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Fed)이 기준 금리를 1년여만에 동결했지만, 연내 추가 인상을 시사했다. 인플레이션이 좀체 억제되지 않고 있어서다. 강력한 통화 긴축 정책에도 물가가 상승하는 이유를 두고 경제학자들의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Fed, 금리 연내 2회 인상 시사

지난 14일 미국 중앙은행(Fed)은 1년 3개월여만에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하지만 올해 안으로 추가 인상을 단행하겠다고 밝혔다. 인플레이션이 아직 남아있다는 이유에서다. 인플레이션이 올해 들어 완화하고 있지만 아직 물가 목표치(2%)에 이르기까지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미국 고용통계국이 전날 발표한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에서 이러한 추이가 드러났다. 5월 CPI는 전년동기 대비 4% 상승했는데, 이는 전달 CPI 상승률(4.9%)보다 크게 상승 폭이 둔화한 것이다. CPI 상승률은 지난해 6월 9.1%를 기록한 뒤 11개월 연속 하락했다.

하지만 에너지와 식료품 가격을 제외하고 산출한 근원 CPI는 지난달 전년 대비 5.3% 올랐다. 역시 시장 예상(5.2~5.3%)대로였다. 일시적 변동 요인을 빼고 보면 물가가 여전히 높은 수준에서 끈적하게(Sticky) 버티고 있다는 얘기다. 주거비가 8.0% 올랐고, 외식 물가 상승률도 8.3%로 높게 나타났다.

금리 인상만으론 인플레이션 억제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3월부터 지금까지 Fed는 금리를 5%포인트가량 인상했다. 40여 년 만에 가장 빠른 속도로 금리를 올린 것이다. 금리 인상으로 소비 둔화와 투자 위축이 나타나자 물가 상승세가 다소 완화했다. 하지만 근원 CPI가 여전히 상승세를 나타내자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과열된 노동 시장이 인플레이션 부추겨

경제학자들은 과열된 노동시장이 완화돼야 인플레이션이 꺾일 거라고 주장했다. Fed 의장을 역임한 벤 버냉키 브루킹스연구소 선임 연구원과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냈던 올리비에 블랑차드 피터슨 국제연구소 연구원은 지난 13일 브루킹스연구소를 통해 인플레이션이 완벽하게 억제되지 않는 건 노동시장 때문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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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경제학자는 지난 3년간 인플레이션의 구성 요소를 분절해서 원인을 분석했다. 공급 부족, 식료품값, 에너지 가격 등은 올해 들어 감소했지만, 실직자 대비 구인 건수(V/U) 값은 여전히 비싼 수준이다. 과열된 노동시장이 인플레이션을 끈적이게 만든 요인이라는 설명이다.

앞서 인플레이션을 촉발했던 요인들은 올해 들어 대부분 완화했다.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치솟았던 원자재 가격은 내려앉았다. 바이든 정부의 재정 정책으로 인해 가계에 풀린 지원금은 대부분 소진된 상태다. 글로벌 공급망 압력지수는 지난 7일 역대 최저치를 찍었다. 급격한 금리인상 탓에 수요는 점차 감소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계속되는 현상을 해석할 수 있는 요인은 과열된 노동시장뿐이다. 때문에 두 경제학자는 노동시장의 초과 수요 현상이 오랜 기간 지속되면서 인플레이션이 억제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지난달 미국의 실업률은 3.4%를 기록했다. 사실상 완전 고용 상태를 나타낸다. 노동 시장 내에선 여전히 1 대 1.6의 비율로 초과 수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버냉키 연구원은 "과열된 노동시장에서 비롯된 인플레이션은 수요와 공급에 영향을 주는 정책으로만 통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바이든 정부가 노동 수요를 줄이기 위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도 뉴욕타임스(NYT) 칼럼을 통해 "지난해 말부터 실직자 대비 구인 건수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이 현상이 지속되면 연착륙에 성공할 수 있다"고 동조했다.

"기업의 과도한 마진율이 인플레이션 원인"

일각에서는 기업들이 과도하게 이윤을 추구한 탓에 인플레이션이 완화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마진 확대를 위해 가격을 인하하지 않는 '그리드플레이션(Greed+inflation·기업 탐
욕에 의한 물가상승)'이 일어나고 있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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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소비자단체 어카운터블US는 지난 14일 물가 보고서를 내며 "식품 기업 및 소비재 기업들이 최소 마진율을 보호하기 위해 가격을 계속 인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1년 간 원자재 가격 상승을 명분으로 대기업들이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이익을 챙겼다는 지적이다. 올해 들어 원자재 가격 상승세가 완화했지만 여전히 가격을 동결하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프랑스 투자은행 소시에테제네랄의 앨버트 에드워즈 글로벌 전략가도 “최근 1년간 미국 기업들의 이익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며 “기업들은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원자재 비용 상승을 가격을 올리고 새로운 차원으로 이윤을 확대하기 위한 ‘핑계’로 삼았다”고 비판했다.

에드워드 전략가에 따르면 기업 이익 증가가 2021년부터 시작된 인플레이션 원인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기업의 과도한 이윤 추구 행위가 급격한 인플레이션의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기업의 탐욕이 인플레이션을 지속시켜 투자자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장기간 더 깊은 경기 침체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인플레이션이 멈추지 않는 이상 Fed가 계속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기업들의 이익률은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미 중앙은행 경제 데이터(FRED)에 따르면 2020년 1분기에 10% 수준이던 미국 기업 평균 세후 이익률은 2022년 2분기에 16%까지 증가했다. 집계를 시작한 1950년대 이후 최대치를 찍었다. 다만 지난해 6월부터 올해 3월까지 미국 기업의 평균 이익(세후)은 약 12%가량 감소했다.

노동자의 임금 상승보다 기업의 이윤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국의 진보 경제학자인 마이클 로버츠는 버냉키와 블랑차드의 주장을 짚으며 "노동 시장을 냉각시켜 임금 상승률을 낮추려 해선 안 된다"며 "노동자의 협상력만 약화할 뿐이다. 기업의 이윤 추구 행위부터 억제하는 게 우선이다"라고 지적했다.

기업 이익만으론 인플레이션 설명 불가

그리드플레이션에 대한 반박도 나온다. 기업 이익이 늘어난 건 '시차'에서 비롯된 것에 불과하다는 의견이다.

미할리스 니키포로스 제네바대 교수는 신(新) 경제사상연구소(INET)에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두 가설의 허점을 짚었다. 과열된 노동 시장이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준다는 가설은 지난해까지만 유효했다는 설명이다.

FRED에 따르면 미국의 단위 노동 비용은 지난 2021년 2분기 전년 대비 0.09% 상승했다. 5년 내 최소폭으로 상승했다. 같은 기간 미국의 GDP 대비 기업 이익 비중은 10.4%를 넘겼다. 노동비용이 줄어들자 기업의 마진이 최대치를 달성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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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위노동비용은 일정한 생산량을 내기 위해 투입하는 인건비를 뜻한다. 이 수치가 증가하면 기업의 이익은 줄어든다. 반대로 단위노동비용 상승률이 감소하면 마진율은 높아진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배경엔 임금의 경직성이 있다. 다른 비용에 비해 인건비는 늦게 상승한다는 설명이다. 기업은 가격을 설정할 때 원재료 같은 변동비에 일정 마진율을 붙이는 '원가 기준법'을 활용한다. 다양한 제품군을 관리하는 입장에서 활용하기 가장 쉬운 방법이라서다.

지난해 원자재 가격이 치솟자 기업들은 상품 가격을 즉각 인상했다. 반면 임금은 1년 주기로 변동하는 고정비로 분류된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고 해서 인건비를 즉각적으로 인상하는 건 불가능해서다. 고정비와 변동비가 결정되는 시간 차 때문에 기업의 이익 단기간에 급격히 증가한 것처럼 보인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지난해 미국의 단위노동비용은 전년 대비 6% 상승하며 5년 내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2021년 물가상승률이 임금 협상에 반영된 것이다. 인건비가 늘어나자 기업 이윤은 축소했다. 지난해 미국 GDP 대비 기업 이익 비중은 전년 대비 1%포인트가량 줄었다.

올해 들어선 단위노동비용과 GDP 대비 기업 이익 비중이 함께 감소하고 있다. 올해 1분기 미국 GDP 대비 기업 이익 비중은 8.7%로 급격히 축소했다. 단위노동비용 상승률도 3.8%대로 내려갔다. 노동 비용과 기업 마진이 동시에 축소되는 셈이다. 노동 시장도 냉각하고 기업 이윤도 줄어들었다는 분석이다.

니키포로스 교수는 "기업이 과도하게 이익을 추구했다는 가설은 인플레이션을 설명하지 못한다"며 "지난 2년간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진단하는 계량화 작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