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최고 걸작'에 숨겨진 오류...1900년만에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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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헬레니즘 걸작 '라오콘 군상'
'축소 버전' 국립중앙박물관서 무료 전시중
인류 역사에 남을 걸작으로 꼽히며
미술사에 큰 영향 끼쳤지만
"얼굴 묘사 사실과 다르다" 밝혀져
'축소 버전' 국립중앙박물관서 무료 전시중
인류 역사에 남을 걸작으로 꼽히며
미술사에 큰 영향 끼쳤지만
"얼굴 묘사 사실과 다르다" 밝혀져
남자의 온몸을 휘감은 거대한 뱀. 뱀이 박아넣은 이빨을 통해 흘러들어온 독은 시시각각 남자의 몸 구석구석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그는 곧 죽을 겁니다. 온몸의 근육이 뒤틀리는 아픔보다 남자에게 더 고통스러운 건, 옆에 있는 두 아들의 눈에서도 생명의 불꽃이 꺼져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이름은 라오콘.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신의 분노를 사 두 아들과 함께 바다뱀에게 목숨을 잃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방금 보신 조각 ‘라오콘 군상’은 그의 최후를 다룬 작품입니다. 2100여년 전 그리스 조각가들이 만든 아주 유명한 걸작이지요. 이 작품은 가장 복제품이 많은 조각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하는데, 작품을 집에 두고 싶어 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입니다. 지난 15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 그리스·로마실에서 전시 중인 ‘라오콘’도 그중 하나입니다. 16~17세기 바로크 시대의 실력 있는 조각가가 만든 이 두상은 원본에서 가장 예술성이 뛰어나다는 라오콘의 얼굴 부분만 본떠 만들어졌습니다. 바티칸에 있는 원본 작품은 조금 높은 곳에 설치돼 있어서 라오콘의 얼굴 부분을 자세히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얼굴만 따로 만든 덕분에 얼굴에 나타난 고통과 슬픔, 절망을 잘 확인할 수 있지요.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이 표정, 사실은 오류가 있습니다. 복제품만 그런 게 아니라 바티칸에 있는 원본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한번 얼굴을 보시지요. 뭐가 틀렸는지 혹시 아시겠나요.
오스트리아 빈미술사박물관이 소장한 그리스·로마 조각품 120여점을 소개하는 이번 전시는 2027년 5월 30일까지 무려 4년간 열리는 데다 입장료도 무료입니다. 시간 날 때 한 번쯤 들러 보셔도 좋겠지요. 전시를 더 즐겁게 감상할 수 있도록, 오늘 ‘그때 그 사람들’에서는 이 조각상에 관련된 재미있는 사연들을 풀어 봤습니다. 표정에 있는 오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19세기, 뒤센 드 불로뉴라는 프랑스의 괴짜 과학자가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신경과 의사였던 그는 사람의 표정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 특징은 무엇인지를 연구했습니다. 얼굴 근육을 전기로 자극해가며 어떤 표정이 나오는지 실험한 건데요. 이 과정에서 뒤센은 라오콘의 표정에서 이상한 부분이 있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사람이 아플 때 이마를 저런 식으로 찡그리는 건 불가능하다. 조각가의 명백한 실수다.” 라오콘의 이마 주름은 이마 전체를 가로질러 뻗어 있다. 이런 긴 이마 주름은 깊이 고민할 때 주로 나온다. (뒤센이 촬영한 사진)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사람은 아플 때 미간을 한껏 찌푸립니다. 눈썹 모양도 변합니다. 여기까지는 정확합니다. 문제는 이마 주름입니다. 이마는 관자놀이에서 뻗어 나오는 세로 주름을 중심으로 찌그러지는데, 가로 주름은 생긴다고 하더라도 양쪽 끝까지 생기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라오콘의 이마에 있는 가로 주름은 이마 전체에 걸쳐 있습니다. 평온한 상태에서 깊이 생각하거나 주의를 기울일 때만 이런 주름이 나옵니다. 다시 말하자면 라오콘의 얼굴은 격렬한 고통과 평온한 감정이 공존하는 모순적인 상태인 겁니다.
라오콘의 표정과 주름이 해부학적으로 부정확하다는 건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이는 의도적이라는 해석이 많습니다. 예컨대 진화론으로 유명한 영국의 생물학자 찰스 다윈은 “알면서도 일부러 이렇게 조각한 것”이라는 결론을 책에 썼습니다. “라오콘의 표정 묘사에 오류가 있는 건 사실이다. 조각가도 이를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위해 오류를 무시했고, 덕분에 라오콘의 얼굴에는 격렬한 고통과 깊은 고뇌가 공존한다.” 복잡한 감정을 아름답게 표현하기 위해 정확성을 조금 희생했다는 얘기입니다.
첫 번째는 ‘잘못된 행동을 해서 벌을 받았다’는 겁니다. 이쪽 버전에서 라오콘은 아폴론 신의 사제로 등장하는데, 독신을 지키기로 아폴론에게 맹세했지만 약속을 어기고 결혼을 해서 두 아들을 뒀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아폴론은 큰 바다뱀 두 마리를 보내 라오콘을 죽였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따른다면 라오콘은 마음 한편으로 자기 잘못을 인정했을 겁니다. 표정이 복잡한 것도 그 때문일 테고요. 영화 '트로이'에 나오는 트로이 목마. /영화 화면 캡처
두 번째는 정반대입니다. ‘올바른 행동을 했다가 벌을 받았다’는 내용이거든요. 트로이 사람이었던 라오콘은 그리스와의 전쟁 도중 그 유명한 트로이 목마를 보고 진실을 알아챕니다. “함정이다. 그리스군이 안에 숨어있을 것이다. 불태워야 한다. 창으로 한번 찔러 보기라도 하자.” 하지만 이는 그리스 편에 서서 싸우던 신(아테나 혹은 포세이돈)들을 분노시켰고, 결국 라오콘은 신이 보낸 바다뱀들에게 살해당합니다. 이 버전을 따르면 라오콘의 표정은 인간의 힘으로 저항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체념으로 해석됩니다. 라오콘 군상 세부.
라오콘을 조각한 사람은 아마도 두 번째 버전을 염두에 뒀을 거라는 견해가 많습니다. 조각상을 보면 라오콘은 살아날 가능성이 없어 보입니다. 그림 왼쪽에 있는 아들은 라오콘보다 더 빨리 숨이 끊어질 듯합니다. 하지만 오른쪽에 있는 아들의 경우, 잘만 하면 도망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조각가들은 이렇게 생각했던 게 아닐까요. ‘옳은 일을 했다가 억울하게 죽는데, 아들 하나 정도는 살려줄 수 있는 거 아냐?’
사실 이 작품은 1000년 동안 땅속에 묻혀 있었습니다. 로마가 멸망할 때쯤 누군가가 땅에 묻었다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힌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다 포도밭에서 일하던 농부에게 기적적으로 발견된 게 1506년. 심상치 않아 보이는 조각상이 발굴됐다는 소식을 들은 교황은 미켈란젤로를 보내 작품을 감정했고, “문서로만 남아 있는 그리스 시대 걸작이 분명하다”고 보고받았습니다. 교황은 즉시 유물을 사들였고, 이를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내놨습니다. 바티칸 미술관의 첫 전시는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17세기 제작된 라오콘 군상. 라오콘의 오른팔이 쭉 뻗어 있다.
이 과정에서 나온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아무리 땅속에 묻혀 있었더라도 1000년이란 세월은 무시할 수 없는 법. 작품이 발견됐을 때 조각상은 여기저기 훼손돼 있었는데요. 가장 눈에 띄는 건 라오콘의 오른팔이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조각가는 사라진 오른팔이 쭉 뻗어 있었을 거라고 예측했지만, 미켈란젤로는 혼자 “뒤로 구부러진 모양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400년 후 이곳에서 발견된 팔 조각은, 처음에 보셨다시피 미켈란젤로가 옳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정말 천재죠.
돌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역동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이 작품은 당시 르네상스 예술가들에게 크나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조각상이 발견되기 전 유럽 예술계의 대세는 우아하고 정적이면서 엄숙한 고대 그리스 예술(기원전 4~5세기) 양식이었습니다. 하지만 불과 수십 년 후에는 라오콘처럼 역동성과 활력이 넘치는 작품들이 유행하게 됩니다. 바로 라오콘이 만들어진 헬레니즘 시대(기원전 1~2세기)의 예술 양식입니다. 1501~1504년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왼쪽)과 1599년 지암볼로냐의 '헤라클레스와 네서스'. 둘 다 탁월한 걸작이지만 역동성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어떠셨나요. 모르고 보면 허연 돌로 된 서양인 아저씨의 머리통일 뿐이지만, 알고 보면 이런저런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숨어 있습니다. 그게 미술관과 박물관의 매력이지요.
마침 전시가 열리는 그리스·로마 전시실은 꼭대기 층(3층), 입구에서 가장 먼 위치에 있습니다. ‘사유의 방’이나 메소포타미아 상설전처럼 가는 길에 있는 다른 무료 상설 전시를 함께 본다면 더욱 즐겁고 알찰 겁니다. 날씨도 갈수록 더워지는데, 시원한 박물관으로 나들이를 떠나 보면 어떨까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이번 기사는 논문 'Duchenne's Frontispiece'(W. Leister), '라오콘' (고트홀드 에프라임 레싱 지음, 윤도중 옮김, 나남), BBC 기사 'Laocoon and His Sons: The revealing detail in an ancient find'(Kelly Grovier) 등을 참조해 작성했습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그의 이름은 라오콘.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신의 분노를 사 두 아들과 함께 바다뱀에게 목숨을 잃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방금 보신 조각 ‘라오콘 군상’은 그의 최후를 다룬 작품입니다. 2100여년 전 그리스 조각가들이 만든 아주 유명한 걸작이지요. 이 작품은 가장 복제품이 많은 조각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하는데, 작품을 집에 두고 싶어 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입니다. 지난 15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 그리스·로마실에서 전시 중인 ‘라오콘’도 그중 하나입니다. 16~17세기 바로크 시대의 실력 있는 조각가가 만든 이 두상은 원본에서 가장 예술성이 뛰어나다는 라오콘의 얼굴 부분만 본떠 만들어졌습니다. 바티칸에 있는 원본 작품은 조금 높은 곳에 설치돼 있어서 라오콘의 얼굴 부분을 자세히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얼굴만 따로 만든 덕분에 얼굴에 나타난 고통과 슬픔, 절망을 잘 확인할 수 있지요.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이 표정, 사실은 오류가 있습니다. 복제품만 그런 게 아니라 바티칸에 있는 원본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한번 얼굴을 보시지요. 뭐가 틀렸는지 혹시 아시겠나요.
오스트리아 빈미술사박물관이 소장한 그리스·로마 조각품 120여점을 소개하는 이번 전시는 2027년 5월 30일까지 무려 4년간 열리는 데다 입장료도 무료입니다. 시간 날 때 한 번쯤 들러 보셔도 좋겠지요. 전시를 더 즐겁게 감상할 수 있도록, 오늘 ‘그때 그 사람들’에서는 이 조각상에 관련된 재미있는 사연들을 풀어 봤습니다. 표정에 있는 오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①위대한 걸작이라더니…표정 묘사 틀렸다고?
이 조각상, 정말 칭찬을 많이 받았습니다. 르네상스가 낳은 천재 미켈란젤로, 독일의 대문호 괴테, 근대 미술사학의 아버지 요한 요아힘 빙켈만을 비롯해 수많은 이들이 찬사를 보냈지요. “그림과 조각, 문학을 비롯해 모든 종류의 예술을 통틀어서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고까지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중에서도 가장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부분은 바로 얼굴입니다. 극한의 고통과 절망을 표현했는데도 아름다운 이 얼굴. 빙켈만은 이 얼굴에 대해 “고전 예술의 정수인 고귀한 단순과 고요한 위대가 보인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고통을 받는 사람은 이마 주름이 없거나 이 사진처럼 짧지만...(뒤센이 촬영한 사진)그런데 19세기, 뒤센 드 불로뉴라는 프랑스의 괴짜 과학자가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신경과 의사였던 그는 사람의 표정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 특징은 무엇인지를 연구했습니다. 얼굴 근육을 전기로 자극해가며 어떤 표정이 나오는지 실험한 건데요. 이 과정에서 뒤센은 라오콘의 표정에서 이상한 부분이 있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사람이 아플 때 이마를 저런 식으로 찡그리는 건 불가능하다. 조각가의 명백한 실수다.” 라오콘의 이마 주름은 이마 전체를 가로질러 뻗어 있다. 이런 긴 이마 주름은 깊이 고민할 때 주로 나온다. (뒤센이 촬영한 사진)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사람은 아플 때 미간을 한껏 찌푸립니다. 눈썹 모양도 변합니다. 여기까지는 정확합니다. 문제는 이마 주름입니다. 이마는 관자놀이에서 뻗어 나오는 세로 주름을 중심으로 찌그러지는데, 가로 주름은 생긴다고 하더라도 양쪽 끝까지 생기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라오콘의 이마에 있는 가로 주름은 이마 전체에 걸쳐 있습니다. 평온한 상태에서 깊이 생각하거나 주의를 기울일 때만 이런 주름이 나옵니다. 다시 말하자면 라오콘의 얼굴은 격렬한 고통과 평온한 감정이 공존하는 모순적인 상태인 겁니다.
라오콘의 표정과 주름이 해부학적으로 부정확하다는 건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이는 의도적이라는 해석이 많습니다. 예컨대 진화론으로 유명한 영국의 생물학자 찰스 다윈은 “알면서도 일부러 이렇게 조각한 것”이라는 결론을 책에 썼습니다. “라오콘의 표정 묘사에 오류가 있는 건 사실이다. 조각가도 이를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위해 오류를 무시했고, 덕분에 라오콘의 얼굴에는 격렬한 고통과 깊은 고뇌가 공존한다.” 복잡한 감정을 아름답게 표현하기 위해 정확성을 조금 희생했다는 얘기입니다.
② 라오콘은 왜 뱀에 물린 걸까
그러고 보면 라오콘의 표정이 좀 묘합니다. 한없이 고통스럽고 슬펐을 테니, 입을 크게 벌려 소리를 지르거나 오만상을 찌푸려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요. 그 이유를 알기 위해 라오콘이 왜 신의 분노를 샀고 죽임을 당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크게 두 가지 버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첫 번째는 ‘잘못된 행동을 해서 벌을 받았다’는 겁니다. 이쪽 버전에서 라오콘은 아폴론 신의 사제로 등장하는데, 독신을 지키기로 아폴론에게 맹세했지만 약속을 어기고 결혼을 해서 두 아들을 뒀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아폴론은 큰 바다뱀 두 마리를 보내 라오콘을 죽였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따른다면 라오콘은 마음 한편으로 자기 잘못을 인정했을 겁니다. 표정이 복잡한 것도 그 때문일 테고요. 영화 '트로이'에 나오는 트로이 목마. /영화 화면 캡처
두 번째는 정반대입니다. ‘올바른 행동을 했다가 벌을 받았다’는 내용이거든요. 트로이 사람이었던 라오콘은 그리스와의 전쟁 도중 그 유명한 트로이 목마를 보고 진실을 알아챕니다. “함정이다. 그리스군이 안에 숨어있을 것이다. 불태워야 한다. 창으로 한번 찔러 보기라도 하자.” 하지만 이는 그리스 편에 서서 싸우던 신(아테나 혹은 포세이돈)들을 분노시켰고, 결국 라오콘은 신이 보낸 바다뱀들에게 살해당합니다. 이 버전을 따르면 라오콘의 표정은 인간의 힘으로 저항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체념으로 해석됩니다. 라오콘 군상 세부.
라오콘을 조각한 사람은 아마도 두 번째 버전을 염두에 뒀을 거라는 견해가 많습니다. 조각상을 보면 라오콘은 살아날 가능성이 없어 보입니다. 그림 왼쪽에 있는 아들은 라오콘보다 더 빨리 숨이 끊어질 듯합니다. 하지만 오른쪽에 있는 아들의 경우, 잘만 하면 도망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조각가들은 이렇게 생각했던 게 아닐까요. ‘옳은 일을 했다가 억울하게 죽는데, 아들 하나 정도는 살려줄 수 있는 거 아냐?’
③조각상이 바꾼 미술 대세
허버트 로버트가 그린 '라오콘 발견'(1773). 훗날 그림의 주제가 될 만큼 조각상의 발견은 유럽 미술계에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이었다.사실 이 작품은 1000년 동안 땅속에 묻혀 있었습니다. 로마가 멸망할 때쯤 누군가가 땅에 묻었다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힌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다 포도밭에서 일하던 농부에게 기적적으로 발견된 게 1506년. 심상치 않아 보이는 조각상이 발굴됐다는 소식을 들은 교황은 미켈란젤로를 보내 작품을 감정했고, “문서로만 남아 있는 그리스 시대 걸작이 분명하다”고 보고받았습니다. 교황은 즉시 유물을 사들였고, 이를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내놨습니다. 바티칸 미술관의 첫 전시는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17세기 제작된 라오콘 군상. 라오콘의 오른팔이 쭉 뻗어 있다.
이 과정에서 나온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아무리 땅속에 묻혀 있었더라도 1000년이란 세월은 무시할 수 없는 법. 작품이 발견됐을 때 조각상은 여기저기 훼손돼 있었는데요. 가장 눈에 띄는 건 라오콘의 오른팔이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조각가는 사라진 오른팔이 쭉 뻗어 있었을 거라고 예측했지만, 미켈란젤로는 혼자 “뒤로 구부러진 모양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400년 후 이곳에서 발견된 팔 조각은, 처음에 보셨다시피 미켈란젤로가 옳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정말 천재죠.
돌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역동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이 작품은 당시 르네상스 예술가들에게 크나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조각상이 발견되기 전 유럽 예술계의 대세는 우아하고 정적이면서 엄숙한 고대 그리스 예술(기원전 4~5세기) 양식이었습니다. 하지만 불과 수십 년 후에는 라오콘처럼 역동성과 활력이 넘치는 작품들이 유행하게 됩니다. 바로 라오콘이 만들어진 헬레니즘 시대(기원전 1~2세기)의 예술 양식입니다. 1501~1504년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왼쪽)과 1599년 지암볼로냐의 '헤라클레스와 네서스'. 둘 다 탁월한 걸작이지만 역동성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어떠셨나요. 모르고 보면 허연 돌로 된 서양인 아저씨의 머리통일 뿐이지만, 알고 보면 이런저런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숨어 있습니다. 그게 미술관과 박물관의 매력이지요.
마침 전시가 열리는 그리스·로마 전시실은 꼭대기 층(3층), 입구에서 가장 먼 위치에 있습니다. ‘사유의 방’이나 메소포타미아 상설전처럼 가는 길에 있는 다른 무료 상설 전시를 함께 본다면 더욱 즐겁고 알찰 겁니다. 날씨도 갈수록 더워지는데, 시원한 박물관으로 나들이를 떠나 보면 어떨까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이번 기사는 논문 'Duchenne's Frontispiece'(W. Leister), '라오콘' (고트홀드 에프라임 레싱 지음, 윤도중 옮김, 나남), BBC 기사 'Laocoon and His Sons: The revealing detail in an ancient find'(Kelly Grovier) 등을 참조해 작성했습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