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지난 3월 은행위기를 초래한 혐의로 미 금융당국의 조사를 받게 됐다. 고금리로 위기에 처한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채권을 매각하라는 골드만삭스의 자문을 따르다 파산한 가운데 골드만삭스는 SVB가 내놓은 채권을 싼값에 사들여 이득을 봤다는 이유다.

1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중앙은행(Fed)과 증권거래위원회(SEC)가 SVB 파산 사태와 관련해 골드만삭스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미 법무부도 골드만삭스 관련자들을 소환한 것으로 전해졌다.

WSJ은 “금융 당국은 골드만삭스가 SVB의 자본 조달 고문으로써 수행한 역할과 SVB 매도가능증권 포트폴리오를 구매한 내용들이 담긴 문서를 찾고 있다”고 전했다. 골드만삭스의 자문 담당 부서와 포트폴리오를 구매한 부서 간 부적절한 소통이 있었는지를 따져보기 위해서다.

앞서 나온 외신 보도들에 따르면 3월 SVB의 파산에는 골드만삭스의 자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SVB는 Fed의 잇따른 기준금리 인상으로 저금리 당시 사들였던 미 국채 등 안전자산의 가치가 떨어져 고심이 깊었다. 3월 초 골드만삭스는 미 국채 등으로 구성된 239억7000만달러 규모의 매도가능증권을 매각하고 손실을 메우기 위해 자본을 조달할 것을 자문했다.

SVB는 골드만삭스의 조언대로 매도가능증권을 손해를 보고 팔았다. 3월 8일 SVB는 “세후 기준 18억달러의 손실을 보고 매도가능증권을 매각한다”며 “22억5000만달러 규모의 증자를 단행하고, 벤처캐피털로부터 5억달러를 투자받아 자산 감소분을 메우겠다”고 발표했다.

시장은 이 소식을 엄청난 악재로 받아들였다. SVB의 자본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예금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이 발생했다. SVB의 발표 이후 36시간 만에 예금 420억달러가 인출됐고, 현금이 동난 SVB는 10일 파산했다. SVB의 파산은 이후 시그니처은행 등 지역은행들의 연쇄 파산으로 이어졌다.

이후 SVB로부터 싼 값에 매도가능증권을 사들인 곳이 다름 아닌 골드만삭스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매입 금액은 214억5000만달러로 장부가치보다 10% 이상 할인됐다.

WSJ는 “SVB와 골드만삭스 모두 SVB의 상황이 대중에게 알려지는 것을 우려했다”며 “관계자들에 따르면 골드만삭스가 먼저 매도가능증권 매입을 제안했다”고 전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달 미 금융당국의 조사에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골드만삭스 측은 이번 논란에 대해 “매도가능증권 매각 전 SVB 측에 매각에 대한 자문 역할은 하지 않겠다며 제3자 재무 자문을 고용하라고 서면으로 통보했다”고 설명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