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미국 정크본드 시장의 디폴트(채무불이행)가 폭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 중앙은행(Fed)의 공격적인 긴축(금리 인상)이 변동금리로 정크본드를 발행했던 기업들에 '재앙'이 됐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미국 대형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13일(현지시간) 시장조사업체 피치북 LCD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올 들어 현재까지 총 210억달러(약 27조원) 규모의 정크본드 디폴트가 발생했다. 건수 기준으로는 18건이다. 올해 아직 상반기가 안 끝났지만, 건수와 규모 모두 2021~2022년 발생한 부실 사례들을 전부 합친 것보다도 많다. 신용평가기관 무디스에 따르면 올해 사상 처음으로 디폴트를 선언한 기업으로는 내셔털 시네미디어(영화 광고 기업), 퀄텍(인프라 서비스 제공업체) 등이 있다.

지난달에만 78억달러 규모의 3개 정크본드에서 디폴트가 나왔다. 이는 2020년 코로나19 발생 이후 월별 기준으로 가장 많은 규모다. 정크(junk)본드는 '쓰레기'라는 단어 뜻 그대로 신용등급이 아주 낮아 부도 위험이 큰 기업이 발행하는 회사채다. 투기등급 이하 기업들이 자산을 담보로 일으킨 대출상품인 레버리지론(정크론) 등도 큰 범주에서 정크본드로 묶이기도 한다.
출처=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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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크본드를 발행했던 기업들의 차입 비용이 최근 급등했다. Fed가 작년 3월부터 불과 1년여 만에 기준 금리를 연 5~5.25%까지 올리면서다. 여기에다 경기 둔화 우려로 인해 이들 기업의 수익성 전망도 악화하고 있다. 로피 카루이 골드만삭스 수석 신용전략가는 "특히 변동금리를 따르는 정크본드 발행 기업들에 엄청난 타격이 잇따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통상 레버리지론의 경우 변동금리를 택한다.

피치북 LCD에 따르면 정크론 연체율은 4월 1.31%에서 5월 1.58%로 올랐다. 5월달 연체율은 2021년 5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골드만삭스가 무디스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봐도 4월 정크론 연체율은 전년 동월보다 4%포인트 올라 6%로 수직상승했다. 반면 미국 정크본드의 연간 환산 연체율은 올해 2~4월 3%로, 2월 이후 보합세를 보이는 데다 전년 동기 2%에서 소폭 상승하는 데 그쳤다.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12개월 후행 정크론 연체율이 장기 평균인 2.5%까지 치솟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블룸버그통신은 "정크본드 디폴트 우려가 커지면서 이들 채권의 평균 만기가 사상 최저수준으로 짧아졌다"고 보도했다. 최근 정크본드의 평균 만기는 5.18년으로 집계됐다. 블룸버그가 하이일드 기업지수를 추적하기 시작한 1987년 이후 가장 짧아졌다. 이에 비해 투자등급 채권의 평균 만기는 11년이다.

헤지펀드 쉔크먼 캐피털의 글로벌 전략가 밥 크리셰프는 "이론적으로 짧아진 만기는 변동성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만기가 지속해서 더 짧아지고 특히 유동성이 경색되면 리파이낸싱(차환·이미 발행된 채권을 새로 발행된 채권으로 상환하는 것)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