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월드에 노래 게시물 올리던 공대생, 뮤직테크 창업가 변신…카카오도 '찜' [긱스플러스]
카카오벤처스 투자를 받은 뮤직테크(음악+기술) 스타트업 뉴튠의 이종필 대표는 평범한 공대생이었습니다. 학부 시절 전자공학을 전공해 대기업 취업 문도 열려
있었죠. 원래 창업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단지 조금 더 특별했던 건, '칠 아웃' 장르 음악을 좋아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앨범을 냈냐고요? 아닙니다. 그가 어떻게 창업의 길로 뛰어들었는지 한경 긱스(Geeks)가 들어봤습니다.

[이종필 뉴튠 대표 인터뷰]
뮤직테크(음악+기술) 스타트업 창업...카오벤처스 투자 유치
싸이월드엔 '노래 추천' 게시물, 스트리밍 플랫폼은 VIP 고객
AI 활용... 블록처럼 마음대로 조립하는 음악, CES 혁신상 수상
싸이월드에 노래 게시물 올리던 공대생, 뮤직테크 창업가 변신…카카오도 '찜' [긱스플러스]
"영화 '허(Her)' 보셨어요? 거기 인공지능(AI) 운영체제 사만다가 나오잖아요. 주인공은 그녀와 웃고, 떠들고, 결국 사랑에 빠지죠. 기분에 맞는 노래를 틀어달라고 하면 실시간으로 음악을 생성해주기도 하고요. 미래엔 이런 세상이 올 거예요.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손쉽게 음악을 만들죠. 한마디로 음악의 '경험'을 바꾸고 싶어요."

최근 한경 긱스(Geeks)와 만난 이종필 뉴튠 대표(사진)는 KAIST 전자공학과를 나온 '공돌이' 출신이다. 대기업 연구소 같은 곳에 들어가면 안정적으로 밥벌이를 할 수 있는 탄탄대로가 열려 있었다. 창업은 생각도 안못했다. 신호처리와 머신러닝 등을 배우며 밤을 지새우는 평범한 공대생이었다.
KAIST 재학 시절 앳된 이 대표의 모습.
KAIST 재학 시절 앳된 이 대표의 모습.

멜론 VIP 고객이던 공대생


그는 음악을 좋아했다.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칠 아웃'이었다. 라운지 음악의 일종으로 잔잔한 비트가 돋보이는 장르다. 얼마나 좋아했냐고? 이 대표는 "2006년즈음만 해도 멜론 같은 음원 플랫폼엔 스트리밍보다 돈을 내고 음악을 다운로드받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며 "당시 가장 비쌌던 150곡 다운로드 요금제를 쓰고, 여기에 매달 수십 곡을 추가로 결제하곤 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워낙 결제를 많이 하니까, 일종의 VIP 고객이 돼서 멜론 본사로 초청받아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고 웃었다.

커뮤니티 활동도 했다. 당시 유행하던 싸이월드 '클럽'에서 그는 닉네임이 꽤나 알려진 유명인사였다. 싸이월드에서 '나 음악 좀 안다'는 사람들이 다 모였던 클럽 '바라쉐'에 일주일에 2~3건씩 게시글을 올렸다. 그날 기분에 어울리는 곡을 소개하는 글을 썼다. 아티스트에 관한 'TMI'도 덧붙였다. 그렇게 학부 생활 내내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은 '내 전공과 음악이 비슷한걸?'이었다. 음악이 결국 하나의 파형이고, 신호처리 기술과 똑같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좋아하면서도 잘 할 수 있는 것, 이걸로 먹고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문화기술대학원에 들어갔다. 이 때 은사인 남주한 교수를 만났다. 남 교수는 퀄컴 오디오 연구원과 영창악기 신디사이저 개발자 출신으로 컴퓨터 기반의 음악 분석과 생성 분야에서 명망 있는 인물이다. 석박사 과정을 밟으면서 음악으로 창업을 하겠다는 꿈을 키웠다.
어도비에서 지금도 쓰이는 기능. 이 대표는 인턴 신분에 이걸 만들었다고 뿌듯해했다.
어도비에서 지금도 쓰이는 기능. 이 대표는 인턴 신분에 이걸 만들었다고 뿌듯해했다.
대학원 시절엔 네이버나 어도비 같은 대형 업체에서 인턴 생활도 했다. 특히 어도비에선 인턴 신분으로 개발한 서비스가 실제로 적용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크리에이터가 저작권 없는 음악을 쉽게 콘텐츠에 삽입할 수 있도록 음원을 모아둔 '어도비 스톡' 서비스에 들어간 기술이다. 그는 "콘텐츠 제작자가 음악을 넣고 싶을 때 작곡가에게 '이 느낌으로 만들어주세요'라는 식으로 부탁하거나 저작권 없는 음원 사이트에서 일일이 들어보는 수밖에 없었다"며 "AI를 기반으로 특정 오디오를 업로드하면 저작권 없는 음악을 찾아주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그게 2019년이었다. 이 기술을 갖고 창업을 해보자고 결심했다. 문화기술대학원이다보니 디자인·마케팅·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창업 멤버를 모을 수 있었다. 대기업에 들어가 경력을 더 쌓을 수도 있었지만, 도전을 택했다. 그는 "통상적으로 주변을 봤을 때 박사 과정을 밟고 졸업한 직후 4~5년 간이 소위 '퍼포먼스'가 가장 잘 나오는 시기라고 생각했고, 이 점을 고려했을 때 바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는 게 결론이었다"고 말했다.
처음 내놨던 포인튠 서비스는 이젠 주력 사업이 아니지만 여전히 사용할 수 있다.
처음 내놨던 포인튠 서비스는 이젠 주력 사업이 아니지만 여전히 사용할 수 있다.
처음엔 '포인튠'이라는 AI 기반 음악 검색 서비스로 시작했다. 원하는 음악이 담긴 유튜브 링크를 집어넣으면 비슷한 느낌이면서 저작권이 없는 음악을 찾아주는 방식이다. 찾아낸 음악을 크리에이터가 만드려는 영상 길이와 자동으로 맞춰주고, AI가 소리를 인식해 기타나 피아노 같은 특정 악기 소리를 넣거나 뺄 수도 있다. 이를 기반으로 카카오벤처스로부터 투자금도 유치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이 시장엔 스웨덴의 에피데믹사운드라는 대형 '공룡'이 존재했다. 2009년 서비스를 시작해 이미 일찌감치 유니콘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 반열에 오른 회사다. 물론 포인튠 서비스로도 어느정도 규모까지 성장할 수는 있었겠지만, 이 대표의 꿈은 더 컸다. 글로벌 사업자에 뒤쳐질 수밖에 없는 서비스는 싫었다.
믹스오디오는 CES2023에서 혁신상을 받았다.
믹스오디오는 CES2023에서 혁신상을 받았다.

음악을 레고처럼... "누구나 작곡가 될 것"


지난해 초 피봇을 거쳐 탄생한 사업모델이 지금 서비스 중인 '믹스오디오'다. 이 대표는 서비스를 '블록 뮤직'이라는 키워드로 정의했다. 레고 블록처럼 음악을 이리저리 조립하면서 가지고 '놀 수' 있는 서비스다. 예를 들어 블록 형태의 짧은 음원들을 조립하거나, 음원에서 뽑아 낸 비트나 악기 소리 같은 음악 조각을 원하는대로 붙인 뒤 하나의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회사는 믹스오디오 서비스를 통해 올 초 열린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2023에서 소프트웨어·모바일 앱 부문 혁신상을 받았다. 음악을 수동적으로 '듣는' 구조에서 벗어나 창작과 청취의 경계를 없앴다는 평가를 받는다. 플랫폼 안의 음원들은 저작권이 없다. 하지만 퀄리티 높은 음원들로 구성됐다. 넉살, 딥플로우, 도끼, 수란 등 60여 명의 유명 아티스트와 협업해 기본 음원을 제작한 결과다.

경쟁력은 AI를 활용한 기술력에 있다. AI가 3000시간 이상의 음원 데이터를 학습한 뒤 음원에서 특정 소리를 추출해내는 기술을 갖췄다. 또 통상 기존 디지털 음악 제작 플랫폼들은 음원을 만들 때 미디(MIDI)라는 일종의 디지털 악보를 활용한다. 디지털 명령어이기 때문에 소리가 실제로 날 때는 클라우드 서버에서 가져오는 게 아니라 해당 디바이스에서 직접 소리가 만들어진다. 예를 들면 스마트폰 앱에서 기타 소리가 날 땐 기기 안에서 자체적으로 기타 소리가 만들어진다는 의미다. 실제 악기의 소리보다 수준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믹스오디오는 대신 이용자가 특정 소리를 합성하면 앱이 클라우드 서버와 상호작용하며 실제 소리를 가져다주는 방식을 사용한다. 이 대표는 "그러면서도 지연률을 최대한 낮춘 게 우리 기술력의 강점"이라며 "그러다 보니 음악의 퀄리티를 훨씬 높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뉴튠의 팀원들. 엔지니어는 물론이고 홍대 거리에서 인디 가수로 활동한 사람도 있다.
뉴튠의 팀원들. 엔지니어는 물론이고 홍대 거리에서 인디 가수로 활동한 사람도 있다.
음악을 기반으로 한 SNS로 발전하는 게 목표다. 이미 그 가능성을 엿보고 있다. 믹스오디오 플랫폼 안에서 피드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만든 음악을 들어보고, 내가 만든 음악을 공유할 수도 있다. 물론 블록처럼 조립하는 것 외에도 음악을 갖고 놀 방법은 많다. 예를 들어 뉴진스의 '어텐션' 같은 노래의 보컬만 따온 뒤 배경음을 바꿔 분위기를 확 다르게 만들 수도 있다.

이 대표가 꿈꾸는 미래는 '어댑티브 뮤직'이 깔린 세상이다. 음악이 사람의 기분과 몸 상태에 따라 변화하면서 항상 함께하는 일상을 말한다. 그는 "기존 스트리밍 플랫폼의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사람들이 음악적 취향을 발견하는 단계까지 왔다면, 앞으로는 음악적 '자아'를 스스로 만드는 세계가 펼쳐질 것"이라며 "기존의 '리스너'가 궁극적으로는 누구나 크리에이터로 손쉽게 진입하게 된다는 뜻"이라고 했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