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파업은 연대, 책임은 각자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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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CHO Insight
김상민 변호사의 '스토리 노동법'
김상민 변호사의 '스토리 노동법'
각자도생(各自圖生). 누구나 한번쯤 써봤을 법한 말로 각자 스스로 살길을 도모한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현대에 만들어진 신조어로 족보없는 사자성어라고 알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조선왕조실록 선조 27년에 처음 등장하는 것을 비롯해서 4번이나 더 등장한다고 한다. 지난 주 대법원 판결을 보고 문득 떠오른 단어다.
불법파업 가담 조합원들의 책임에 관한 대법원 판결(대법원 2023. 6. 15. 선고 2017다46274 판결)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판결문과 대법원 보도자료에 따르면, 불법파업에 대하여 노동조합의 책임과 가담한 조합원들의 책임이 달라야 하고, 조합원들의 책임도 노동조합에서의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및 정도, 손해 발생에 대한 기여 정도, 현실적인 임금 수준과 손해배상 청구금액 등을 고려하여 개별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는 것이 판결의 요지다.
판결이 선고된 직후 거의 모든 언론매체에서 대대적으로 판결 보도를 하였고, 정부 정치권 경영계 노동계 너나 할 것 없이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노란봉투법이라는 별명이 더 유명한 노조법 개정안이 논의되고 있고, 개정안 중에는 불법파업 시 조합원의 책임을 제한하는 내용이 있는 상황에서 이번 판결과 노란봉투법을 비교하는 내용이 대다수였다. 이번 판결이 노란봉투법과 '이란성 쌍둥이'라는 의견도 있고,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런 와중에 대법원에서는 2차 보도자료를 통해 판결 내용과 의미를 자세히 설명하면서 일각의 오해와 비판에 대하여 반박했다. 하나의 대법원 판결을 놓고 각계각층에서 분석과 비판, 반박이 이어지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모습이다. 그만큼 법리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산업 현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먼저, 이번 판결의 주된 취지는 불법파업 시 노동조합과 조합원들의 손해배상 책임의 범위를 동일하게 보는 것은 헌법상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에 다르게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노동조합과 조합원들의 책임 범위는 다르게 판단될 것이다.
한편, 대법원 판결은 노동조합의 지시에 따라 그 실행에 참여한 조합원으로서는 쟁의행위가 다수결에 의해 결정된 이상 그 정당성에 의심이 가더라도 불참하기를 기대하기는 사실상 어렵고, 급박한 쟁의행위 상황에서 조합원에게 정당성 여부를 일일이 판단할 것을 요구하기 어렵다는 점도 언급하고 있다. 노동조합에서 내린 파업지침에 따르지 않으려니 불이익이 있을 것 같고 따르다 보니 엉겁결에 불법행위가 벌어지는 현장에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 현실일 수 있다. 다만, 이 부분이 법리적인 근거가 될 수 있는지는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노조법은 이미 쟁의행위의 수단과 방법에 관하여 자세하게 정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사용자의 점유를 배제하여 조업을 방해하는 형태로 쟁의행위를 해서는 아니 된다(제37조 제3항)” “쟁의행위는 그 쟁의행위와 관계없는 자 또는 근로를 제공하고자 하는 자의 출입·조업 기타 정상적인 업무를 방해하는 방법으로 행하여져서는 아니되며 쟁의행위의 참가를 호소하거나 설득하는 행위로서 폭행·협박을 사용하여서는 아니된다(제38조 제1항)” “작업시설의 손상이나 원료·제품의 변질 또는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작업은 쟁의행위 기간중에도 정상적으로 수행되어야 한다(제38조 제2항)” “쟁의행위는 폭력이나 파괴행위 또는 생산 기타 주요 업무에 관련되는 시설과 이에 준하는 시설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시설을 점거하는 형태로 이를 행할 수 없다(제42조 제1항)” 어느 하나 금지되는 행위 중 명확하지 않은 것이 없다. 어떤 행위는 하지 말라고 노조법에 다 쓰여 있는 것이다. 실제로 폭력행위나 사업장 점거가 불법임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설령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법률의 부지로 책임면제사유는 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회사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손해배상을 청구할 정도라면 정말 엄청난 불법은 아닐까? 이번에 문제된 판결 사안을 읽어 보면 사실관계와 판례 법리 사이에 심각한 미스매치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다음으로, 이번 판결이 조합원들 사이에 부진정연대채무 원칙을 변경한 것인지에 대한 논란도 있다. 이에 대하여는 대법원이 2차 보도자료를 통하여 부진정연대채무의 원칙은 유지되나 조합원들 사이에서 책임제한을 개별적으로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고용노동부가 밝힌 이번 판결에 대한 설명도 동일하다. 과거에는 조합원 A, B, C 모두 500만원의 책임을 부담하였으나 이제는 조합원 A는 500만원, B는 300만원, C는 200만원과 같은 식으로 책임이 달라질 수 있다.
폭력을 휘두르거나 라인을 무단 점거할 때는 대오를 함께 하면서도 각자간 책임이 달라질 수 있다는 데에 동의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노동운동은 연대와 단결인데, 책임범위는 별개라니 오히려 노동운동의 본질을 훼손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손해배상청구의 상대방이 될 만한 조합원들은 총대를 멘다는 분위기가 강했는데, 이제 총대를 멘 사람들이 책임은 연대하여 지더라도 책임범위는 각자 개별적으로 판단을 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하급심에서는 불법파업에 따른 손해배상 사건에서 피고가 된 조합원들의 책임범위를 개별적으로 정하게 될 것이고, 대법원 판결이 설시한 사정들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사정들을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판단을 할 것이다. 그리고 이때 책임범위가 개별적으로 인정되는 조합원들은 책임범위를 감소시키기 위한 사정들을 현출하면서 ‘나는 간부가 아니다.’, ‘나는 주도적으로 하지 않았다’, ‘나는 수입이 적다’는 등의 주장을 할 수도 있겠다. 총대를 멘 이들의 각자도생이 연대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지켜볼 일이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불법파업 가담 조합원들의 책임에 관한 대법원 판결(대법원 2023. 6. 15. 선고 2017다46274 판결)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판결문과 대법원 보도자료에 따르면, 불법파업에 대하여 노동조합의 책임과 가담한 조합원들의 책임이 달라야 하고, 조합원들의 책임도 노동조합에서의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및 정도, 손해 발생에 대한 기여 정도, 현실적인 임금 수준과 손해배상 청구금액 등을 고려하여 개별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는 것이 판결의 요지다.
판결이 선고된 직후 거의 모든 언론매체에서 대대적으로 판결 보도를 하였고, 정부 정치권 경영계 노동계 너나 할 것 없이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노란봉투법이라는 별명이 더 유명한 노조법 개정안이 논의되고 있고, 개정안 중에는 불법파업 시 조합원의 책임을 제한하는 내용이 있는 상황에서 이번 판결과 노란봉투법을 비교하는 내용이 대다수였다. 이번 판결이 노란봉투법과 '이란성 쌍둥이'라는 의견도 있고,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런 와중에 대법원에서는 2차 보도자료를 통해 판결 내용과 의미를 자세히 설명하면서 일각의 오해와 비판에 대하여 반박했다. 하나의 대법원 판결을 놓고 각계각층에서 분석과 비판, 반박이 이어지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모습이다. 그만큼 법리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산업 현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먼저, 이번 판결의 주된 취지는 불법파업 시 노동조합과 조합원들의 손해배상 책임의 범위를 동일하게 보는 것은 헌법상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에 다르게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노동조합과 조합원들의 책임 범위는 다르게 판단될 것이다.
한편, 대법원 판결은 노동조합의 지시에 따라 그 실행에 참여한 조합원으로서는 쟁의행위가 다수결에 의해 결정된 이상 그 정당성에 의심이 가더라도 불참하기를 기대하기는 사실상 어렵고, 급박한 쟁의행위 상황에서 조합원에게 정당성 여부를 일일이 판단할 것을 요구하기 어렵다는 점도 언급하고 있다. 노동조합에서 내린 파업지침에 따르지 않으려니 불이익이 있을 것 같고 따르다 보니 엉겁결에 불법행위가 벌어지는 현장에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 현실일 수 있다. 다만, 이 부분이 법리적인 근거가 될 수 있는지는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노조법은 이미 쟁의행위의 수단과 방법에 관하여 자세하게 정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사용자의 점유를 배제하여 조업을 방해하는 형태로 쟁의행위를 해서는 아니 된다(제37조 제3항)” “쟁의행위는 그 쟁의행위와 관계없는 자 또는 근로를 제공하고자 하는 자의 출입·조업 기타 정상적인 업무를 방해하는 방법으로 행하여져서는 아니되며 쟁의행위의 참가를 호소하거나 설득하는 행위로서 폭행·협박을 사용하여서는 아니된다(제38조 제1항)” “작업시설의 손상이나 원료·제품의 변질 또는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작업은 쟁의행위 기간중에도 정상적으로 수행되어야 한다(제38조 제2항)” “쟁의행위는 폭력이나 파괴행위 또는 생산 기타 주요 업무에 관련되는 시설과 이에 준하는 시설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시설을 점거하는 형태로 이를 행할 수 없다(제42조 제1항)” 어느 하나 금지되는 행위 중 명확하지 않은 것이 없다. 어떤 행위는 하지 말라고 노조법에 다 쓰여 있는 것이다. 실제로 폭력행위나 사업장 점거가 불법임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설령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법률의 부지로 책임면제사유는 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회사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손해배상을 청구할 정도라면 정말 엄청난 불법은 아닐까? 이번에 문제된 판결 사안을 읽어 보면 사실관계와 판례 법리 사이에 심각한 미스매치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다음으로, 이번 판결이 조합원들 사이에 부진정연대채무 원칙을 변경한 것인지에 대한 논란도 있다. 이에 대하여는 대법원이 2차 보도자료를 통하여 부진정연대채무의 원칙은 유지되나 조합원들 사이에서 책임제한을 개별적으로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고용노동부가 밝힌 이번 판결에 대한 설명도 동일하다. 과거에는 조합원 A, B, C 모두 500만원의 책임을 부담하였으나 이제는 조합원 A는 500만원, B는 300만원, C는 200만원과 같은 식으로 책임이 달라질 수 있다.
폭력을 휘두르거나 라인을 무단 점거할 때는 대오를 함께 하면서도 각자간 책임이 달라질 수 있다는 데에 동의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노동운동은 연대와 단결인데, 책임범위는 별개라니 오히려 노동운동의 본질을 훼손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손해배상청구의 상대방이 될 만한 조합원들은 총대를 멘다는 분위기가 강했는데, 이제 총대를 멘 사람들이 책임은 연대하여 지더라도 책임범위는 각자 개별적으로 판단을 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하급심에서는 불법파업에 따른 손해배상 사건에서 피고가 된 조합원들의 책임범위를 개별적으로 정하게 될 것이고, 대법원 판결이 설시한 사정들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사정들을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판단을 할 것이다. 그리고 이때 책임범위가 개별적으로 인정되는 조합원들은 책임범위를 감소시키기 위한 사정들을 현출하면서 ‘나는 간부가 아니다.’, ‘나는 주도적으로 하지 않았다’, ‘나는 수입이 적다’는 등의 주장을 할 수도 있겠다. 총대를 멘 이들의 각자도생이 연대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지켜볼 일이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