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동맹조차 'GPT 독립' 외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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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보수당 정부 GPT 비전 내놓자
野 노동당 파격적 예산 증액 주장
좌우 따로 없는 위기의식 공유
국내선 여야 없이 플랫폼 때리고
부처는 美 빅테크에 좌판 깔아줘
韓 AI, 경쟁이냐 종속이냐 기로
안현실 AI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野 노동당 파격적 예산 증액 주장
좌우 따로 없는 위기의식 공유
국내선 여야 없이 플랫폼 때리고
부처는 美 빅테크에 좌판 깔아줘
韓 AI, 경쟁이냐 종속이냐 기로
안현실 AI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미국의 가장 강력한 동맹 영국이 초거대 인공지능(AI) 언어모델의 독립을 외치고 있다. 생성형 AI 챗봇 서비스를 선도하는 미국 오픈AI의 챗GPT, 구글의 바드 등에 맞서 ‘자체 능력(sovereign capability)’을 강화하는 이른바 ‘브릿GPT(BritGPT) 전략’이 그것이다. 영국 보수당 정부는 GPT4 같은 파운데이션 모델 훈련을 위해 1억파운드, 첨단 슈퍼컴퓨터에 9억파운드를 투입한다고 밝혔다. 지금 나서지 않으면 미국 빅테크 의존 구조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눈길을 끌기는 야당인 노동당도 마찬가지다. 노동당 싱크탱크는 10억파운드를 누구 코에 붙이겠느냐며 100억파운드를 더해 110억파운드를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와의 경쟁을 넘어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 기업이 투자할 유인이 약한, 의료·에너지 등 모두를 위한 AI(AI for good)나 AI 안전 연구는 정부가 투자에 나서야 한다는 논리까지 추가됐다.
영국이 좌우 가리지 않고 위기감을 갖는 배경엔 18세기 1차 산업혁명을 주도한 경험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골드만삭스는 생성형 AI가 향후 10년 세계 총생산(GDP)을 7%(약 7조달러) 끌어올릴 것으로 내다봤다. 보수적 추정치로 보이지만 미국과 중국의 GDP 차이가 7조달러란 점을 생각하면 국가 간 판도를 뒤집고도 남을 변수다.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추락, 추격, 추월의 희비가 엇갈릴 것이다.
GPT 독립에 부심하는 영국에 비하면 한국은 미국 빅테크에 대항마로 나설 기업이 있다는 점에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벤처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한 네이버, 카카오 같은 플랫폼이다. 다른 국가라면 플랫폼 기업을 국가전략자산으로 활용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불행히도 국내 정치로 눈을 돌리면 영국과는 딴판이다. 여야 할 것 없이 플랫폼 기업을 무슨 동네북처럼 대하는 게 그렇다. 정치적 유불리 셈법에 따라 번갈아 가며 때리니 기업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이런 현상이 극에 달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플랫폼 때리기는 플랫폼 때리기로만 끝나지 않는다. 성능과 비용, 안전 등 모든 측면에서 엄청난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게 생성형 AI 파운데이션 모델이다. 미국 빅테크에 맞설 수 있는 기업은 좋든 싫든 플랫폼, 그것도 대기업밖에 없다. 초거대 AI는 플랫폼 위에서 데이터가 창출돼야 가능하고, 다시 플랫폼으로 피드백되면서 진화해 간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스타트업 비즈니스가 플러그인(plug-in) 생태계로 들어오면서 AI 시장이 커진다. 정치가 플랫폼을 때리는 것은 초거대 AI, 생성형 AI를 죽이자는 것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국가적 자해행위가 따로 없다.
정치가 이 지경이면 정부 부처라도 희망을 줘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플랫폼 규제부터 그렇다. 산업 육성 부처도 다르지 않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초청했다는 오픈AI 최고경영자(CEO)인 샘 올트먼은 한국을 시장으로 본다는 인식을 숨기지 않았다. 그들의 GPT를 한국 국민과 스타트업이 많이 사용해달라는 주문이다. “한국은 반도체에 집중하는 게 좋겠다”는 발언은 초거대 AI 모델에서 감히 경쟁할 생각을 하지 말라는 뜻으로 들린다. 여기에 국가전략기술을 강조해온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한국어 시장 공략을 선언한 구글과 ‘한국을 위한 AI’ 행사를 연다는 상황이다.
산업 발전과 소비자 후생 측면에서 토종 기업과 해외 기업이 AI 혁신 경쟁을 벌이는 구도가 좋다면 그 어느 때보다 정부의 ‘전략적 사고’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국내 기업이 역차별을 받는다는 인식을 갖는 순간 정부 부처는 존재 이유를 의심받는다. 미국 GPT와 경쟁할 초거대 AI 출시를 앞두고 밤을 지새우고 있다는 국내 플랫폼 기업의 처지가 전장에서 관군(官軍)은 사라지고 홀로 남아 싸우는 형국 같다.
‘타다’ 사태가 앞으로 재연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표에만 혈안이 돼 플랫폼을 때리는 정치, 존재 이유가 헷갈리는 부처, 언제 또 과거의 칼로 미래를 기소할지 모를 검찰이 불안하기만 하다. 한국 AI가 경쟁이냐 종속이냐 갈림길에서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의 적’ 때문에 망했다고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한들 그땐 돌이킬 수 없다.
눈길을 끌기는 야당인 노동당도 마찬가지다. 노동당 싱크탱크는 10억파운드를 누구 코에 붙이겠느냐며 100억파운드를 더해 110억파운드를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와의 경쟁을 넘어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 기업이 투자할 유인이 약한, 의료·에너지 등 모두를 위한 AI(AI for good)나 AI 안전 연구는 정부가 투자에 나서야 한다는 논리까지 추가됐다.
영국이 좌우 가리지 않고 위기감을 갖는 배경엔 18세기 1차 산업혁명을 주도한 경험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골드만삭스는 생성형 AI가 향후 10년 세계 총생산(GDP)을 7%(약 7조달러) 끌어올릴 것으로 내다봤다. 보수적 추정치로 보이지만 미국과 중국의 GDP 차이가 7조달러란 점을 생각하면 국가 간 판도를 뒤집고도 남을 변수다.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추락, 추격, 추월의 희비가 엇갈릴 것이다.
GPT 독립에 부심하는 영국에 비하면 한국은 미국 빅테크에 대항마로 나설 기업이 있다는 점에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벤처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한 네이버, 카카오 같은 플랫폼이다. 다른 국가라면 플랫폼 기업을 국가전략자산으로 활용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불행히도 국내 정치로 눈을 돌리면 영국과는 딴판이다. 여야 할 것 없이 플랫폼 기업을 무슨 동네북처럼 대하는 게 그렇다. 정치적 유불리 셈법에 따라 번갈아 가며 때리니 기업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이런 현상이 극에 달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플랫폼 때리기는 플랫폼 때리기로만 끝나지 않는다. 성능과 비용, 안전 등 모든 측면에서 엄청난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게 생성형 AI 파운데이션 모델이다. 미국 빅테크에 맞설 수 있는 기업은 좋든 싫든 플랫폼, 그것도 대기업밖에 없다. 초거대 AI는 플랫폼 위에서 데이터가 창출돼야 가능하고, 다시 플랫폼으로 피드백되면서 진화해 간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스타트업 비즈니스가 플러그인(plug-in) 생태계로 들어오면서 AI 시장이 커진다. 정치가 플랫폼을 때리는 것은 초거대 AI, 생성형 AI를 죽이자는 것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국가적 자해행위가 따로 없다.
정치가 이 지경이면 정부 부처라도 희망을 줘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플랫폼 규제부터 그렇다. 산업 육성 부처도 다르지 않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초청했다는 오픈AI 최고경영자(CEO)인 샘 올트먼은 한국을 시장으로 본다는 인식을 숨기지 않았다. 그들의 GPT를 한국 국민과 스타트업이 많이 사용해달라는 주문이다. “한국은 반도체에 집중하는 게 좋겠다”는 발언은 초거대 AI 모델에서 감히 경쟁할 생각을 하지 말라는 뜻으로 들린다. 여기에 국가전략기술을 강조해온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한국어 시장 공략을 선언한 구글과 ‘한국을 위한 AI’ 행사를 연다는 상황이다.
산업 발전과 소비자 후생 측면에서 토종 기업과 해외 기업이 AI 혁신 경쟁을 벌이는 구도가 좋다면 그 어느 때보다 정부의 ‘전략적 사고’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국내 기업이 역차별을 받는다는 인식을 갖는 순간 정부 부처는 존재 이유를 의심받는다. 미국 GPT와 경쟁할 초거대 AI 출시를 앞두고 밤을 지새우고 있다는 국내 플랫폼 기업의 처지가 전장에서 관군(官軍)은 사라지고 홀로 남아 싸우는 형국 같다.
‘타다’ 사태가 앞으로 재연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표에만 혈안이 돼 플랫폼을 때리는 정치, 존재 이유가 헷갈리는 부처, 언제 또 과거의 칼로 미래를 기소할지 모를 검찰이 불안하기만 하다. 한국 AI가 경쟁이냐 종속이냐 갈림길에서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의 적’ 때문에 망했다고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한들 그땐 돌이킬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