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 동물모델의 뇌 기저부 혈관(왼쪽 첫번째)과 뇌동맥류를 유발한 동물모델(두번째), 수니티닙을 함께 투여한 동물모델(세번째) 비교. 이화학연구소
정상 동물모델의 뇌 기저부 혈관(왼쪽 첫번째)과 뇌동맥류를 유발한 동물모델(두번째), 수니티닙을 함께 투여한 동물모델(세번째) 비교. 이화학연구소
출시한 지 17년 지난 화이자의 신장암 약 수텐트(성분명 수니티닙)가 뇌동맥류 환자의 뇌출혈 예방에 효과 있다는 동물실험 결과가 나왔다. '뇌 속 시한폭탄'으로 불리는 뇌동맥류는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아 수술로만 치료 가능하다.

16일 의료계에 따르면 일본 이화학연구소(리켄 뇌과학센터) 연구팀은 전날 이런 내용을 담은 논문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중개의학'에 공개했다.

뇌동맥류는 인구의 5% 정도가 앓고 있는 질환이다. 평소 특별한 증상이 없지만 뇌 혈관이 꽈리처럼 부풀고 약해지며 터져 뇌출혈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뇌 속 시한폭탄'으로 불리는 이유다.

뇌동맥류가 터져 뇌출혈으로 이어지면 환자의 40% 정도가 사망할 수 있다. 40%는 생존하더라도 후유증이 생긴다. 뇌 영상 촬영 등을 통해 뇌동맥류가 확인되면 크기나 위험도 등에 따라 뇌출혈을 예방하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 의학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유일한 치료법이다.

뇌동맥류는 혈관 특정 부위가 풍선처럼 늘어나는 꽈리형(ISA)과 혈관 전체가 부풀어 오르는 방추형(IFA)으로 나뉜다. 환자의 90%가 ISA다. 그동안 IFA의 유전자 돌연변이를 분석한 연구는 많았지만 ISA 대상 연구는 없었다.

이화학연구소 연구팀은 ISA의 유전적 특성을 확인하기 위해 유전자 분석을 했다. 65개 이상의 동맥류 혈관 세포와 24개의 정상 동맥 혈관 세포의 모든 단백질 DNA를 분석하는 전장 엑솜 검사를 했다.

이를 통해 IFA와 ISA에만 공통적으로 있는 6개 유전자를 찾았다. 뇌동맥류가 없는 동맥에선 발견되지 않았던 유전자다. 10개 유전자도 추가로 찾았는데 이들은 IFA나 ISA 중 한쪽에서만 발견됐다.

연구책임자인 나카토미 히로후미 이화학연구소 교수는 "동맥류의 90% 이상에서 유전자 돌연변이 16개가 확인됐다는 것은 이런 돌연변이가 대부분 환자의 주요한 트리거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연구팀은 IFA와 ISA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된 6개 돌연변이를 추가 분석한 결과 이들이 동맥류 유발에 영향을 준다고 알려진 NF-κB 신호전달경로를 활성화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후 이들 돌연변이가 정상신호체계를 차단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6개 돌연변이 중 하나가 혈소판 유래 성장인자 수용체 베타 단백질(PDGDRB)에 있는 것도 파악했다. 세포 신호를 전달하고 심혈관계를 형성하는데 관여하는 티로신 키나아제 수용체 물질이다.

연구팀은 사람 세포를 이용해 이 단백질이 동맥류 조직층을 오간다는 것도 밝혀냈다. 해당 단백질에 돌연변이가 있으면 세포 간 이동 속도가 빨라지고 염증이 생긴다는 것도 확인했다. 동맥 표면의 유전자 변이가 초기 동맥류 형성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이동 속도가 빨라지고 염증반응이 나타난 세포에 티로신 키나아제 억제제인 수니티닙을 투입했더니 이동속도가 느려지고 염증도 줄었다. 해당 약물로 돌연변이 작용을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동물실험도 진행했다. 두 마리의 마우스 모델을 활용해 뇌의 가장 밑 부분이라 치료 난도가 높은 뇌 기저부 동맥세포에 PDGDRB 변이를 전달했다. 유전자 돌연변이 삽입을 위해 아데노바이러스벡터를 활용했다. PDGDRB 변이 마우스 모델을 둘로 나눠 한 모델엔 수니티닙을 함께 투여하고 다른 모델은 투입하지 않으면서 경과를 관찰했다.

그 결과 수니티닙을 투여하지 않은 모델에선 한 달 뒤부터 동맥이 약해지고 IFA가 생겼다. 동맥류 크기는 초기 크기의 두배로 커졌다. PDGDRB 변이가 동맥류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수니티닙을 투여한 모델은 동맥 상태가 계속 튼튼하게 유지됐다. 연구팀은 논문을 통해 "뇌 동맥류 약물 치료제 개발을 향한 새로운 길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번 연구에도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이들이 동맥류 모델을 만들면서 약물을 투입했기 때문에 이미 만들어진 동맥류 크기를 줄이는 데에도 해당 약물이 효과를 내는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뇌동맥류는 증상이 없어 건강검진 등을 받다가 혈관이 부풀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환자가 대부분이다.

PDGFRB 돌연변이가 흔하지만 모든 환자에게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숙제다. 연구팀은 뇌동맥류가 터져 수술 받은 환자에게 예방목적으로 해당 약물을 투여하는 것은 곧 가능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뇌동맥류 수술 환자 중 재발 환자는 10% 정도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이 기사는 바이오·제약·헬스케어 전문 사이트 <한경 BIO Insight>에 2023년 6월 16일 10시 47분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