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치마켓' 완벽 겨냥…화물차 중고거래에 주목한 이유 [그래서 투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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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투자했다 (4) 차정연 스톤브릿지벤처스 수석팀장
한경 긱스(Geeks)가 출범 1주년을 맞아 [그래서 투자했다] 코너를 새롭게 선보입니다. 벤처캐피털(VC)이나 액셀러레이터의 투자심사역이 발굴한 스타트업과 투자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하는 공간입니다. 이번 순서로는 차정연 스톤브릿지벤처스 수석팀장이 화물차 중고거래 플랫폼 아이트럭에 투자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우리는 플랫폼의 시대에 살고 있다.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보급된지 10여 년 만에 수많은 플랫폼이 등장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은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배달음식을 주문하거나 택시를 부르는 일처럼 일상적인 영역은 물론이고, 집을 알아보고, 세탁물을 맡기고, 동네에서 중고거래자를 찾는 일까지 스마트폰에서 간단하게 해결한다. 심지어 중고차 매매나 아파트 인테리어처럼 수천만원의 금전이 오가는 거래까지 플랫폼화돼 이제는 플랫폼이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여전히 플랫폼이 장악하지 못한 시장도 존재한다. 불편함과 비효율에도 불구하고 수십년간 해오던 방식이라는 이유만으로 과거의 시스템이 아직까지 유지되는 것이다. 특히 시장의 폐쇄성이 강할수록 그런 경향은 짙게 나타나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중고 상용차(화물차) 거래 시장이다.
상용차는 승용차만큼이나 일상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차량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중고 차량 시세나 물건 정보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창구가 없었다. 차주 입장에서는 주변에서 소개받은 소수의 화물차 전문 딜러가 매물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구였고,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더 많은 딜러를 만나기 위해 전국으로 직접 발품을 파는 수밖에 없던 실정이었다. 이런 정보 비대칭성과 비효율성은 결국 구매자로 하여금 시세를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게 하고, 불필요한 마진(소개 수수료)을 부담하게 한다. 2020년 7월 설립된 아이트럭은 국내 최초로 중고 화물차 거래 플랫폼인 ‘아이트럭’을 선보이며 경직됐던 중고 화물차 시장에 혁신을 몰고 왔다. 차주들은 아이트럭 앱을 통해 손쉽게 전국에 있는 매물 정보를 확인하고, 원하는 사양의 매물 정보와 가격을 비교할 수 있다. 또 아이트럭은 허위 매물을 방지하기 위해서 인증 딜러 시스템을 도입했고, 실시간으로 딜러와 차주 간 라이브 영상 서비스를 제공해 매물 진위 여부 및 차량 상태를 확인할 수 있게 만들었다. 화물 운송에 필수적인 영업용 번호판 매매와 임대 컨설팅 서비스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 아이트럭의 등장으로 오프라인 중심의 폐쇄적인 시장이 온라인 기반의 플랫폼 시장으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트럭의 정혜인 대표를 처음 만난 건 2021년 10월이었다. 서울 동작구 화련회관 내 아이트럭 사무실에서 정 대표를 처음 만난 순간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여태껏 만난 스타트업 사무실과는 다르게 오랜 역사를 지나온 회사의 사무실 같았기 때문이다. 정 대표의 책상이나 소파, 테이블이 상당히 연식이 오래돼보였다. 창업한지 1년 조금 지난 회사의 이력과 사무실 모습 간의 괴리에 대한 궁금증은 금방 풀렸는데, 그 해답은 정 대표의 독특한 이력에 있었다.
정 대표는 캐나다 명문 맥길대에서 경영학을 배웠다. 졸업 후엔 도이치뱅크, JP모건, SMBC(미쓰이스미토모은행) 등 글로벌 금융회사에서 10여 년을 일하며 파생상품 개발과 프로젝트파이낸싱 업무를 담당했다. 그러던 중 운수회사를 경영 중인 아버지를 돕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귀국, 본격적으로 운수업계에 뛰어들었다.
정 대표가 운수업계로 넘어와 처음 담당한 일은 운수회사에서 관리하는 영업용 번호판을 임대하는 일이었다. 자가용 운전자에게는 생소한 일이겠지만, 화물차를 자가용이 아닌 영업용으로 운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업용 번호판을 부착해야 한다. 영업용 번호판은 총량을 정부에서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택시 면허와 마찬가지로 수천만원의 프리미엄이 붙는다. 운수회사의 경우 법인 전용 번호판과 물류 일감을 묶어서 차주에게 임대하고 있는데 이런 형태를 ‘지입’이라고 한다. 2020년 기준 전체 영업용 화물차량 중 약 65%가 지입 형태이며, 지입차를 운행하기 위해서 차주는 해당 영업용 번호판에 맞는 차량을 구매해야 한다. 정 대표는 영업용 번호판 임대 사업을 관리하면서 낙후된 시장거래 방식에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거래 과정에서 몇몇 차주에게 간단한 정보를 제공하며 도와준 적이 있는데, 차주들이 매우 고마워했다고 한다. 정 대표에게는 간단한 정보였지만 차주들에게는 상당히 유익한 정보로 작동했다는 얘기다. 이 경험은 신뢰할 수 있는 플랫폼의 필요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고, 약 2년간 화물운송업계에서 축적한 경험을 기반으로 아이트럭을 설립하게 된다.
아이트럭 투자 검토를 진행하면서 가장 주목했던 부분도 정 대표의 경험이었다. 더욱 정확하게는 (1)업계에서 직접 고객(차주)들을 만나며 확인한 명확한 고객 니즈 (2)차주, 딜러, 운수회사 관계자 등과 쌓아온 탄탄한 업계 네트워크 (3)종사자가 아니라면 파악하기 어려운 시장의 특성과 거기에서 비롯된 높은 진입장벽을 장점이라고 봤다.
아이트럭이 사업 초기부터 시장에 빠르게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은 정 대표의 경험과 네트워크 역할이 컸다. 중고 화물차 거래 시장은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매스 마켓'이 아니라 특정 고객층을 대상으로 하는 '니치 마켓'이다. 일반 승용차 거래 시장과 확연하게 구분되는 별도의 시장으로 화물차 전문 딜러가 존재한다. 아이트럭은 서비스 출시 후 1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전국 화물차 전문 딜러 수백 명을 플랫폼 내로 확보했고 이는 별도의 마케팅 없이 이뤄낸 성과였다. 지금은 딜러 수천 명이 회원으로 등록돼있고 구매 이용자도 만 명 이상 가입했다. 차주에게 가장 중요한 니즈는 정확한 시세 파악과 허위 매물로 인한 허탕을 방지하는 것이다. 아이트럭은 서비스 초기부터 허위 매물을 차단하고자 실매물 확인 기능을 선보였고, 실시간 매물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차주가 직접 현장에 방문하지 않아도 매물의 진위 여부를 빠르게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을 넣었다. 또 자체 데이터와 딜러사로부터 수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중고트럭 시세 정보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고객이 필요로 하는 핵심 가치를 전달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제 아이트럭은 투명하고 정직한 중고 화물차 중개라는 본연의 가치에 집중하면서 다양한 수익 모델을 만들어가고자 한다. 우선 연말까지 아이트럭이 직접 매물을 점검하고 인증서를 발급해주는 '인증상용차' 제도 도입을 준비 중이다. 허위 매물 여부를 넘어 차량의 상태와 성능까지 확인해주는 제도다. 지난해 기준 연 90억원 수준의 거래금액을 월 평균 30억원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도 중요한 목표다. 향후 베트남 등 해외 시장으로의 트럭 수출, 화물차 부품 판매 및 정비 사업, 대량의 트럭 매매가 필요한 기업과 연계한 B2B 도매 거래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아이트럭은 2021년 연 10억원에도 미치지 못했던 거래금액을 지난해 90억원 수준으로 10배 이상 끌어올렸다. 이 성장의 근간에는 전국을 직접 뛰어다니며 고객들을 만나고 끊임없이 고민하는 정 대표와 아이트럭 팀이 있다. 앞으로 수년 내에 중고 화물차 거래 시장의 핵심 기업으로 성장하는 아이트럭의 모습을 기대한다. 차정연 스톤브릿지벤처스 수석팀장 ㅣ 2020년 스톤브릿지벤처스에 합류해 딥테크/플랫폼/2차전지 등 다양한 영역에 활발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미개척시장에 도전하는 기업과 창업가에 관심을 갖고 있다. 대원외고를 졸업하고, KAIST에서 수리과학과 기술경영학을 복수전공했다. 이후 동대학원 기술경영전문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소프트뱅크벤처스에서 입사해 법무와 투자전략 업무를 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