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혁신, 시장에 맡겨선 안 된다” 주장하는 미 경제학자들 [WSJ 서평]
기술 혁신은 '꽝'과 '당첨'이 섞인 제비뽑기와 같다. 여기서 어떤 물건을 꺼내는지에 따라 우리 운명이 달라진다.

최근 두 명의 미국 경제학자는 이 역할을 국가가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후죽순 등장하는 새로운 기술들의 옥석을 가리고, 이를 사회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적용하는 일은 시장보다 정부가 더 잘 해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에서 출간된 <권력과 진보>는 기술 진보를 둘러싼 권력 투쟁의 역사를 정리한 책이다. 노벨 경제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대런 아세모글루와 그의 매사추세츠공과대(MIT) 동료 교수 사이먼 존슨이 함께 썼다. 이들은 그동안 기술 발전의 혜택이 일부 계층한테만 돌아간 점을 지적하며, 시장에서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 늘 공동체에 최적의 결과를 보장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1000년에 이르는 경제사를 추적한 저자들의 분석은 이렇다. 중세 유럽에서 농업 기술이 발전하며 생긴 부는 귀족 계층이 독식했다. 산업혁명으로 생산성이 개선된 뒤에도 영국 노동자의 임금은 한 세기가량 제자리걸음 했다.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혁신이 진행중인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책은 현대 사회의 업무 자동화와 정보의 홍수, 사생활 감시 등의 문제가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저자들은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진 정부가 시민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저자들은 "역사적으로 공동체의 이익은 엘리트 계층이 신기술에 따른 이익을 독점하지 못했을 때 극대화됐다"며 "현대 국가는 권력을 동원해 개인의 정보 독점을 막고, 노동자 친화적인 기술 개발을 지원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기술 혁신, 시장에 맡겨선 안 된다” 주장하는 미 경제학자들 [WSJ 서평]
저명한 경제학자들의 견해를 담았지만, 책 내용에 비판할 부분이 없진 않다. 저자들은 "정부는 노동 현장의 능률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기술이 발전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며 반독점 규제, 최저임금제, 특정 기술 개발에 대한 보조금 지급 등 방안을 제시한다. 하지만 정부가 시장보다 뛰어난 조정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문이 남는다.

경제사의 일부만을 입맛에 맞게 골라 분석했다는 문제도 있다. 1960년에 세계 인구 50억 명 중 40억 명이 하루 2달러로 생활했지만, 1970년대 신자유주의 기조가 들어선 이후 현재 이 비중은 80억 명 중 10억 명으로 줄었다. 단기적으로 혜택을 받지 못했던 노동자들도 장기적으론 이익을 공유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저자들은 시장의 자율적인 조정기능을 간과했다. 부에 대한 열망은 경제학의 기본 전제이자 인간 본성이다. 자유시장에선 돈 냄새를 맡고 모여든 수많은 기업이 경쟁적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상품을 찍어낸다. 이 과정에서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은 내려가고, 가난한 사람들도 실질 소득이 늘어나는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이는 아제모을루와 존슨이 주장하듯 탁상공론이 아니다. 자유주의 경제에서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정리=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이 글은 WSJ에 실린 디어드리 맥클로스키의 서평(2023년 6월 17일) ‘Power and Progress Review: Technology and the New Leviathan’을 번역·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