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휠체어로 이동하는 뇌병변 장애인 임모씨(32)는 집을 나서기 전, 목적지 근처에 있는 화장실 위치부터 확인한다. 작은 카페, 식당 등엔 장애인 전용 화장실이 없는 경우가 많아 볼일을 보러 근처 큰 건물로 이동해야 할 때가 많아서다.

#2. 청력이 좋지 않은 정모씨(78)는 주민등록등본을 떼러 주민센터를 방문했는데 무인민원발급기가 없어 직원에게 도움을 청해야 했다. 그러나 직원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소통이 되지 않자 정 씨는 결국 발급기가 있는 다른 센터로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도시 개발보다 약자 동행" 내세운 오세훈 서울시장
서울시가 사회적 약자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문제를 기술로 풀기 위해 힘을 모을 민관 모임 ‘기술동행 네트워크’를 출범시켰다고 21일 발표했다. 오는 8월부터 시청에서 두 달에 한 번꼴로 열릴 회의에 시민 누구나 약자를 위한 기술을 소개할 수 있다. 시 관계자는 "미국 카우프만 재단 주도로 개최되는 '원밀리언컵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약자와의 동행'은 서울시의 핵심 시정 가치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최근 기자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도시 개발보다도 서울시가 힘주고 있는 건 약자와의 동행"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작년 8월, '약자와의 동행추진단'을 시장 직속 기구로 설치했고, 지난 4월엔 다양한 유형의 약자를 지원하는 법적 근거(약자와의 동행 조례)를 마련했다. 오는 7월 중순께 '약자 동행지수 및 지표체계'도 발표할 예정이다. 해당 지수와 지표는 내년부터 약자동행 사업 평가 및 정책 방향 제안 등에 쓰일 예정이다.

민관이 뭉친 '기술동행 네트워크' 회의를 시가 직접 주최하겠다고 나선 것인데, 이 배경엔 국내서 기업들이 장애인·노인 등 약자를 위한 기술을 개발하기 쉽지 않다는 현실이 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기술은 수요가 적고, 기술을 실증해볼 수 있는 '테스트베드'가 적어 기업들이 기술 상용화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가 어렵다.
"도시 개발보다 약자 동행" 내세운 오세훈 서울시장
이러한 점을 고려해 시는 약자에게 필요한 우수기술이 개발, 상용화될 수 있도록 행정·재정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기술동행 네트워크' 회의를 통해 앞으로 아이디어가 있는 누구나 자체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을 발표할 수 있게 있게 될 예정이다.

투자사는 회의에 참석해 투자 대상을 모색할 수 있고, 공공기관도 정책에 반영할 만한 생각을 접할 수 있다. 기술에 대한 피드백이 절실한 개발자들도 이곳에서 실수요자가 될 사회적 약자들을 쉽게 만나 개선해나갈 부분을 파악할 수 있다.

이날 행사에선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어려움을 기술로 해결하는 사례도 소개됐다. 테스트웍스(AI 기반 공공정보 데이터 수집 및 처리 서비스), 소리를보는통로(청각장애인을 위한 인공지능 문자통역 서비스), 와들(배리어프리 대화형 음성 쇼핑몰 앱), 세븐포인트원(조기 치매예방 및 치매환자 우울증 개선 VR 서비스)등 4개 기업이 사례발표에 나섰다.

김정훈 세븐포인트원 본부장은 "약자 기술을 정책적으로 개발하고 상용화할 수 있도록 서울시에서 기회를 마련해줘서 기쁘다"고 말했다.

오 시장은 이날 출범식에서 "선천적인 장애 외에도 후천적으로도 나이 들면 일정한 정도의 장애를 모두가 경험한다"며 "약자를 돌보는 건 미래의 나를 돌보는 일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사회가 좀 더 빠른 속도로 약자들과 동행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최해련 기자 haery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