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매체 '폴리티코' 탐사 보도…"수요 많아 자체 생산 역부족"
"러시아제 저격총에 미제 탄약…러 기업들 밀수입으로 들여와"
러시아 민간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의 한 저격수가 텔레그램에 올라온 동영상에서 러시아산 '오르시스 T-5000' 저격용 소총의 성능을 자랑했다.

그런데 그가 "최대 1천500m 거리에서도 공격이 가능하다"며 옆구리에 찬 탄창을 빼내 보여준 탄약은 서방제 338 구경 탄약이었다.

모스크바에 있는 소총 제작 회사 '프롬테흐놀로기야'가 생산한 오르시스 T-5000에 어떻게 서방제 탄약이 사용되는지에 대해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우크라이나군이 엄청난 양의 서방제 탄약을 남기고 떠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러시아군이 사용하는 서방제 탄약이 노획물에서 얻어진 것만은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고 미국 매체 폴리티코가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매체는 자체 탐사 취재를 통해 러시아 기업들이 수십만발의 미제 저격용 총탄을 수입한 것으로 파악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8월 12일자로 러시아 수입 당국에 등록된 '적합성 신고서'에서 프롬테흐놀로기야는 민간용 총기에 사용되는 사냥탄 조립을 위해 10만2천200발의 미국 호나디사 납 탄알을 조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호나디사는 미국 네브래스카주 그랜드아일랜드에 본사를 둔 탄약 제작 회사다.

제품명과 모델, 제조사, 제조 일자 등이 포함된 적합성 신고서는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안전성과 신뢰성을 충족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서류로, 러시아는 현지 기업이 수입하는 제품에 대해 적합성 신고서를 제출하게 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제품 생산업체가 적합성 신고서 내용만으로는 중개인에 의해 이루어지는 거래 내용을 파악하지 못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폴리티코는 지적했다.

프롬테흐놀로기야는 탄약 수입을 위해 신고서를 제출한 적이 없다며 "우리는 호나디사와 관계가 없으며, 자체적으로 탄약을 제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영국에 본부를 둔 국제 전략 연구소의 마리아 샤기나 국방 분석가는 "군용 탄약을 사냥이나 스포츠용으로 위장하는 것은 러시아가 (서방의) 제재를 회피하기 위해 쓰는 얄팍한 계략"이라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는 자국을 침공한 러시아군이 오르시스 T-5000 소총을 사용했다면서 프롬테흐놀로기야와 그 대표 알렉산드르 지노비예프를 모두 제제 목록에 올려놓고 있다.

미국도 프롬테흐놀로기야에 제재를 가하고 있다.

또 다른 러시아 회사 '테티스'도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이후 두 차례 호나디사 탄약을 수입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지난 4월 수입품에는 다양한 종류의 호나디사 제품 30만점이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

테티스를 소유한 러시아인 알렉산드르 레반돕스키와 세르게이 센첸코는 모두 러시아군과 연결된 인물로 알려졌다.

폴리티코는 탐사 취재 과정에서 독일, 핀란드, 튀르키예 등에서 생산된 탄약을 다른 여러 러시아 회사가 수입하려 적합성 신고서를 제출한 사실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신문은 그러면서 러시아의 서방제 탄약 밀수입은 자체 생산 역량 부족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러시아의 군산복합체가 오르시스 소총과 같은 우수한 소형 무기를 생산할 수 있지만, 수백 km에 걸쳐 있는 전선에서 전쟁을 치르는 자국 군대에 필요한 양의 탄약을 공급하기는 역부족 상황으로 보인다는 설명이다.

"러시아제 저격총에 미제 탄약…러 기업들 밀수입으로 들여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