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 걸린 비행기 찍으러, 천문학과 삼각함수도 배웠다"
▲FataMorgana In LA
김포공항에서 출발하는 항공기를 따라 2박 3일 동안 걸었다. 비행기가 지나가는 길을 샅샅이 뒤져 마음에 드는 장소 10곳을 찾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아침, 점심, 저녁. 맑은 날, 눈 오는 날, 흐린 날. 이 모든 걸 담고 싶었다. 그렇게 4년 동안 같은 장소에서 사진을 100번 찍었다. 항공기 사진작가 개리 정(41)의 이야기다.
그의 사진 속엔 똑같은 피사체가 존재한다. 바로 비행기다. 단 하나의 피사체를 수많은 배경, 크기, 구도의 변주를 주며 카메라에 담는다. 정 작가의 사진 속 항공기는 서울의 아파트 단지 위를 스쳐 지나가기도, 구름 사이를 유영하기도, 보름달을 향해 날아가기도 한다.
"달에 걸린 비행기 찍으러, 천문학과 삼각함수도 배웠다"
▲FataMorgana In LA

우연의 일치로 얻어걸린 사진이 아니다. 정 작가는 한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 항공기의 항로와 고도, 날씨와 주변 환경과의 조화까지 계산한다. 보름달 안에 들어가 있는 항공기 사진을 찍기 위해 천문학과 삼각함수 계산법까지 공부했다. 그러다 보니 원하는 사진을 얻기까지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리기도 한다. 그의 사진은 섬세하고 끈질기게 계산된 결과물이다.

“아쉬운 사진은 단 한 장도 없어요. 날씨가 안 좋거나, 타이밍을 못 맞춰서 실패하면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사진을 얻을 때까지 카메라를 놓지 않습니다.”
"달에 걸린 비행기 찍으러, 천문학과 삼각함수도 배웠다"
▲FataMorgana In SanDiego


항공기로 되찾은 열정

정 작가가 처음부터 항공기만 고집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과거에 광고사진 작가로 활동했다. 정 작가는 당시에 사진이 싫어져 사진작가를 그만둘 생각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광고 사진은 남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 일이에요. 광고주의 마음에 들 때까지 사진을 찍어야 했어요. 내가 만족하는 사진이 아닌, 남을 만족시켜야 하는 사진을 찍으니 행복하지 않았습니다”고 말했다.

항공기라는 피사체를 만나면서 정 작가는 사진 찍는 즐거움을 되찾았다. 8년 전 정 작가는 우연한 계기로 모 항공사의 사보를 찍는 일을 맡았다. 공항 활주로에서 날아오르는 항공기를 찍으며 그는 이전에는 느끼지 못한 쾌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저렇게 무거운 게 날잖아요. 항공기가 떠오르는 형태가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역경을 헤쳐 나가는 모습 같았어요”라며 당시 항공기의 매료됐던 경험을 떠올렸다. 그때 불현듯 어린시절 좋아했던 만화가 떠올렸다. 야구만화 <H2>다.

“사실 고등학교 시절 <H2>라는 야구 만화를 즐겨봤어요. 주인공인 쿠니미 히로가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항공기가 보름달 속으로 날아들어가는 장면이 나와요. 저도 보름달에 들어가는 항공기 사진을 찍고 싶었죠.”

항공기에 빠지게 된 이후 그는 철저히 ‘내가 만족하는, 내가 즐거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예술은 작가와 보는 사람을 모두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라는 게 그의 철학이다.

“제가 행복하게 제가 만족하는 결과물을 만들어야지만 보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어요. 사람들이 제 삶과 제 작품을 있는 그대로 좋아해 주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제가 일부러 남을 위해 작품을 찍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힙니다.”
"달에 걸린 비행기 찍으러, 천문학과 삼각함수도 배웠다"
▲FataMorgana In NewYork

예술의 핵심은 도구가 아닌 ‘이야기’

항공기 말고 다른 피사체를 찍을 계획이 있는지 궁금했다. 그는 단호하게 “절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미 항공기를 찍기 시작한 이후에 다른 피사체에도 도전했지만 결국 다시 항공기로 돌아왔다고 했다. 정 작가에게 사진은 ‘도구’다. 사진은 그가 항공기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매체였다. 사진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다.

예술의 핵심은 도구가 아닌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사람들이 예술 작품에 이끌리는 건 창작자가 어떤 삶을 살았고 무엇을 했는지에 달렸다는 말이다. 그는 “셀 수 없이 많은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에 사진 자체만으로는 예술성을 논할 수 없습니다”고 말했다. 작품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하고 감동하기 위해서는 그 작가의 삶을 알아야 한다고. 예술가가 자신에 대한 아무런 설명 없이 작품을 내놓고 대중들이 즐겨주길 바라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라는 게 정 작가의 지론이다.
"달에 걸린 비행기 찍으러, 천문학과 삼각함수도 배웠다"
▲FataMorgana In LA


그 역시 스토리가 있는 사진작가로 기억되고 싶다고 한다. 정 작가에게 예술가란 다른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대신해보고 전해주는 사람이다. 그는 사람들이 그의 작품과 삶을 통해 관람객들이 새로운 것을 보고 용기와 위안을 얻을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정 작가는 “헬리콥터를 빌려서 뉴욕 상공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제 사진을 보고 ‘이런 삶을 살며 이런 작품을 만드는 사람도 있구나’’고 기억해주길 바랄 뿐입니다”고 말했다.

구교범 기자 gugyobeom@hankyung.com

"달에 걸린 비행기 찍으러, 천문학과 삼각함수도 배웠다"
<개리 정의 네 번째 개인전 'Fata Margana'>

개리 정 작가의 네 번째 개인전 ‘Fata Morgana’는 그가 항공기 사진을 찍으며 신기루를 보는 듯한 기분을 느낀 경험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파타 모르가나는 수평선 너머 배나 육지가 하늘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신기루를 말한다.

과거에 이탈리아의 선원들이 이 현상을 보고 아서왕 신화 속 마법사 모건(Morgana)의 섬 아발론이라고 부르면서 ‘Fata(요정) Morgana’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정 작가는 “뉴욕의 빌딩 숲 사이를 날아가는 항공기를 본 순간, 마치 도시 한가운데에 신화 속 아발론 섬이 떠 있는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개리 정은 서울예술대학교에서 사진과 미디어창작을 전공했다. 전세계를 다니며 항공기 GPS를 찾아 공간과 조화를 이루는 사진을 촬영하는 개리 정은 '뉴욕 포커스 아시아 아트페어' 참가 후 모든 작품이 팔리면서 이번에 캐논코리아의 후원을 받게 됐다.

이번 전시에선 올해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일대를 모터사이클로 일주하며 담은 항공기 사진과 뉴욕 맨해튼에서 새로 출시된 Canon RF 100-300mm F2.8 렌즈와 함께 대도시와 조화를 이루는 항공기 사진 40여점 등 100여점의 항공기 사진을 선보일 예정이다.

그는 지금까지 세계 3대 모터스포츠 대회인 다카르랠리를 주제로 한 'ACROSS (2019)'전, 코로나 시기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많은 이들을 위해 연 '언제 우리 다시한번 (2020)' 전, 뉴욕 맨해튼과 항공기를 담은 ‘FATA MORGANA in NewYork’까지 5년 동안 신작 전시를 꾸준히 선보였다. 이번 전시는 전시는 6월 25일까지 서울 논현동 캐논갤러리에서 열린다.
"달에 걸린 비행기 찍으러, 천문학과 삼각함수도 배웠다"
▲FataMorgana In NewY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