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 60건, 실패는 없었다 … 혜안 가진 ‘인내의 승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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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두려워 않는 진격의 롯데 ‘선봉장’
경영 뛰어든지 18년만에 그룹자산 5배로
바이오, 헬스케어 등 미래 포트폴리오 설계
그는 계란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능력을 시험받았다. 롯데 창업주인 신격호 명예회장은 태산이나 다름없었다. 신 회장은 ‘글로벌 롯데’라는 그만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신 회장의 성과는 숫자로 증명된다. 그는 2004년 그룹 정책경영본부장에 임명되면서 그룹 경영에 본격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했다. 이후 올해 일진머티리얼즈(현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인수까지 60여 건의 인수합병(M&A·전략적 투자 포함)을 성사시켰다. 2004년 24조6000억원 규모였던 롯데그룹의 자산은 지난해 말 129조7000억원(공정거래위원회 공정 자산 기준)으로 다섯 배가량 증가했다.
‘기업인 신동빈’을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이렇게 할 수 있겠다. ‘전문 경영인으로서의 능력을 입증한 2세대 창업가.’ 그래서 신 회장은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임직원들에게 ‘오너의 마인드를 가진 롯데맨’이 되기를 바란다. ‘할 수 있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롯데의 미래를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을 당장 실행에 옮기라’는 것이 그의 주문이다.
신 회장은 1시간 반 정도의 설명을 묵묵히 듣기만 했다. 보고자의 말허리를 자르지 않았다. 질문도 없었다. 동석한 임원은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롯데 내부에선 이런 신 회장의 성향에 대해 “듣기만 할 뿐 지시가 없으니 무엇을 해야 할지 정확히 모르겠다”는 평이 나오기도 한다. 실제로 신 회장은 ‘경청하는 리더십’의 대표 격이다. 연간 두 번 진행되는 롯데 사장단 회의인 VCM에서 신 회장은 거의 4시간에 달하는 회의를 질문 하나 없이 듣기만 할 때도 있다.
신 회장의 ‘침묵’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하나 더 있다. 주말을 이용해 그가 서울 소공동에 있는 롯데백화점 본점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늘 그랬듯이 신 회장은 홀로 매대 등을 둘러봤다.
평소 임원들은 쇼핑하는 신 회장을 두세 보 밖에서 지켜보기만 한다. 그런데 이날엔 백화점 고위 임원이 롯데백화점의 미래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곁들였다.
당시를 회상한 그 임원은 이렇게 말했다. “동선상 미처 설명을 다 못 드렸는데 백화점 정문을 나가 보니 회장이 홀로 나와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하던 설명 마저 하라’는 말씀과 함께요.”
이 두 장면은 신 회장의 화법과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 롯데 전현직 핵심 임원의 말을 종합하면 신 회장의 침묵은 ‘해당 보고에 대해 51%가량 반대한다’는 의미다.
컨설팅회사의 자문에 아무 말 없었던 건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을 뿐 아니라 건질 만한 내용도 없어서 이렇다 할 질문을 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롯데 본점 방문 사례는 거꾸로다. 즉흥 보고였지만, 계속 논의해볼 만한 가치가 있음을 행동으로 보여줬다는 얘기다. 신 회장은 적어도 공식석상에선 정제되고 준비된 언어로만 임직원들과 소통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말에 낭비가 있으면, 그로 인한 잡음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래서 롯데엔 학연, 지연을 기반으로 한 파벌이 거의 없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식품, 유통, 화학 등으로 그룹의 중점 역량이 옮겨 가긴 했다. 하지만 특정 계열의 우세가 지속되지는 않았다.
롯데 계열사 CEO조차 이 같은 신 회장의 경영 스타일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신 회장이 반론 없이 침묵을 지키거나 회장의 지시만 잘 따르면 최소 ‘B학점’은 받은 것이라고 오해한다는 것이다.
롯데제과 영등포공장 매각 건과 관련해 최근 그룹 사장단 회의에서 오간 대화는 신 회장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사례다. 당시 제과 대표가 공장 매각 계획을 보고했다.
이미 내용을 숙지하고 있던 신 회장은 어쩐 일인지 반대 의견을 냈다. “그룹의 모태를 팔기는 어렵지 않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보고자는 단숨에 매각 계획을 철회했다. ‘회장님 의견’이라고 그대로 따른 셈이다.
당시 신 회장은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직원들이 밤을 새워 안을 만들었을 텐데 그걸 회장 말 한마디에 철회하나. 그룹의 정통성도 살리고, 재무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발전적인 방안을 들고 오면 좋았을 텐데 그 점이 아쉽다.”
신 회장은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수행 인원을 최소화한다. 잠깐의 여유가 생기면 혼자 서점을 가거나 주변에서 산책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출장도 혼자 다니는 경우가 많다. 신 회장은 독일 출장 중이던 2014년 8월 홀로 괴테하우스를 방문하기도 했다. 2015년에는 혼자 방문한 서점에서 소설가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는 모습이, 2018년에는 평창동계올림픽 홍보를 위해 떠난 유럽 출장길에서 수행원도 없이 다니는 모습이 언론에 포착됐다.
2011년 말 롯데그룹 정기임원 인사에서 재계 5위 그룹의 회장이 되던 날에도 신 회장의 스타일은 변하지 않았다. 첫 출근길에도 수행비서를 따로 두지 않았다.
서류 가방을 직접 든 채 직원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서울 소공동 집무실로 향했다. 별도의 취임식도 없었다. 혹자는 롯데 회장의 이런 신념을 소박함, 혹은 탈(脫)격식으로만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때론 화려한 것을 피하고, 득이 될 만한 것을 취하는 ‘실용’으로만 바라볼 때도 있다.
하지만 롯데를 잘 아는 이들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신격호 명예회장만 해도 기업보국을 일생의 사명으로 삼았다. 그는 가업과 국격을 동일시했다. 기업인으로서의 이기심과 국가의 품격을 높이는 일을 하나로 일치시키는 데 힘을 쏟았다.
신 회장도 부친이 추구한 거화취실의 삶을 이해하는 데엔 시간이 꽤 필요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잠실 롯데월드타워를 지을 때의 일화가 남아 있다.
공사가 한창이던 어느 날, 당시 부회장이던 신 회장이 부친에게 오랫동안 참았던 고언을 했다. 층고를 낮춰 몇 동으로 나눠서 개발하자는 얘기였다.
실용의 관점에선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당시 신격호 명예회장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국격을 높이는 일에 얼마의 돈이 드는지를 따질 수는 없다.” 지금의 롯데월드타워는 서울, 더 나아가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롯데라는 브랜드를 알리는 데 이만한 효자도 없다.
신 회장은 1년에 200일가량 해외에 체류한다. 아베 신조 전 총리 가문을 비롯해 일본 정·재계 인사들과 오랜 인연을 맺어왔다. 한·일 관계 개선에 가교 역할을 하는 등 민간 외교관으로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막중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정·관·재계의 평가다.
신 회장은 국격을 높이는 데 기여하겠다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롯데 임직원들에게 품위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주문한다. “작은 이익을 위해 소비자나 협력사에 피해를 끼치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신 회장은 회장 취임 직후 ‘정풍 운동’을 전개했다. 롯데백화점 등 주요 계열사에 친인척과 관련된 자산을 찾아내고, 이를 모두 없애도록 했다.
롯데의 핵심은 한국 롯데라는 점도 늘 강조한다. 한국과 일본 관계자가 모두 참석한 회의에서는 한국어를 사용한다. 최근 신 회장은 롯데의 성장 DNA를 일본 롯데로 이식시키기 위해 양국의 사업 협력과 교류를 늘리고 있다.
일본 롯데의 신규 사업 추진과 글로벌 진출을 가속화하기 위해 한국 롯데의 발전 경로를 따르겠다는 의도다. 장남인 신유열 롯데케미칼 상무가 이와 관련한 중요 역할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신 회장의 투자 이력은 도전과 개척으로 점철돼 있다. 2000년 2월 국내 최초 전자상거래 기업인 롯데닷컴을 출범시킨 게 대표적이다.
일본에서 유통업의 발전 경로를 직접 경험한 신 회장은 <유통을 알면 당신도 CEO>라는 저서(공저)에서 자신만의 소신을 이렇게 피력했다. “인터넷 백화점에서 상품을 사고 집 앞에 있는 세븐일레븐 같은 편의점에서 물건을 받을 수 있으며, 편의점에서 웬만한 금융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은 롯데쇼핑의 강력한 경쟁자인 쿠팡의 등장을 예견한 듯한 분석을 하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 미국의 전자상거래 산업의 폭발에 관해 “미국의 전자상거래 업체들은 연간 수백억달러의 매출을 올리지만, 이 중 20~30%는 배달이 안 된다. 얼마나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는가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즈니스의 성패는 어떻게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가에 달렸다고 본다.”
약 3조원 규모의 삼성그룹 화학 계열사(옛 삼성SDI 케미칼사업부문·삼성정밀화학·삼성BP화학) 인수를 단행하기도 했다. 신 회장은 2015년 이재용 당시 삼성 부회장을 만나 인수를 제안했다. 이를 통해 롯데는 에틸렌 기반의 정통 석유화학을 넘어 스페셜티 케미컬 분야로까지 보폭을 넓히며 종합화학회사로서의 면모를 갖췄다. 2012년 북미 셰일가스에 투자한 것도 신 회장의 혜안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해 태스크포스팀(TFT)을 구성하고, 2015년 말 한국 화학기업 최초로 셰일가스 투자를 단행했다. 2019년 5월 미국 루이지애나주 레이크찰스에 셰일가스 기반의 에탄생산설비(ECC)를 준공하면서 투자 결실을 맺었다.
국내 석유화학기업이 미국 셰일가스를 원료로 하는 생산설비를 지은 첫 사례였다. 총 사업비만 31억달러에 달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가장 큰 대미 투자 사례다. 준공식 직후인 5월 13일 신 회장은 미국 백악관에서 트럼프 당시 대통령과 면담했다.
신 회장은 2004년 이후 올해까지 총 60여 건의 M&A를 진행했다. 이 중 실패로 평가받는 사례는 거의 없다. 비결은 크게 두 가지다.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사업 역량을 집중하고,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 효과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한다. 부실 증권사들이 매물로 쏟아졌던 2010년대에 롯데가 인수 후보로 늘 거론되자 신 회장이 “증권업은 롯데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며 선을 그은 건 잘 알려진 일화다.
하지만 신 회장은 이 점을 가장 아쉽게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토론과 논쟁을 즐기는 조직 문화를 만들고 싶어 한다는 것이 신 회장 주변의 얘기다. 70세를 앞두고 있는데도 신 회장은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 스스로 부단히 노력한다. 2021년 10월 가상현실 헤드 탑재 기기인 ‘오큘러스 퀘스트2’가 출시됐을 때 롯데에서 가장 먼저 사용한 얼리 어댑터가 신 회장이었다. 한 롯데 고위 임원은 “지금 롯데는 과거 성공방정식을 버리고 미래의 롯데를 위해 완전히 새로운 그룹 포트폴리오를 짜고 있는 시기”라며 “말단 사원에서부터 도전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간부들은 이를 사업으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 신 회장의 바람”이라고 말했다.
포트폴리오 재편과 관련, 신 회장은 네슬레에 버금가는 종합식품회사를 만들겠다는 포부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강기능식품까지 아우르는 생산 능력을 갖춤으로써 헬스케어 사업과 시너지를 내겠다는 전략이다.
제과와 푸드의 합병회사인 롯데웰푸드에 롯데칠성음료까지 합치는 방안이 논의됐을 정도다. 80여 개 계열사 중 그룹의 미래와 관련해 시너지를 내기 어렵거나, 수익성 개선이 불투명한 곳은 매각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통해 확보된 자금은 바이오, 헬스케어, 모빌리티 등 신산업에 대한 투자 목적으로 쓰일 것으로 예상된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경영 뛰어든지 18년만에 그룹자산 5배로
바이오, 헬스케어 등 미래 포트폴리오 설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삶을 관통하는 한자는 참을 인(忍)자다. 1990년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 상무를 시작으로 2011년 회장에 오를 때까지 엄부(嚴父) 밑에서 혹독하게 보낸 수업의 시간만 20여 년이다.
둘째 아들인 그가 한·일 롯데를 총괄하기 위해 감내해야 했던 시험과 고통은 상상하기 힘들다. ‘기업인 신동빈’의 리더십과 경영 스타일은 이런 배경을 고려하지 않고선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그는 계란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능력을 시험받았다. 롯데 창업주인 신격호 명예회장은 태산이나 다름없었다. 신 회장은 ‘글로벌 롯데’라는 그만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신 회장의 성과는 숫자로 증명된다. 그는 2004년 그룹 정책경영본부장에 임명되면서 그룹 경영에 본격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했다. 이후 올해 일진머티리얼즈(현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인수까지 60여 건의 인수합병(M&A·전략적 투자 포함)을 성사시켰다. 2004년 24조6000억원 규모였던 롯데그룹의 자산은 지난해 말 129조7000억원(공정거래위원회 공정 자산 기준)으로 다섯 배가량 증가했다.
‘기업인 신동빈’을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이렇게 할 수 있겠다. ‘전문 경영인으로서의 능력을 입증한 2세대 창업가.’ 그래서 신 회장은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임직원들에게 ‘오너의 마인드를 가진 롯데맨’이 되기를 바란다. ‘할 수 있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롯데의 미래를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을 당장 실행에 옮기라’는 것이 그의 주문이다.
싫은 소리 못해 … ‘듣기만 하는 회장님’ 오해받기도
‘새장 속의 새를 어떻게 하면 울게 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아마도 신 회장은 이렇게 답할 것이다. “비로소 울 때까지 기다린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 신 회장의 리더십은 온화하고, 차분하다. 신 회장은 가까운 직원에게 화를 낼 때조차 경어를 쓴다. 골프 행사 등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정장 차림을 고수한다. 신 회장은 고집으로 보일 정도로 타인에게 싫은 소리 하는 것을 꺼린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롯데의 사업 방향을 자문받기 위해 글로벌 컨설팅회사의 최종 결론을 보고받는 자리였다.신 회장은 1시간 반 정도의 설명을 묵묵히 듣기만 했다. 보고자의 말허리를 자르지 않았다. 질문도 없었다. 동석한 임원은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롯데 내부에선 이런 신 회장의 성향에 대해 “듣기만 할 뿐 지시가 없으니 무엇을 해야 할지 정확히 모르겠다”는 평이 나오기도 한다. 실제로 신 회장은 ‘경청하는 리더십’의 대표 격이다. 연간 두 번 진행되는 롯데 사장단 회의인 VCM에서 신 회장은 거의 4시간에 달하는 회의를 질문 하나 없이 듣기만 할 때도 있다.
신 회장의 ‘침묵’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하나 더 있다. 주말을 이용해 그가 서울 소공동에 있는 롯데백화점 본점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늘 그랬듯이 신 회장은 홀로 매대 등을 둘러봤다.
평소 임원들은 쇼핑하는 신 회장을 두세 보 밖에서 지켜보기만 한다. 그런데 이날엔 백화점 고위 임원이 롯데백화점의 미래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곁들였다.
당시를 회상한 그 임원은 이렇게 말했다. “동선상 미처 설명을 다 못 드렸는데 백화점 정문을 나가 보니 회장이 홀로 나와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하던 설명 마저 하라’는 말씀과 함께요.”
이 두 장면은 신 회장의 화법과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 롯데 전현직 핵심 임원의 말을 종합하면 신 회장의 침묵은 ‘해당 보고에 대해 51%가량 반대한다’는 의미다.
컨설팅회사의 자문에 아무 말 없었던 건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을 뿐 아니라 건질 만한 내용도 없어서 이렇다 할 질문을 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롯데 본점 방문 사례는 거꾸로다. 즉흥 보고였지만, 계속 논의해볼 만한 가치가 있음을 행동으로 보여줬다는 얘기다. 신 회장은 적어도 공식석상에선 정제되고 준비된 언어로만 임직원들과 소통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말에 낭비가 있으면, 그로 인한 잡음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래서 롯데엔 학연, 지연을 기반으로 한 파벌이 거의 없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식품, 유통, 화학 등으로 그룹의 중점 역량이 옮겨 가긴 했다. 하지만 특정 계열의 우세가 지속되지는 않았다.
롯데 계열사 CEO조차 이 같은 신 회장의 경영 스타일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신 회장이 반론 없이 침묵을 지키거나 회장의 지시만 잘 따르면 최소 ‘B학점’은 받은 것이라고 오해한다는 것이다.
롯데제과 영등포공장 매각 건과 관련해 최근 그룹 사장단 회의에서 오간 대화는 신 회장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사례다. 당시 제과 대표가 공장 매각 계획을 보고했다.
이미 내용을 숙지하고 있던 신 회장은 어쩐 일인지 반대 의견을 냈다. “그룹의 모태를 팔기는 어렵지 않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보고자는 단숨에 매각 계획을 철회했다. ‘회장님 의견’이라고 그대로 따른 셈이다.
당시 신 회장은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직원들이 밤을 새워 안을 만들었을 텐데 그걸 회장 말 한마디에 철회하나. 그룹의 정통성도 살리고, 재무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발전적인 방안을 들고 오면 좋았을 텐데 그 점이 아쉽다.”
수행원 없이 유럽 출장 … 대를 이은 ‘거화취실’의 삶
신 회장은 1955년 일본에서 태어났다. 아오야마가쿠인(靑山學院)대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마쳤다. 롯데가 아니라 일본 노무라증권 런던지점에서 평사원으로 먼저 근무한 것은 경험과 겸손을 배울 수 있도록 한 신격호 명예회장의 배려인 동시에 일종의 경영 수업이었다고 한다. 신 회장은 가훈인 거화취실(去華就實)을 실천하는 삶을 지향한다. ‘겉치레를 멀리하고, 본질에 집중한다’는 의미다. 신격호 명예회장이 좌우명으로 삼았던 경구다.신 회장은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수행 인원을 최소화한다. 잠깐의 여유가 생기면 혼자 서점을 가거나 주변에서 산책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출장도 혼자 다니는 경우가 많다. 신 회장은 독일 출장 중이던 2014년 8월 홀로 괴테하우스를 방문하기도 했다. 2015년에는 혼자 방문한 서점에서 소설가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는 모습이, 2018년에는 평창동계올림픽 홍보를 위해 떠난 유럽 출장길에서 수행원도 없이 다니는 모습이 언론에 포착됐다.
2011년 말 롯데그룹 정기임원 인사에서 재계 5위 그룹의 회장이 되던 날에도 신 회장의 스타일은 변하지 않았다. 첫 출근길에도 수행비서를 따로 두지 않았다.
서류 가방을 직접 든 채 직원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서울 소공동 집무실로 향했다. 별도의 취임식도 없었다. 혹자는 롯데 회장의 이런 신념을 소박함, 혹은 탈(脫)격식으로만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때론 화려한 것을 피하고, 득이 될 만한 것을 취하는 ‘실용’으로만 바라볼 때도 있다.
하지만 롯데를 잘 아는 이들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신격호 명예회장만 해도 기업보국을 일생의 사명으로 삼았다. 그는 가업과 국격을 동일시했다. 기업인으로서의 이기심과 국가의 품격을 높이는 일을 하나로 일치시키는 데 힘을 쏟았다.
신 회장도 부친이 추구한 거화취실의 삶을 이해하는 데엔 시간이 꽤 필요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잠실 롯데월드타워를 지을 때의 일화가 남아 있다.
공사가 한창이던 어느 날, 당시 부회장이던 신 회장이 부친에게 오랫동안 참았던 고언을 했다. 층고를 낮춰 몇 동으로 나눠서 개발하자는 얘기였다.
실용의 관점에선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당시 신격호 명예회장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국격을 높이는 일에 얼마의 돈이 드는지를 따질 수는 없다.” 지금의 롯데월드타워는 서울, 더 나아가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롯데라는 브랜드를 알리는 데 이만한 효자도 없다.
국격 높일 기회 … 잠행 깨고 부산엑스포 유치 나서
신 회장은 오랜 기간 경제계에서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이런 잠행을 깨고 최근 부산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를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다. 롯데의 도시로 불리는 부산의 미래를 위한 일이고, 한국의 국격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판단에서다. 경제계 관계자는 “신 회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 뜻하지 않은 고초를 겪으면서 트라우마에 가까울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며 “이를 감안하면 최근 신 회장의 행보는 굳은 결심의 표현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자신만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나라의 이익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일을 자처했다. 2021년 11월 중국발(發) 요소수 품귀 현상이 발생했을 때 롯데정밀화학이 베트남, 사우디아라비아, 일본, 러시아, 인도네시아 등 전 세계 공급망을 활용해 요소를 단독으로 확보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신 회장은 미쓰이화학에 직접 전화를 걸어 1000t 규모의 고품질 요소를 조달하기도 했다.신 회장은 1년에 200일가량 해외에 체류한다. 아베 신조 전 총리 가문을 비롯해 일본 정·재계 인사들과 오랜 인연을 맺어왔다. 한·일 관계 개선에 가교 역할을 하는 등 민간 외교관으로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막중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정·관·재계의 평가다.
신 회장은 국격을 높이는 데 기여하겠다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롯데 임직원들에게 품위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주문한다. “작은 이익을 위해 소비자나 협력사에 피해를 끼치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신 회장은 회장 취임 직후 ‘정풍 운동’을 전개했다. 롯데백화점 등 주요 계열사에 친인척과 관련된 자산을 찾아내고, 이를 모두 없애도록 했다.
롯데의 핵심은 한국 롯데라는 점도 늘 강조한다. 한국과 일본 관계자가 모두 참석한 회의에서는 한국어를 사용한다. 최근 신 회장은 롯데의 성장 DNA를 일본 롯데로 이식시키기 위해 양국의 사업 협력과 교류를 늘리고 있다.
일본 롯데의 신규 사업 추진과 글로벌 진출을 가속화하기 위해 한국 롯데의 발전 경로를 따르겠다는 의도다. 장남인 신유열 롯데케미칼 상무가 이와 관련한 중요 역할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단은 태산처럼 신중하되, 태풍처럼 빠르게
신 회장은 경영인으로서의 능력을 스스로 입증한 몇 안 되는 ‘오너 기업인’ 중 하나다. 성장 동력은 M&A다. 그는 태산처럼 신중하게 롯데의 본업과 연관된 신사업을 모색하고, 한 번 결정하면 태풍처럼 빠르게 움직인다. 2016년 컬럼비아대 MBA 재학생들을 당시 건축 단계에 있던 롯데월드타워에 초청한 일이 있었다. 이때 후배들이 롯데 성장 비결을 물었다. 신 회장은 주저없이 “M&A”라고 답했다.실제로 신 회장의 투자 이력은 도전과 개척으로 점철돼 있다. 2000년 2월 국내 최초 전자상거래 기업인 롯데닷컴을 출범시킨 게 대표적이다.
일본에서 유통업의 발전 경로를 직접 경험한 신 회장은 <유통을 알면 당신도 CEO>라는 저서(공저)에서 자신만의 소신을 이렇게 피력했다. “인터넷 백화점에서 상품을 사고 집 앞에 있는 세븐일레븐 같은 편의점에서 물건을 받을 수 있으며, 편의점에서 웬만한 금융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은 롯데쇼핑의 강력한 경쟁자인 쿠팡의 등장을 예견한 듯한 분석을 하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 미국의 전자상거래 산업의 폭발에 관해 “미국의 전자상거래 업체들은 연간 수백억달러의 매출을 올리지만, 이 중 20~30%는 배달이 안 된다. 얼마나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는가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즈니스의 성패는 어떻게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가에 달렸다고 본다.”
약 3조원 규모의 삼성그룹 화학 계열사(옛 삼성SDI 케미칼사업부문·삼성정밀화학·삼성BP화학) 인수를 단행하기도 했다. 신 회장은 2015년 이재용 당시 삼성 부회장을 만나 인수를 제안했다. 이를 통해 롯데는 에틸렌 기반의 정통 석유화학을 넘어 스페셜티 케미컬 분야로까지 보폭을 넓히며 종합화학회사로서의 면모를 갖췄다. 2012년 북미 셰일가스에 투자한 것도 신 회장의 혜안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해 태스크포스팀(TFT)을 구성하고, 2015년 말 한국 화학기업 최초로 셰일가스 투자를 단행했다. 2019년 5월 미국 루이지애나주 레이크찰스에 셰일가스 기반의 에탄생산설비(ECC)를 준공하면서 투자 결실을 맺었다.
국내 석유화학기업이 미국 셰일가스를 원료로 하는 생산설비를 지은 첫 사례였다. 총 사업비만 31억달러에 달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가장 큰 대미 투자 사례다. 준공식 직후인 5월 13일 신 회장은 미국 백악관에서 트럼프 당시 대통령과 면담했다.
신 회장은 2004년 이후 올해까지 총 60여 건의 M&A를 진행했다. 이 중 실패로 평가받는 사례는 거의 없다. 비결은 크게 두 가지다.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사업 역량을 집중하고,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 효과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한다. 부실 증권사들이 매물로 쏟아졌던 2010년대에 롯데가 인수 후보로 늘 거론되자 신 회장이 “증권업은 롯데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며 선을 그은 건 잘 알려진 일화다.
롯데=보수적? … “토론·논쟁 즐기는 조직문화 원해”
외부에서 신 회장과 롯데에 대해 갖고 있는 가장 큰 오해 중 하나는 ‘롯데=보수적’이라는 등식이다. 심지어 롯데 임직원들조차 ‘롯데는 레거시(고유의 문화)를 중시하기 때문에 변화를 싫어한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을 정도다.하지만 신 회장은 이 점을 가장 아쉽게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토론과 논쟁을 즐기는 조직 문화를 만들고 싶어 한다는 것이 신 회장 주변의 얘기다. 70세를 앞두고 있는데도 신 회장은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 스스로 부단히 노력한다. 2021년 10월 가상현실 헤드 탑재 기기인 ‘오큘러스 퀘스트2’가 출시됐을 때 롯데에서 가장 먼저 사용한 얼리 어댑터가 신 회장이었다. 한 롯데 고위 임원은 “지금 롯데는 과거 성공방정식을 버리고 미래의 롯데를 위해 완전히 새로운 그룹 포트폴리오를 짜고 있는 시기”라며 “말단 사원에서부터 도전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간부들은 이를 사업으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 신 회장의 바람”이라고 말했다.
포트폴리오 재편과 관련, 신 회장은 네슬레에 버금가는 종합식품회사를 만들겠다는 포부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강기능식품까지 아우르는 생산 능력을 갖춤으로써 헬스케어 사업과 시너지를 내겠다는 전략이다.
제과와 푸드의 합병회사인 롯데웰푸드에 롯데칠성음료까지 합치는 방안이 논의됐을 정도다. 80여 개 계열사 중 그룹의 미래와 관련해 시너지를 내기 어렵거나, 수익성 개선이 불투명한 곳은 매각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통해 확보된 자금은 바이오, 헬스케어, 모빌리티 등 신산업에 대한 투자 목적으로 쓰일 것으로 예상된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