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은행을 비롯한 6개 국내 은행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토큰증권발행(STO) 시장에 진출하기로 했다. 토큰증권은 유·무형 자산을 디지털자산 형태로 증권화한 것으로, 음악 저작권은 물론 개인 자동차까지 투자상품으로 유동화할 수 있는 수단이다.

정부가 이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규제 특례(샌드박스)를 허용해 STO 시장을 제도화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증권사뿐만 아니라 은행들도 STO 시장 진출을 공언하면서 신시장 선점을 위한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은행권 유일한 API 개발한 농협은행

농협은행 등 6개 은행, STO 시장 진출한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 신한 우리 기업 전북 수협 등 6개 은행은 컨소시엄을 구성해 12개 조각투자사업자 및 벤처캐피털과 제휴하고 STO 시장에 함께 진출하기로 했다. 컨소시엄 구성과 논의를 이끈 곳은 농협은행이다. 농협은행은 조각투자사업자들이 토큰증권을 발행하거나 개인투자자 투자금을 관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술적 수단인 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를 조각투자용으로 개발한 유일한 국내 은행이다.

조각투자 API의 핵심 기능은 조각투자사업자의 법인 자금과 투자예치금 자금을 분리해 보관하는 것이다. 증권사가 주식 투자자 개인의 계좌 예치금을 마음대로 꺼내 쓸 수 없는 규제와 동일하게 금융위원회는 조각투자사업자도 토큰증권에 투자한 개인의 투자예치금을 쓸 수 없도록 했다. 이처럼 법인 자금과 투자예치금을 분리하는 기술이 조각투자 API다.

스타트업인 조각투자사업자 입장에선 STO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농협은행처럼 신뢰성을 담보할 수 있는 금융회사의 조각투자 API 활용이 필수적이다.

조각투자 API를 개발한 농협은행이 독자적으로 STO 시장에 진출하지 않고 다른 은행들과 컨소시엄을 꾸린 이유는 조각투자 API 이용으로 발생한 토큰증권 관련 데이터를 여러 기관이 블록체인 형태로 공유하는 분산원장 시스템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지난 2월 내놓은 가이드라인을 통해 특수관계에 해당하지 않는 계좌관리기관(금융회사)이 다수 참여해 분산원장을 이루도록 했다.

○“저원가성 예금·비이자 수익 확대”

스타트업과의 원활한 제휴를 목적으로 2015년 처음 조각투자 API를 개발한 농협은행은 STO 시장의 제도화를 계기로 기업 가치를 한 단계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농협은행은 STO 시장 진출을 통해 비이자수익을 크게 늘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토큰증권 발행 대행과 토큰증권 신탁 등을 통해 수수료 수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조각투자 API를 통해 분리 보관된 투자예치금을 농협은행의 저원가성 예금으로 활용하는 한편 토큰증권 투자자를 농협은행 신규 고객으로 끌어들일 수도 있다.

농협은행을 제외한 5개 은행은 조각투자 API 기술이 없기 때문에 저원가성 예금을 얻는 효과는 누리지 못한다. 농협은행과 공동 개발한 분산원장 기술로 토큰증권 거래 관련 데이터를 축적해 관련 신사업을 모색할 수 있다.

금융당국은 토큰증권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는 내용의 전자증권법 및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내년까지 제도화를 마칠 계획이다. 법률이 개정되기 전이라도 이르면 올해 금융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토큰증권의 발행 및 유통을 테스트할 방침이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은행 입장에서 STO 시장은 무궁무진한 성장 가능성을 지닌 신시장”이라며 “은행의 신뢰성을 바탕으로 STO 시장 선점과 육성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정의진/이소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