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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긱스(Geeks)가 출범 1주년을 맞아 [그래서 투자했다] 코너를 새롭게 선보입니다. 벤처캐피털(VC)이나 액셀러레이터의 투자심사역이 발굴한 스타트업과 투자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하는 공간입니다. 이번 순서로는 차정연 스톤브릿지벤처스 수석팀장이 화물차 중고거래 플랫폼 아이트럭에 투자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우리는 플랫폼의 시대에 살고 있다.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보급된지 10여 년 만에 수많은 플랫폼이 등장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은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배달음식을 주문하거나 택시를 부르는 일처럼 일상적인 영역은 물론이고, 집을 알아보고, 세탁물을 맡기고, 동네에서 중고거래자를 찾는 일까지 스마트폰에서 간단하게 해결한다. 심지어 중고차 매매나 아파트 인테리어처럼 수천만원의 금전이 오가는 거래까지 플랫폼화돼 이제는 플랫폼이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여전히 플랫폼이 장악하지 못한 시장도 존재한다. 불편함과 비효율에도 불구하고 수십년간 해오던 방식이라는 이유만으로 과거의 시스템이 아직까지 유지되는 것이다. 특히 시장의 폐쇄성이 강할수록 그런 경향은 짙게 나타나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중고 상용차(화물차) 거래 시장이다.
상용차는 승용차만큼이나 일상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차량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중고 차량 시세나 물건 정보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창구가 없었다. 차주 입장에서는 주변에서 소개받은 소수의 화물차 전문 딜러가 매물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구였고,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더 많은 딜러를 만나기 위해 전국으로 직접 발품을 파는 수밖에 없던 실정이었다. 이런 정보 비대칭성과 비효율성은 결국 구매자로 하여금 시세를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게 하고, 불필요한 마진(소개 수수료)을 부담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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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 대표는 캐나다 명문 맥길대에서 경영학을 배웠다. 졸업 후엔 도이치뱅크, JP모건, SMBC(미쓰이스미토모은행) 등 글로벌 금융회사에서 10여 년을 일하며 파생상품 개발과 프로젝트파이낸싱 업무를 담당했다. 그러던 중 운수회사를 경영 중인 아버지를 돕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귀국, 본격적으로 운수업계에 뛰어들었다.
정 대표가 운수업계로 넘어와 처음 담당한 일은 운수회사에서 관리하는 영업용 번호판을 임대하는 일이었다. 자가용 운전자에게는 생소한 일이겠지만, 화물차를 자가용이 아닌 영업용으로 운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업용 번호판을 부착해야 한다. 영업용 번호판은 총량을 정부에서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택시 면허와 마찬가지로 수천만원의 프리미엄이 붙는다. 운수회사의 경우 법인 전용 번호판과 물류 일감을 묶어서 차주에게 임대하고 있는데 이런 형태를 ‘지입’이라고 한다. 2020년 기준 전체 영업용 화물차량 중 약 65%가 지입 형태이며, 지입차를 운행하기 위해서 차주는 해당 영업용 번호판에 맞는 차량을 구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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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트럭 투자 검토를 진행하면서 가장 주목했던 부분도 정 대표의 경험이었다. 더욱 정확하게는 (1)업계에서 직접 고객(차주)들을 만나며 확인한 명확한 고객 니즈 (2)차주, 딜러, 운수회사 관계자 등과 쌓아온 탄탄한 업계 네트워크 (3)종사자가 아니라면 파악하기 어려운 시장의 특성과 거기에서 비롯된 높은 진입장벽을 장점이라고 봤다.
아이트럭이 사업 초기부터 시장에 빠르게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은 정 대표의 경험과 네트워크 역할이 컸다. 중고 화물차 거래 시장은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매스 마켓'이 아니라 특정 고객층을 대상으로 하는 '니치 마켓'이다. 일반 승용차 거래 시장과 확연하게 구분되는 별도의 시장으로 화물차 전문 딜러가 존재한다. 아이트럭은 서비스 출시 후 1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전국 화물차 전문 딜러 수백 명을 플랫폼 내로 확보했고 이는 별도의 마케팅 없이 이뤄낸 성과였다. 지금은 딜러 수천 명이 회원으로 등록돼있고 구매 이용자도 만 명 이상 가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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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이트럭은 투명하고 정직한 중고 화물차 중개라는 본연의 가치에 집중하면서 다양한 수익 모델을 만들어가고자 한다. 우선 연말까지 아이트럭이 직접 매물을 점검하고 인증서를 발급해주는 '인증상용차' 제도 도입을 준비 중이다. 허위 매물 여부를 넘어 차량의 상태와 성능까지 확인해주는 제도다. 지난해 기준 연 90억원 수준의 거래금액을 월 평균 30억원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도 중요한 목표다. 향후 베트남 등 해외 시장으로의 트럭 수출, 화물차 부품 판매 및 정비 사업, 대량의 트럭 매매가 필요한 기업과 연계한 B2B 도매 거래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아이트럭은 2021년 연 10억원에도 미치지 못했던 거래금액을 지난해 90억원 수준으로 10배 이상 끌어올렸다. 이 성장의 근간에는 전국을 직접 뛰어다니며 고객들을 만나고 끊임없이 고민하는 정 대표와 아이트럭 팀이 있다. 앞으로 수년 내에 중고 화물차 거래 시장의 핵심 기업으로 성장하는 아이트럭의 모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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