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번성했던 중도좌파 성향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쇠퇴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그 빈틈을 메우고 있는 건 영국 보수당 이념을 기반으로 한 '국가적 보수주의'다. 사민주의 정당들은 '국가적 보수주의' 정당들에 밀려 줄어드는 파이를 범(凡)좌파 정당끼리 나눠가져야 하는 신세가 됐다.

이코노미스트는 19일(현지시간) "서유럽 유권자들은 이제 사민주의 정당을 무미건조하고 엘리트주의적인 집단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사민주의 정당들은 (보수 진영에 밀려) '줄어드는 파이'를 놓고 녹색주의, 깨어있는 자본주의 등을 표방하는 대안적 좌파 성향의 정당들과 경쟁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고 보도했다. '최근 서유럽 좌파 진영의 쇠퇴는 단순히 주기적인 문제가 아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서다.

올해 3월 치러진 네덜란드 지방선거 결과가 이 같은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정부의 과도한 친환경 드라이브에 반대하는 신생 우익 포퓰리즘 정당 농민시민운동(BBB)이 압승을 거둔 반면 노동당과 녹색좌파당 등은 한 자리수 득표율을 얻는 데 그치면서다. 이코노미스트는 "네덜란드 좌파의 문제는 다른 서유럽 국가들에도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좌파 진영은 2021년까지만 해도 스페인, 포르투갈을 비롯해 북유럽 4개국을 휩쓸었다. 그해 말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이끄는 사회민주당이 녹색당, 자유민주당과 연합정부를 꾸려 득세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를 기점으로 형세가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작년 프랑스 대선에서 중도좌파 사회당 후보의 득표율은 1%대에 그쳤다.

핀란드는 지난 4월 총선에서 사회민주당이 대패해 우파 연정에 자리를 내줬다. 그리스는 중도우파 성향 신민당이 5월 총선에서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의 약진을 누르고 재집권의 발판을 마련했고, 스페인은 같은 달 열린 지방선거에서 집권당인 사회노동당이 보수 야당에 패해 결국 7월 조기총선을 앞두고 있다. 독일 역시 숄츠 총리의 연정이 사분오열하면서 정권 지지도가 점점 하락세를 겪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와 관련 최근 칼럼을 통해 "영국 보수당의 '국가적 보수주의'가 유럽의 뉴라이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작년 말 연정을 구성해 집권에 성공한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이끄는 형제당이 대표적인 국가적 보수주의 정당이다. 비슷한 시기 총선을 치렀던 스웨덴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스웨덴 민주당이나 스페인의 3번째 정당으로 올라선 복스도 역시 같은 이념을 표방하고 있다.

FT는 "이들은 인종주의, 반유대주의 같은 극우주의를 표방하는 게 아니다"며 "전통적인 가족주의에 기반을 둔 채 출산률 제고 등에 힘쓰는 대신 불법 이민 통제, 합법 이민 쿼터 축소 등을 주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들은 주로 노동계급과 중산층의 표심을 공략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특히 이러한 계층의 남성 유권자들은 '구좌파'보다 이들 같은 '신우파(뉴라이트)'가 자신들의 권리를 더 잘 대변해준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