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헤어져" 그녀의 한마디에…7년전 시간에 갇힌 37세 백수
실연 실직 2연타 … 개발자 꿈 접고 시골 처박혀
삶 포기하려던 순간 친구가 잡아줘
세상 밖으로
쓰레기 몇t 버리고 유튜브 켜 … 일상 기록부터 시작
어디서부터 어떻게 꼬인 걸까. 생애주기별 ‘숙제’에 발목 잡힌 대한민국 청년들. 대입, 취업, 연애, 결혼까지. 하나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낙오된다? “이번 생은 망했다”고 생각하는 대한민국 청년들이 그 어디서도 말할 수 없었던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다.
"우리 헤어져" 그녀의 한마디에…7년전 시간에 갇힌 37세 백수
서울 마포구에 사는 서른일곱 살 백수 주모씨의 시간은 7년 전 겨울에 머물러 있다. 평생을 함께할 줄 알았던 연인이 떠났고, 비슷한 시기 직장을 잃었다. 이후 다시 사회에서 기능하기 위해 면접을 보러 다니는 등 몇 차례 도전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

주씨는 원래부터 위축된 사람이 아니다. 지방 실업계고를 졸업한 후 돈 몇십만원을 모아 호기롭게 서울로 상경했다. 이모 집에서 생활하면서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학원에 다녔다. 평소 동경한 게임 개발자가 되기 위해서였다.

그의 패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C언어를 활용해 테트리스를 만드는 그의 옆에서 다른 학생들은 이미 복잡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들은 주로 컴퓨터공학과 전공생으로, 낮부터 공부하고 와서 저녁에 추가로 공부하는 식이었다. 오전~오후 시간에는 아르바이트에 묶여 있는 그가 그들을 뛰어넘기 어려워 보였다. 그렇게 주씨는 개발자의 길을 포기했다.

군 복무를 마친 뒤 휴대폰 대리점을 열어 기기를 팔았다. "경제적으로 가장 여유로웠던 때"라고 주씨는 회상했다. 하지만, 무언가 부족했다. 여전히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업계에 미련이 있었고, 사회생활을 더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게임회사에선 플레이어들을 상담해주는 CS 업무에 도전했다. 처음 몇 년 동안은 인사평가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등 꽤 잘 적응했다. 그러다 한 동료와 정이 들었다. 넘치지는 않아도 돈, 사람, 건강이 있는 안정적인 삶을 살 줄 알았다.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고 느낀 시점은 언제인지 궁금합니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해요. 직장에서 만난 동료와 1년 동안 연애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녀는 일이 적성에 안 맞는다며 직장을 옮겼고, 생활 반경이 서로 달라지면서 둘 사이 갈등이 생겨났어요.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마음이 바뀌었다”며 저를 모질게 떠났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이를 낳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고양이를 키우자며 데리고 온 고양이 두 마리도 두고요. 마음이 부서질 듯한 고통이었습니다. 제 시간은 지난 7년 동안 그때 그 시절에 멈춰 있었어요.

눈 감으면 만남을 시작하고 썸타던 시절부터 헤어지던 시기까지 모든 게 시나리오처럼 그려지곤 했어요.

▷실연의 아픔이 유난히 더 컸던 이유가 있나요?
키가 크지도, 얼굴이 잘생기지도 않은 저를 있는 그대로 봐준 몇 안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귄 지 두 달 만에 동거했습니다. 당시 서른 살이던 저는 그녀와 가정을 꾸리며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을 줄 알았습니다. 어쩌면 제 분에 넘치는 행복을 그때 만끽했던 것 같아요.

여자에게 차여서 은둔 생활을 시작한 찌질이 같은 인생이죠. 근데 또 불행은 한꺼번에 몰아닥친다더니, 그 말이 맞습니다. 비슷한 시기 직장에서도 권고사직을 당했습니다. 결혼 적령기, 어느 정도 사회에서 자리를 잡아갈 시기에 제 전부라고 생각한 애인과 직장을 모두 잃으니 다시 일어설 힘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주모씨(37)의 8살된 반려묘.  본인 제공
주모씨(37)의 8살된 반려묘. 본인 제공
▷당시 어떤 선택을 하셨나요?
고양이 말곤 책임질 게 없으니까 제 인생을 포기해 버렸던 것 같아요. 그저 내가 맡은 고양이 두 마리만 잘 키우자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여섯 달 동안 실업급여가 나오니까 다른 생각 안 하고 쉬었습니다. 2018년이 되니까 더 이상 돈 들어올 데가 없어서 구직 활동을 시작했죠. 그런데 1년 정도 경력이 단절되니까 면접 가서 어떻게 해명할 방법이 없더라고요. 연수를 간 것도 아니고, 여행을 간 것도 아니었으니깐요.

면접하러 오라는 데는 열 곳도 더 됐어요. 근데 결국 면접을 보고 나면 불합격 통보를 받았어요. 면접 다 떨어지니까 제가 희망하는 게임업계 쪽에선 갈 데가 없었습니다.

“안 되는구나.” 좌절했습니다. 생각을 바꿔서 게임 회사가 아니더라도 당장 다른 데라도 갔었어야 했는데 배가 불렀죠.

▷이후 다른 분야에서 구직활동을 시도하셨나요?
아니요. 결국 2019년도에 서울 생활을 정리했습니다. 면접 볼 생각도 없고, 일할 의지가 없어서 이럴 바엔 고향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족들도 걱정하니까 집으로 내려오라고 권유를 많이 했죠. 어머니도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겠어요.

시골은 집이 싸요. 월세 25만원에 방 세 개짜리 집을 구할 수 있어요. 혼자 지내면서 게임과 물아일체 된 삶을 살았습니다. 2019년 7월 무렵, ‘와우(월드오브워크래프트) 클래식’이라는 게임이 출시됐습니다. 그 게임을 도피처로 삼았습니다. 운 좋게도 그 게임이 돈이 돼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생활을 이어 나간 게 올해 초까지 일입니다. 거의 4년 가까운 기간을 게임 속 세상에서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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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패턴이 망가졌을 것 같은데요?
움직임을 최소화하다 보니 근육이 사라져 무기력했어요.

청소도 제대로 안 했어요. 컴퓨터 모니터 주변만 물티슈로 닦는 정도였죠. 집 밖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것조차 숨이 차요. 무엇보다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을 때 이웃을 만날까 봐 겁이 나서 더 방 안으로 숨은 것 같아요.

▷심경의 변화는 어떻게 찾아왔나요?
한 친구 덕분이었습니다. 마음이 너무 괴롭고 답답해서 이 세상을 떠날 결심을 했었습니다. 근데 이렇게 제가 이 세상에서 잊히는 건 아쉽더라고요.

10년 동안 연락을 거의 안 하고 지냈지만, 마음속으론 가장 의지한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어요. “오랜만이야, 사실 나 잘 못 지내”라고요. 어차피 죽을 건데 수치심 따위는 들지 않았어요. 대부분 힘든 이야기는 듣고 싶어 하지 않는데, 그 친구는 제 이야기를 그날 밤새 들어줬어요. 제 상황을 얘기하니까 당장 제가 사는 곳이 어디냐며 찾아오겠다고 했죠.

부끄러운 제 삶을 다 고백하고 나니까 죽고 싶은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수치심만 남아 있었어요. 그 친구를 생각해서라도 이대로 생을 끝내면 너무 쪽팔리니까 한 번 바뀐 모습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동안의 시간을 통해 무엇을 느꼈는지 궁금합니다.
그동안 슬픔을 대처하는 방식이 잘못됐다는 걸 느꼈어요. 나이 30에 누군가와 헤어질 수 있고, 직장에서 잘릴 수도 있죠. 이와 같은 불행이 닥쳤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닌데, 패배자처럼 살았어요. 정신 차리고 다시 힘을 내려고 보니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죠.

그래도 지금이라도 용기를 내서 다행이에요. 우선 방 세 칸에 지난 4년 동안 쌓은 모든 쓰레기를 1월부터 2월까지 한 달 정도 걸쳐 버렸어요. 하루에 50L짜리 봉투 다섯 개만 모아서 버리자는 마음이었어요. 봉투 80장을 썼습니다. 아마 몇t(톤)은 됐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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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활동을 하고 있다고요. 간략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여자한테 차여서 히키코모리가 됐다는 찌질한 내용의 영상이 알고리즘의 선택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현재는 구독자 수 4000명을 앞두고 있습니다. 사회 복귀 이후 구직활동했다가 번번이 떨어지고 있는 제 구질구질한 실패담도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응원도 많이 해주시지만 몇몇 분은 말을 함부로 하기도 해요. “왜 공장 안 감?””배가 아직도 불렀네” 같은 댓글이 달릴 때 제일 마음이 안 좋아요. 문명화된 사회에선 누구나 자기가 생각하는 바닥이 있을 거예요. '아무거나 하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의 무례함이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이 유튜브를 시작한 건 세상 밖으로 나와 살겠다는 제 다짐이에요. 방 탈출 시도가 실패로 끝나지 않도록 앞으로도 제 일상을 기록해 나가고자 합니다. 이 과정을 지켜보는 사람이 많을수록 더 많이 자극받고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최해련 기자 haery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