 15일 이내 최대주주 변경 공시에 대한 번복으로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지난 1월17일 코스나인 주가가 치솟자 거래소는 현저한 시황변동에 따른 조회공시 답변을 요구했다. 당시 코스나인은 전환사채(CB), 타법인출자 또는 출자지분 처분 외에는 공시할 중요 정보가 없다고 답변을 내놨는데, 이후 10거래일 만에 최대주주가 변경됐다고 공시했다. 이에 따라 거래소는 코스나인에 대해 벌점 9.5점과 제재금 3800만원을 부과했다.
물론 풍문은 풍문일 뿐, 회사가 '그런 일 없다'고 말한다 해서 무조건 의심할 필요는 없다. 터무니없는 루머가 정보로 포장돼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담은 사설정보지 '지라시'로 시장에 돌고 있기 때문.
업계에선 조회공시 위반 상장사에 대한 거래소의 처벌이 약하다고 지적한다. 통상 코스피 상장사는 최근 1년간 누적 벌점이 15점에 이르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 같은 조건에서 코스닥 상장사는 주식 거래가 정지되며, 상장 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에 오른다.
이번 이화그룹주가 받은 벌점은 10~10.5점에 불과하다. 거짓 또는 축소된 공시로 투자자들 피해를 야기하더라도 관리종목에 지정될 뿐 상장폐지 등 강한 제재는 받지 않는다. 누적 벌점이 쌓여있다면 상장폐지 사유가 생길 수 있으나 조회공시 위반만으로는 시장에서 퇴출이 불가하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1년간 쌓인 벌점을 계산해 영악하게 조회공시 요구에 대응하는 상장사 경영진도 있는데, 시장에 알려질 바에는 차라리 벌점과 벌금이 부과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고 있다"면서 "조회공시를 악용하는 사례를 줄이기 위해선 거래소가 조회공시 내용을 제대로 크로스 체크하는 기능을 갖추거나, 위반 시 과감하게 시장에서 퇴출하는 방식의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류은혁 기자 ehry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