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ESG NOW
SK하이닉스 임직원 등이 지난 4월 경기 용인 안성천에서 생물을 관찰하고 있다. 사진 제공 : SK하이닉스
SK하이닉스 임직원 등이 지난 4월 경기 용인 안성천에서 생물을 관찰하고 있다. 사진 제공 : SK하이닉스
반도체 기업들이 수자원 관리에 공을 들이고 있다. ‘물 먹는 하마’로 불릴 정도로 많은 물을 사용하는 반도체산업에서 물은 핵심 자원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제조공정에서 발생한 폐수를 깨끗이 정화해 방류하는 것은 물론, 수원지에서 끌어다 쓰는 물의 양을 줄이기 위해 폐수를 재활용하기도 한다. 반도체 공장 방류수는 과거 오폐수로 여겨졌지만, 최근 오히려 주변 하천의 생태계를 재생하는 ‘착한 물’로 주목받고 있다.

공장에서 나오는 맑은 물에 수달도 귀환

삼성전자는 기흥 사업장에서 인근 오산천으로 매일 최대 5만 톤의 맑은 물을 내보낸다. 공업용수로 사용된 뒤 크게 5단계에 걸쳐 깨끗이 정화된 물이다. 오산천은 수량이 부족한 건천이라 야생동물이 살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하지만 2007년부터 기흥 사업장에서 깨끗한 방류수가 유입되면서 하천의 수량이 늘고 수질도 개선됐다. 방류 전 오산천의 생화학적 산소 요구량은 3급수에 해당하는 5.2ppm 수준이었지만, 2019년에는 1.4ppm(2급수)까지 낮아졌다. 생태계가 활성화되며 2020년에 멸종위기 1급이자 천연기념물 제330호로 지정된 수달의 서식도 확인됐다.

반도체 기업들은 공업용수를 방류하기 전 정화에 특히 신경 쓴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의 방류수는 크게 5단계를 거친다. 우선 폐수에 약품을 넣어 불·인·탄소 등 오염물질을 물리화학적으로 제거한다. 이후 미생물로 유기물을 없애고 남아 있는 미세한 냄새와 맛, 색깔 등을 카본으로 흡착한다.

‘물 먹는 하마’는 옛말…물관리에 진심인 반도체 투톱


반도체는 먼지 입자 하나만 내려앉아도 품질에 치명적 결함이 생긴다. 물로 씻어내는 공정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웨이퍼를 깎은 뒤 나오는 부스러기, 반도체에 주입하고 남은 이온 등은 모두 미립자마저 제거된 ‘초순수’로 씻어낸다.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해 물질과 가스를 제거하는 ‘스크러버’ 공정에도 물이 쓰인다. 지난해 기준 삼성전자 경기 기흥·화성 등 반도체 전 사업장에서 사용한 물만 하루 평균 31만 톤에 달한다. 반도체 기업들이 물관리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하루 40만 톤 재이용수 사용 목표

취수량을 줄이기 위해 이미 한 번 사용한 하수를 재활용하기도 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경기 수원·용인·화성·오산시 공공하수처리장의 방류수를 반도체 사업장에서 필요한 공업용수 수준으로 처리해 공급받기로 했다. 2030년엔 하수 재이용수를 하루 40만 톤 이상 사용하겠다는 목표다. 2030년이면 반도체 설비가 늘어나 삼성전자에서 필요한 반도체 공업용수도 현재의 2배로 증가할 전망이지만, 팔당호 등에서 가져오는 취수량은 확대하지 않겠다는 계획이다.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화성캠퍼스는 최근 국제수자원관리동맹(AWS)으로부터 최고 등급인 ‘플래티넘’ 인증을 획득했다. AWS는 유엔글로벌콤팩트(UNGC)와 탄소정보공개 프로젝트(CDP) 등 국제단체가 동참한 물관리 인증 기관으로, 기업이 종합적 수자원 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있는지 평가한다. AWS는 100개 항목을 평가해 최고 등급인 플래티넘부터 골드, 코어까지 3단계 등급을 부여한다. 평가 항목은 안정적 물관리, 수질오염물질 관리, 수질 위생, 유역 내 수생태계 영향, 거버넌스 구축 등이다.

삼성전자는 앞서 2020년 영국 카본 트러스트가 수여하는 ‘물 사용량 저감’ 인증도 받았다. 최근 AWS 인증까지 받으며 업계 최초로 수자원 관리 역량을 검증하는 국제 인증 2종을 모두 획득했다. 삼성전자는 화성캠퍼스 외에도 국내외 다른 반도체 사업장을 대상으로 AWS 인증 취득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물 안 쓰는 스크러버 개발

SK하이닉스도 물에 진심이긴 마찬가지다. SK하이닉스는 물을 쓰지 않는 스크러버를 개발했다. 스크러버는 반도체 공장에서 발생하는 가스와 화학물질이 대기 중으로 배출되지 않게 하는 장비다. 본래 이 과정에서 열을 식히기 위해 다량의 물을 사용한다. SK하이닉스가 새로 도입한 워터프리 스크러버는 온도 조절을 위해 물을 분사하는 대신 냉각수가 파이프 안에서 이동하며 온도를 내리는 냉각 시스템을 적용한다.

냉각수가 직접 가스에 닿지 않기 때문에 물 사용량을 대폭 절감할 수 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반도체 공장에 워터프리 스크러버 장비를 도입해 냉각수를 재사용하면 하루에 7만9000톤의 물을 절약할 수 있다”며 “인구 24만 명이 살아가는 도시에서 하루에 사용하는 물의 양과 같다”고 설명했다. 스크러버 공정에 쓰고 남은 물이 줄어들면 처리 비용도 절감된다. SK하이닉스는 워터프리 스크러버가 연간 540억원의 경제적가치를 창출할 것으로 추산한다.

지자체와 협업도 한다. 지난 5월부터 충북 청주시는 공업용수를 재활용하는 청주 하수처리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SK하이닉스는 이 처리장에 민간투자 기업으로 참여했다. 이 하수처리장은 방류수를 재처리해 하루 최대 3만5000톤의 공업용수를 기업에 공급한다. SK하이닉스 청주 캠퍼스는 냉각수와 대기오염물질 흡수 등에 하루 8만 톤의 물을 사용하는데, 이 중 약 3만 톤을 청주하수처리장에서 받아 재사용한다. 1년에 약 1000만 톤의 공업용수가 절약되는 셈이다.

청주시와 손잡고 공장 주변 하천 살리기에도 나섰다. 지난 4월에는 청주시와 ‘1사 1하천 사랑운동’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SK하이닉스는 청주시 흥덕구 가경천 일대 2km가량을 맡아 정화에 나선다. 지난 5월에는 SK하이닉스 임직원과 실업 핸드볼 구단인 SK호크스 선수 등 100여 명이 가경천 일대를 청소했다.

2021년에는 이천사업장에 폐수 재이용 시스템을 설치해 하루에 재이용할 수 있는 폐수 용량을 6만 톤까지 늘렸다. 용인반도체클러스터가 완성될 때를 대비해 지난해부터는 인근 안성천의 생태계 변화도 기록 중이다. 2030년까지 수자원 절감량 누적 6억 톤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SK하이닉스는 물관리에서 전과정평가를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전과정평가는 생산부터 유통, 사용, 폐기되는 제품의 생애주기를 모두 고려해 환경영향을 평가하는 방식이다. 이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제품 생애주기 전과정에서 물 사용량과 환경영향 개선점을 파악해 친환경 제품 인증을 확대하는 것이 목표다. 지금까지는 탄소발자국과 물발자국 인증을 받았다.

최예린 한국경제 기자 rambut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