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인생컷' 찍으러…보름달까지 날아간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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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일상의 모험가들
항공기 사진가 개리 정
단 한장의 사진 위해
천문학·삼각함수 계산법까지 공부
마음에 들 때까지 촬영…
"아쉬운 사진, 단 한장도 없어"
항공기 사진가 개리 정
단 한장의 사진 위해
천문학·삼각함수 계산법까지 공부
마음에 들 때까지 촬영…
"아쉬운 사진, 단 한장도 없어"
김포공항에서 출발하는 항공기를 따라 2박3일 동안 걸었다. 비행기가 지나가는 길을 샅샅이 뒤져 마음에 드는 장소 10곳을 찾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아침 점심 저녁과 맑은 날, 눈 오는 날, 흐린 날. 이 모든 걸 담고 싶었다. 그렇게 4년 동안 같은 장소에서 사진을 100번 찍었다. 항공기 사진작가 개리 정(41·사진)의 이야기다.
그의 사진 속엔 똑같은 피사체가 존재한다. 비행기다. 하나의 피사체를 배경, 크기, 구도에 수많은 변주를 주며 카메라에 담는다. 정 작가의 사진 속 항공기는 서울의 아파트 단지 위를 스쳐 지나가기도 하고, 구름 사이를 유영하기도 하고, 보름달을 향해 날아가기도 한다. 우연의 일치로 얻어걸린 사진이 아니다. 정 작가는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 항공기 항로와 고도, 날씨까지 계산한다. 보름달 안에 들어가 있는 항공기 사진을 찍기 위해 천문학과 삼각함수 계산법까지 공부했다. “아쉬운 사진은 단 한 장도 없어요. 날씨가 안 좋거나, 타이밍을 못 맞춰서 실패하면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사진을 얻을 때까지 카메라를 놓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원하는 사진을 얻기까지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리기도 한다. 그의 사진은 섬세하고 끈질기게 계산된 결과물이다.
“광고 사진은 남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 일이에요. 광고주의 마음에 들 때까지 사진을 찍어야 했어요. 내가 만족하는 사진이 아니라 남을 만족시켜야 하는 사진을 찍으니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항공기라는 피사체를 만나면서 정 작가는 사진 찍는 즐거움을 되찾았다. 8년 전 정 작가는 우연한 기회에 모 항공사 사보를 찍는 일을 맡았다. 공항 활주로에서 날아오르는 항공기를 찍으며 그는 쾌감을 느꼈다.
“저렇게 무거운 게 날잖아요. 항공기가 떠오르는 형태가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역경을 헤쳐 나가는 모습 같았어요. 고교 시절 즐겨보던 ‘H2’라는 야구 만화가 떠올랐죠. 주인공인 구니미 히로가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항공기가 보름달 속으로 날아들어가는 장면이 나와요.”
항공기에 빠진 후 그는 철저히 ‘내가 만족하는, 내가 즐거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예술은 작가와 보는 사람을 모두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라는 게 그의 철학이다.
예술의 핵심은 도구가 아니라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사람들이 작품에 이끌리는 건 창작자가 어떤 삶을 살았고 무엇을 했는지에 달렸다는 말이다.
그 역시 스토리가 있는 사진작가로 기억되고 싶다고 한다. “헬리콥터를 빌려서 뉴욕 상공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제 사진을 보고 ‘이런 삶을 살며 이런 작품을 만드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기억해주길 바랄 뿐입니다.”
■ 개리 정의 네 번째 개인전 ‘Fata Morgana’
개리 정 작가의 네 번째 개인전 ‘Fata Morgana’는 그가 항공기 사진을 찍으며 신기루를 보는 듯한 기분을 느낀 경험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이번 전시에선 올해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일대를 모터사이클로 일주하며 담은 항공기 사진과 뉴욕 맨해튼에서 새로 출시된 캐논 RF 100-300㎜ F2.8 렌즈로 찍은 100여 점의 사진을 선보일 예정이다. 전시는 6월 25일까지 서울 논현동 캐논갤러리.
글=구교범 기자/사진=최혁 기자 gugyobeom@hankyung.com
그의 사진 속엔 똑같은 피사체가 존재한다. 비행기다. 하나의 피사체를 배경, 크기, 구도에 수많은 변주를 주며 카메라에 담는다. 정 작가의 사진 속 항공기는 서울의 아파트 단지 위를 스쳐 지나가기도 하고, 구름 사이를 유영하기도 하고, 보름달을 향해 날아가기도 한다. 우연의 일치로 얻어걸린 사진이 아니다. 정 작가는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 항공기 항로와 고도, 날씨까지 계산한다. 보름달 안에 들어가 있는 항공기 사진을 찍기 위해 천문학과 삼각함수 계산법까지 공부했다. “아쉬운 사진은 단 한 장도 없어요. 날씨가 안 좋거나, 타이밍을 못 맞춰서 실패하면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사진을 얻을 때까지 카메라를 놓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원하는 사진을 얻기까지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리기도 한다. 그의 사진은 섬세하고 끈질기게 계산된 결과물이다.
항공기로 되찾은 사진 열정
정 작가가 처음부터 항공기만 고집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과거에 광고사진 작가로 활동했다. 정 작가는 당시에 사진이 싫어져 사진작가를 그만둘 생각을 했다고 털어놨다.“광고 사진은 남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 일이에요. 광고주의 마음에 들 때까지 사진을 찍어야 했어요. 내가 만족하는 사진이 아니라 남을 만족시켜야 하는 사진을 찍으니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항공기라는 피사체를 만나면서 정 작가는 사진 찍는 즐거움을 되찾았다. 8년 전 정 작가는 우연한 기회에 모 항공사 사보를 찍는 일을 맡았다. 공항 활주로에서 날아오르는 항공기를 찍으며 그는 쾌감을 느꼈다.
“저렇게 무거운 게 날잖아요. 항공기가 떠오르는 형태가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역경을 헤쳐 나가는 모습 같았어요. 고교 시절 즐겨보던 ‘H2’라는 야구 만화가 떠올랐죠. 주인공인 구니미 히로가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항공기가 보름달 속으로 날아들어가는 장면이 나와요.”
항공기에 빠진 후 그는 철저히 ‘내가 만족하는, 내가 즐거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예술은 작가와 보는 사람을 모두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라는 게 그의 철학이다.
다른 피사체도 도전했지만…돌고돌아 항공기로
항공기 말고 다른 피사체를 찍을 계획이 있는지 궁금했다. 그는 단호하게 “절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항공기를 찍기 시작한 이후에 다른 피사체에도 도전했지만 결국 다시 항공기로 돌아왔다고 했다. 정 작가에게 사진은 ‘도구’다. 사진은 그가 항공기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매체다. 사진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다.예술의 핵심은 도구가 아니라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사람들이 작품에 이끌리는 건 창작자가 어떤 삶을 살았고 무엇을 했는지에 달렸다는 말이다.
그 역시 스토리가 있는 사진작가로 기억되고 싶다고 한다. “헬리콥터를 빌려서 뉴욕 상공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제 사진을 보고 ‘이런 삶을 살며 이런 작품을 만드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기억해주길 바랄 뿐입니다.”
■ 개리 정의 네 번째 개인전 ‘Fata Morgana’
개리 정 작가의 네 번째 개인전 ‘Fata Morgana’는 그가 항공기 사진을 찍으며 신기루를 보는 듯한 기분을 느낀 경험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이번 전시에선 올해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일대를 모터사이클로 일주하며 담은 항공기 사진과 뉴욕 맨해튼에서 새로 출시된 캐논 RF 100-300㎜ F2.8 렌즈로 찍은 100여 점의 사진을 선보일 예정이다. 전시는 6월 25일까지 서울 논현동 캐논갤러리.
글=구교범 기자/사진=최혁 기자 gugyobeo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