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테르담 필의 차이콥스키 '비창'…심장을 파고들 수 없었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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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테르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라하브 샤니 지휘·김봄소리 협연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응축된 에너지·폭발적인 표현력…긴장감 고조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
음향적 밸런스 '흔들'…악상 표현 평면적
라하브 샤니 지휘·김봄소리 협연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응축된 에너지·폭발적인 표현력…긴장감 고조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
음향적 밸런스 '흔들'…악상 표현 평면적
라하브 샤니(34)는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서 '젊은 거장'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 지휘자다. 2018년 29세 나이로 네덜란드 로테르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역대 최연소 상임지휘자로 발탁된 데 이어 2020년에는 명장 주빈 메타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 자리에 올라서다.
그가 내한한다는 소식 하나만으로도 로테르담 필하모닉의 공연을 찾아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협연자가 2021년 도이치그라모폰(DG)의 전속 아티스트로 계약하면서 세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은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34)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19일 오후 7시 30분 서울 롯데콘서트홀. 오케스트라 뒤편으로 김봄소리와 라하브 샤니가 함께 걸어 나왔다. 공연의 막을 연 작품은 '3대 바이올린 협주곡' 중 하나인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김봄소리는 시작부터 활을 세게 그으면서 브람스의 열정적인 악상을 토해냈다. 활로 현을 낚아채듯 움직이며 만들어낸 강렬한 음색으로 화음을 쏟아내다가도 순간적으로 활에 반동을 주면서 유려한 울림을 만들어내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카덴차(무반주 독주)에서는 활의 속도, 현에 가하는 장력까지 섬세하게 조절하면서 휘몰아치는 격정의 감정을 살려냈다. 3악장에서는 깔끔한 아티큘레이션(각 음을 분명하게 연주하는 기법)과 활로 현을 꼬집는 듯한 예민한 리듬 표현으로 춤곡의 맛을 살려냈다. 응축된 에너지와 폭발적인 표현력으로 모든 선율에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그의 연주는 청중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아쉬운 점이 없었던 건 아니다. 자세히 뜯어보면 고음 음정이 약간 흔들렸고, 오케스트라의 음향을 뚫고 나오는 힘도 다소 부족했다. 그러나 김봄소리 특유의 카랑카랑한 음색과 확신에 찬 해석으로 펼쳐낸 장대한 브람스를 만나기에 방해될 정도는 아니었다.
오케스트라와의 합도 나쁘지 않았다. 김봄소리의 소리가 다소 날카로운 편이어서 오케스트라의 부드러운 음향과 하나가 됐다고 보긴 어려운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악단이 솔리스트의 선율 움직임에 긴밀하게 반응하면서 전체적으로 연주의 밀도를 끌어올렸다. 2악장에서 오보에를 중심으로 목관악기가 들려준 단단하면서도 홀 전체를 울리는 따뜻한 음색은 브람스의 묵직한 서정을 표현하기에 적합했다. 이어진 작품은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 비통한 감정을 토해낸 선율과 인간의 폐부를 찌르는 듯한 강렬한 악상으로 유명한 차이콥스키 최후의 작품이다. 샤니의 대담한 지휘에도 연주는 초반부터 불안했다. 바순이 명료하면서도 묵직한 음색으로 차이콥스키의 애수를 표현해내는 데까지는 좋았으나, 통일된 아티큘레이션으로 작품의 입체감을 드러내야 하는 현악기의 소리가 하나로 모이지 못하고 여러 갈래로 흩어지면서 다소 산만한 인상을 남겼다.
샤니의 해석에서 템포는 빠른 편이었는데, 음향적 밸런스가 제대로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연주가 급하게 진행되다 보니 각 악기군의 리듬이 엉키거나 선율 간격이 벌어지는 순간들도 더러 있었다. 악기 간 선율이 제대로 협응하지 못하면서 비극적인 정서를 표현하는 데 있어 고도의 긴장감을 유발하는 정도도 부족했다. 응집된 악상이 저음으로 이뤄진 음울한 선율에서 고음으로 이뤄진 애수 띤 선율로 옮겨가면서 거대한 에너지를 표출하는 게 이 작품의 묘미인데, 그 매력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다. 연주가 안정을 찾아간 건 3악장부터였다. 전경에 자리할 때 명료한 음색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다가도 일시에 소리를 줄여 후경으로 빠지는 현악기와 관악기의 면밀한 앙상블이 이뤄지면서 음향에 입체감이 살아났다. 3악장에선 작은 아티큘레이션 하나까지 정교하게 맞춰가면서 역동적인 춤곡의 리듬을 살려냈고, 4악장에선 어두우면서도 무거운 음색으로 모든 음에 응축된 에너지를 담아내면서 차이콥스키의 깊은 탄식을 표현해냈다.
이날 로테르담 필하모닉의 '비창'은 차이콥스키의 마지막 숨결을 온전히 전한 무대라고 정의하기엔 분명 아쉬움이 있었다. 샤니의 독보적인 작품 해석, 그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소리의 응집력과 통일된 음색을 기대한 청중이라면 더욱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그간 선구자적 혜안(慧眼)으로 발레리 게르기예프, 야닉 네제 세갱 등 세계적인 명장들을 발탁해 온 로테르담 필하모닉의 선택은 틀린 적이 없다. 청중은 믿고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샤니의 천재적인 음악성과 악단의 호흡이 무르익을 그날을.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그가 내한한다는 소식 하나만으로도 로테르담 필하모닉의 공연을 찾아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협연자가 2021년 도이치그라모폰(DG)의 전속 아티스트로 계약하면서 세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은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34)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19일 오후 7시 30분 서울 롯데콘서트홀. 오케스트라 뒤편으로 김봄소리와 라하브 샤니가 함께 걸어 나왔다. 공연의 막을 연 작품은 '3대 바이올린 협주곡' 중 하나인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김봄소리는 시작부터 활을 세게 그으면서 브람스의 열정적인 악상을 토해냈다. 활로 현을 낚아채듯 움직이며 만들어낸 강렬한 음색으로 화음을 쏟아내다가도 순간적으로 활에 반동을 주면서 유려한 울림을 만들어내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카덴차(무반주 독주)에서는 활의 속도, 현에 가하는 장력까지 섬세하게 조절하면서 휘몰아치는 격정의 감정을 살려냈다. 3악장에서는 깔끔한 아티큘레이션(각 음을 분명하게 연주하는 기법)과 활로 현을 꼬집는 듯한 예민한 리듬 표현으로 춤곡의 맛을 살려냈다. 응축된 에너지와 폭발적인 표현력으로 모든 선율에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그의 연주는 청중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아쉬운 점이 없었던 건 아니다. 자세히 뜯어보면 고음 음정이 약간 흔들렸고, 오케스트라의 음향을 뚫고 나오는 힘도 다소 부족했다. 그러나 김봄소리 특유의 카랑카랑한 음색과 확신에 찬 해석으로 펼쳐낸 장대한 브람스를 만나기에 방해될 정도는 아니었다.
오케스트라와의 합도 나쁘지 않았다. 김봄소리의 소리가 다소 날카로운 편이어서 오케스트라의 부드러운 음향과 하나가 됐다고 보긴 어려운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악단이 솔리스트의 선율 움직임에 긴밀하게 반응하면서 전체적으로 연주의 밀도를 끌어올렸다. 2악장에서 오보에를 중심으로 목관악기가 들려준 단단하면서도 홀 전체를 울리는 따뜻한 음색은 브람스의 묵직한 서정을 표현하기에 적합했다. 이어진 작품은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 비통한 감정을 토해낸 선율과 인간의 폐부를 찌르는 듯한 강렬한 악상으로 유명한 차이콥스키 최후의 작품이다. 샤니의 대담한 지휘에도 연주는 초반부터 불안했다. 바순이 명료하면서도 묵직한 음색으로 차이콥스키의 애수를 표현해내는 데까지는 좋았으나, 통일된 아티큘레이션으로 작품의 입체감을 드러내야 하는 현악기의 소리가 하나로 모이지 못하고 여러 갈래로 흩어지면서 다소 산만한 인상을 남겼다.
샤니의 해석에서 템포는 빠른 편이었는데, 음향적 밸런스가 제대로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연주가 급하게 진행되다 보니 각 악기군의 리듬이 엉키거나 선율 간격이 벌어지는 순간들도 더러 있었다. 악기 간 선율이 제대로 협응하지 못하면서 비극적인 정서를 표현하는 데 있어 고도의 긴장감을 유발하는 정도도 부족했다. 응집된 악상이 저음으로 이뤄진 음울한 선율에서 고음으로 이뤄진 애수 띤 선율로 옮겨가면서 거대한 에너지를 표출하는 게 이 작품의 묘미인데, 그 매력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다. 연주가 안정을 찾아간 건 3악장부터였다. 전경에 자리할 때 명료한 음색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다가도 일시에 소리를 줄여 후경으로 빠지는 현악기와 관악기의 면밀한 앙상블이 이뤄지면서 음향에 입체감이 살아났다. 3악장에선 작은 아티큘레이션 하나까지 정교하게 맞춰가면서 역동적인 춤곡의 리듬을 살려냈고, 4악장에선 어두우면서도 무거운 음색으로 모든 음에 응축된 에너지를 담아내면서 차이콥스키의 깊은 탄식을 표현해냈다.
이날 로테르담 필하모닉의 '비창'은 차이콥스키의 마지막 숨결을 온전히 전한 무대라고 정의하기엔 분명 아쉬움이 있었다. 샤니의 독보적인 작품 해석, 그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소리의 응집력과 통일된 음색을 기대한 청중이라면 더욱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그간 선구자적 혜안(慧眼)으로 발레리 게르기예프, 야닉 네제 세갱 등 세계적인 명장들을 발탁해 온 로테르담 필하모닉의 선택은 틀린 적이 없다. 청중은 믿고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샤니의 천재적인 음악성과 악단의 호흡이 무르익을 그날을.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