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게처럼 만화책 속으로…어른이들의 아지트 '이태원 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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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구은서의 책이 머무는 집
이태원 그래픽
서울 용산구 회나무로39길 33
화~일요일 13:00~23:00
매주 월요일 휴무
'아지트'는 비밀이 생명입니다. 남들은 모르는, 나만 아는 공간에서 취향을 만끽하는 시간은 달콤하죠. 아지트라는 단어 자체가 구 소련 지하운동 본부를 뜻하던 러시아어 '아지트풍크트'에서 유래했어요.
지난해 문을 연 이태원 서점이자 북카페 '그래픽'은 알 만한 사람만 아는 아지트였죠. 조용한 주택가 골목에 자리잡고 있어요. "거기 진짜 좋은데, 기사로 소개하실 거예요? 사람 너무 많아지면 안 되는데…." 제가 그래픽에 가보려고 한다니까 누군가는 이런 말도 했어요.
하지만 얼마 전 연애 관찰예능 프로그램 '하트시그널' 속 데이트 장면으로 그래픽이 등장하는 걸 보면서 깨달았어요. 이제 이곳은 모든 '어른이'들의 아지트가 됐다는 걸요.
연애 예능 프로그램 '하트시그널4' 캡처. 이태원 그래픽에서 데이트 중인 출연자들.
처음 입소문이 난 건 예사롭지 않은 건물 디자인 덕분이었죠. 층층이 쌓인 건물 모양에다 세로로 결이 난 흰색 겉면은 조각케이크나 소라고둥 같기도 하고, 두꺼운 책을 떠올리게 하기도 합니다. 겉면은 마치 책 단면처럼 세로로 결이 나 있고요. 왜 어른이들은 이 소라고둥에 자꾸 숨어드는 걸까요.
그래픽 건물 지하주차장 입구 반대편, 건물 옆쪽의 두꺼운 철문을 밀고 들어가면 어둡고 고요한 복도가 나타납니다. 마치 숨을 고르고 새로운 세계에 입장할 준비를 하라는 듯이. 곧이어 자동문까지 통과하면 본격적으로 그래픽의 세상이 펼쳐집니다.
누가 '그래픽' 아니랄까봐 카운터에서 QR코드를 스캔하면 자체 인터넷 사이트로 연결되고, 여기서 만화로 이용 안내를 해줍니다.
총 3개층으로 구성된 이곳에는 다양한 책과 좌석이 갖춰져 있어요.
입장료 1만5000원을 내면 운영 시간인 오후 1시부터 11시까지 시간 제한 없이 이곳에 머물며 책을 마음껏 꺼내 읽을 수 있습니다. 디자인·건축·영화 서적, 마블과 DC코믹스 책부터 시대극, 힐링물까지. 1만5000원을 내고 일종의 놀이공원 자유이용권을 사는 셈이죠. 좌석은 취향껏 택하면 됩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앉는 커다란 책상도 있고, 눕다시피 기댈 수 있는 소파도 있죠. 사람들은 저마다 편한 자세로 만화책을 읽고 있었어요. 물과 차, 음료수도 3층 냉장고에서 무료로 꺼내 마실 수 있어요. 추가 금액을 내면 맥주·샴페인·위스키 등의 주류나 간단한 안주를 이용할 수 있고요. 단, 주류를 판매하는 곳이기 때문에 어른들만 입장 가능합니다. 책의 매력을 온전히 즐기도록 노트북 역시 이용금지입니다.
주말에는 줄서서 들어가는 책방입니다. 쾌적한 독서를 위해 인원 제한이 있어요. 입구에 '현재 만석입니다' 안내문이 붙어 있어도 놀라지 마세요. 대기 목록에 휴대폰 번호를 올려두면 입장 순서가 될 때쯤 카카오톡으로 알림을 보내줍니다. 중고학생때 책가방이나 책상 서랍에 숨겨두고 읽던 만화책을 이곳에서는 마음껏 즐길 수 있어요. 가벼운 술 한 잔을 곁들인 채 낄낄거리며 만화책을 읽는 맛은 어른이들만 알죠.
영화 3층 천장에 창을 낸 덕에 자연광이 고루 쏟아져 들어오고, 책장은 절로 넘어갑니다. 주제나 시기에 맞춰 읽을 만한 책을 큐레이션해주는 것도 이곳이 특별한 이유죠. 올초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개봉 이후 일본 인기 농구만화 <슬램덩크> 다시 읽는 분들 많으시죠? 그래픽 2층에는 <슬램덩크>를 '정주행'할 수 있도록 시리즈가 쭉 모아져 있답니다.
"그거 1권 다 읽었어? 재밌어? 나도 볼래. 바꿔 읽자." 책상 맞은 편에서 속삭이는 연인은 아지트의 또 다른 뜻을 떠올리게 했어요. 아지트를 국어사전에 찾으면 제일 먼저 이런 뜻이 나오거든요. '어떤 사람들이 자주 어울려 모이는 장소.' 아지트는 아끼는 사람들에게 소개할 때 진가를 드러내고, 어른이 돼도 만화책은 역시 함께 읽어야 제 맛입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입장료 1만5000원을 내면 운영 시간인 오후 1시부터 11시까지 시간 제한 없이 이곳에 머물며 책을 마음껏 꺼내 읽을 수 있습니다. 디자인·건축·영화 서적, 마블과 DC코믹스 책부터 시대극, 힐링물까지. 1만5000원을 내고 일종의 놀이공원 자유이용권을 사는 셈이죠. 좌석은 취향껏 택하면 됩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앉는 커다란 책상도 있고, 눕다시피 기댈 수 있는 소파도 있죠. 사람들은 저마다 편한 자세로 만화책을 읽고 있었어요. 물과 차, 음료수도 3층 냉장고에서 무료로 꺼내 마실 수 있어요. 추가 금액을 내면 맥주·샴페인·위스키 등의 주류나 간단한 안주를 이용할 수 있고요. 단, 주류를 판매하는 곳이기 때문에 어른들만 입장 가능합니다. 책의 매력을 온전히 즐기도록 노트북 역시 이용금지입니다.
주말에는 줄서서 들어가는 책방입니다. 쾌적한 독서를 위해 인원 제한이 있어요. 입구에 '현재 만석입니다' 안내문이 붙어 있어도 놀라지 마세요. 대기 목록에 휴대폰 번호를 올려두면 입장 순서가 될 때쯤 카카오톡으로 알림을 보내줍니다. 중고학생때 책가방이나 책상 서랍에 숨겨두고 읽던 만화책을 이곳에서는 마음껏 즐길 수 있어요. 가벼운 술 한 잔을 곁들인 채 낄낄거리며 만화책을 읽는 맛은 어른이들만 알죠.
영화 3층 천장에 창을 낸 덕에 자연광이 고루 쏟아져 들어오고, 책장은 절로 넘어갑니다. 주제나 시기에 맞춰 읽을 만한 책을 큐레이션해주는 것도 이곳이 특별한 이유죠. 올초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개봉 이후 일본 인기 농구만화 <슬램덩크> 다시 읽는 분들 많으시죠? 그래픽 2층에는 <슬램덩크>를 '정주행'할 수 있도록 시리즈가 쭉 모아져 있답니다.
"그거 1권 다 읽었어? 재밌어? 나도 볼래. 바꿔 읽자." 책상 맞은 편에서 속삭이는 연인은 아지트의 또 다른 뜻을 떠올리게 했어요. 아지트를 국어사전에 찾으면 제일 먼저 이런 뜻이 나오거든요. '어떤 사람들이 자주 어울려 모이는 장소.' 아지트는 아끼는 사람들에게 소개할 때 진가를 드러내고, 어른이 돼도 만화책은 역시 함께 읽어야 제 맛입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