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정보라 "누군가에겐 현실이 귀신이야기보다 무서워요" [책마을 사람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한밤의 시간표
정보라 지음
퍼플레인
260쪽│1만5800원
정보라 지음
퍼플레인
260쪽│1만5800원
“때론 저의 소설 속 이야기들보다 현실 사회가 더 무섭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사회에서 외면받고 소외당하는 사람들은 매일 악몽 같은 삶을 살아가니까요.”
최근 소설집 <한밤의 시간표>를 펴낸 정보라 작가는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사회비판적 호러’로서의 귀신 이야기를 그렸다”고 말했다.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에 오른 <저주 토끼>에서 ‘토끼 인형의 저주’를 매개로 대기업의 횡포와 사회 부패를 꼬집었다면, 이번엔 초현실적인 귀신들을 통해 사회적 소수자들의 원한을 그렸다.
지난해 부커상 후보 소식 이후 지금까지는 정 작가의 기존 작품들이 재조명받는 시간이었다. 이번 소설집으로 정 작가의 새로운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게 됐다. 그는 “마감의 굴레에 딸려오는 일거리가 아니라, 마치 놀이를 즐기듯 귀신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고 했다.
소설집 <한밤의 시간표>는 정체불명의 물건들을 보관하는 수상한 연구소를 배경으로 한다. 연구소엔 ‘손수건’ ‘저주받은 양’ 등 귀신 들린 물건들이 널려 있다. 복도와 계단이 수시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도 하고, 어둠 속에서 귀신이 불쑥 말을 건네오기도 한다. 연구실 귀신들에 얽힌 오싹한 이야기는 ‘한밤의 시간표’에 따라 야간 근무를 하는 직원들의 입을 통해 전달된다. 작품에 수록된 7편의 단편 모두가 연구소에서, 그것도 적막에 싸인 밤에 벌어지는 일이다. 정 작가는 “학교나 사무실 등 익숙한 공간일수록 아무도 없는 밤에 가면 묘한 느낌이 든다”며 “대학 강사를 오래 한 저에게 가장 일상적인 공간이었던 연구소를 배경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소설집은 귀신 이야기를 매개로 사회적 소수자에 관한 문제를 다뤘다. 정 작가는 자기 작품의 장르를 ‘사회비판적 호러’라고 설명했다. 흥미를 자극하는 일반적 공포물 보다는 시대를 통찰하는 문학의 기능을 중시하겠다는 뜻이다. 그는 “산업재해를 입고 장애인이 된 노동자, 성적으로 이용당하는 여성, 성 소수자 등 다양한 인물들의 한(恨) 서린 사연이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고 설명했다.
소설의 소재에는 정 작가가 여러 시위에 참여하면서 전해 들은 괴담도 포함됐다. 그는 “중증 장애인의 절박한 심리를 악용해서 ‘기 치료’란 명목으로 사기를 친 일당의 사례, 동성애를 질병으로 규정하고 억지로 ‘전환 치료’를 한 사례 등을 듣고 소름이 돋았다”며 “소수자로 살아간다는 게 당사자 입장에서 공포스러운 일이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소름 끼치는 귀신 이야기를 다뤘지만, 소설집 곳곳에는 약자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녹아있다. 작품을 읽어나갈수록 연구소에 대한 인상도 바뀐다. 기괴하게만 느껴졌던 연구소는 어느덧 약하고 상처 입은 존재들에 대한 연민이 가득한 공간으로 거듭난다. 이야기의 화자는 “가장 연약한 존재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기를 바라면서” 귀신 들린 사물을 쓰다듬고, “생명 없는 존재가 밝은 세상에서 고통받지 않도록 보호하는 업무”를 해낸다.
신작 계획에 대해서는 “내년 초 출간을 목표로 해양 수산물 과학소설(SF)을 준비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다음 작품은 최근 일본 후쿠시마 원전수 방류 문제를 둘러싼 이야기를 써 볼 계획이다”며 “어민들이나 바닷속 생물들의 시선에서 느낄 만한 호러를 담고 싶다”고 덧붙였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최근 소설집 <한밤의 시간표>를 펴낸 정보라 작가는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사회비판적 호러’로서의 귀신 이야기를 그렸다”고 말했다.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에 오른 <저주 토끼>에서 ‘토끼 인형의 저주’를 매개로 대기업의 횡포와 사회 부패를 꼬집었다면, 이번엔 초현실적인 귀신들을 통해 사회적 소수자들의 원한을 그렸다.
지난해 부커상 후보 소식 이후 지금까지는 정 작가의 기존 작품들이 재조명받는 시간이었다. 이번 소설집으로 정 작가의 새로운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게 됐다. 그는 “마감의 굴레에 딸려오는 일거리가 아니라, 마치 놀이를 즐기듯 귀신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고 했다.
소설집 <한밤의 시간표>는 정체불명의 물건들을 보관하는 수상한 연구소를 배경으로 한다. 연구소엔 ‘손수건’ ‘저주받은 양’ 등 귀신 들린 물건들이 널려 있다. 복도와 계단이 수시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도 하고, 어둠 속에서 귀신이 불쑥 말을 건네오기도 한다. 연구실 귀신들에 얽힌 오싹한 이야기는 ‘한밤의 시간표’에 따라 야간 근무를 하는 직원들의 입을 통해 전달된다. 작품에 수록된 7편의 단편 모두가 연구소에서, 그것도 적막에 싸인 밤에 벌어지는 일이다. 정 작가는 “학교나 사무실 등 익숙한 공간일수록 아무도 없는 밤에 가면 묘한 느낌이 든다”며 “대학 강사를 오래 한 저에게 가장 일상적인 공간이었던 연구소를 배경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소설집은 귀신 이야기를 매개로 사회적 소수자에 관한 문제를 다뤘다. 정 작가는 자기 작품의 장르를 ‘사회비판적 호러’라고 설명했다. 흥미를 자극하는 일반적 공포물 보다는 시대를 통찰하는 문학의 기능을 중시하겠다는 뜻이다. 그는 “산업재해를 입고 장애인이 된 노동자, 성적으로 이용당하는 여성, 성 소수자 등 다양한 인물들의 한(恨) 서린 사연이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고 설명했다.
소설의 소재에는 정 작가가 여러 시위에 참여하면서 전해 들은 괴담도 포함됐다. 그는 “중증 장애인의 절박한 심리를 악용해서 ‘기 치료’란 명목으로 사기를 친 일당의 사례, 동성애를 질병으로 규정하고 억지로 ‘전환 치료’를 한 사례 등을 듣고 소름이 돋았다”며 “소수자로 살아간다는 게 당사자 입장에서 공포스러운 일이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소름 끼치는 귀신 이야기를 다뤘지만, 소설집 곳곳에는 약자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녹아있다. 작품을 읽어나갈수록 연구소에 대한 인상도 바뀐다. 기괴하게만 느껴졌던 연구소는 어느덧 약하고 상처 입은 존재들에 대한 연민이 가득한 공간으로 거듭난다. 이야기의 화자는 “가장 연약한 존재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기를 바라면서” 귀신 들린 사물을 쓰다듬고, “생명 없는 존재가 밝은 세상에서 고통받지 않도록 보호하는 업무”를 해낸다.
신작 계획에 대해서는 “내년 초 출간을 목표로 해양 수산물 과학소설(SF)을 준비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다음 작품은 최근 일본 후쿠시마 원전수 방류 문제를 둘러싼 이야기를 써 볼 계획이다”며 “어민들이나 바닷속 생물들의 시선에서 느낄 만한 호러를 담고 싶다”고 덧붙였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