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형벌은 '최후의 수단'이다
4년 만에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된 ‘타다’ 사건의 의미는 가볍지 않다. 검찰은 ‘11인승 이상 15인승 이하 승합차를 임차하는 사람에게 운전자를 알선할 수 있다’는 법령에 맞게 ‘합법적 렌터카’ 사업을 했다는 타다 측 주장을 배척하고 ‘불법 콜택시’ 영업이라며 기소한 뒤 1심과 2심 무죄에 불복했다. 대법원까지 상고한 검찰에서는 무죄 확정에 대해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타다 운영사는 2020년 서비스 중단 이후 작년까지 551억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6000억원의 투자 유치도 무산됐다. 그사이 택시호출 시장의 95%를 카카오모빌리티가 독점했지만 시민들의 택시 이용은 더욱 어려워졌고 기업의 수익성도 떨어지는, 그야말로 규제와 독점이 겹친 기형적 시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비슷한 사례는 그전에도 있었다. 2007년 호텔업계의 고발로 검찰이 업체 10곳과 업체 대표 10명을 기소한 ‘서비스드 레지던스’ 사건이 그것이다. 주거형 오피스텔로 허가받은 뒤 편법으로 호텔 영업을 했다는 것이 고발 이유였다. 2004년 서울지검 검사 시절 직접 수사에 참여하기도 했던 이 사건에서 고발된 외국계 업체 대표는 국내에 관련 법규가 없어 부득이 법을 위반하게 됐을 뿐 불법을 저지를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항변했다. 전 세계적으로 동일한 비즈니스 모델을 한국에서만 법규 미비를 이유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사건은 2010년 대법원에서 유죄로 확정됐지만 다음해 정부는 호텔 부족과 관광 수요를 이유로 이를 합법화했다. 검찰과 법원에서의 지루한 법정 공방은 무용지물이 돼버렸다.

정부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규제 혁파와 노동개혁을 추진하고 있지만 과도한 경제 형벌 규정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2019년 한국경제연구원은 경제 관련 285개 법률에 2657개의 형사처벌 규정이 있고, 2205개는 최고경영자(CEO)가 처벌될 수 있는 양벌규정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논란의 대상인 배임죄와 중대재해처벌법을 비롯해 실태 파악조차 어려운 경제 관련 형벌 규정의 과잉 입법이 심각하다. 이는 기업 활동에 전념해야 할 기업인들이 언제든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사법 리스크’에 노출돼 있음을 의미한다.

경찰이 독자적 수사권을 갖게 된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변화된 수사 환경은 기업의 사법 리스크를 더욱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범죄는 수사하고 처벌돼야 하지만 수사 대상 선정부터 수사 방법에 대한 효과적인 통제, 그리고 사후 책임을 묻는 장치가 없다면 검찰과 경찰의 경쟁적 기업 수사는 남용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 관련 형벌 규정의 인플레이션 현상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우려스럽다. 불필요하게 기업인들을 전과자로 만들 뿐 아니라 수사와 재판으로 낭비되는 비용과 시간의 사회적 손실이 너무 크다.

형벌은 ‘최후의 수단(ultima ratio)’이어야 한다. 행정벌 등 다른 수단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만 보충적으로 적용돼야 하고, 처벌이 당연시될 정도로 비난 가능성이 큰 경우로 한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 유럽에서는 수십 년 전부터 경제 관련 범죄의 ‘비범죄화’ 노력을 국가 형사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기업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다.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도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기업 활동과 투자의 발목을 잡는 과도한 형벌 규정은 규제개혁 차원의 근본적 검토가 필요하다. 작년 7월 기획재정부와 법무부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기업 경영 활동을 위축시키는 경제 형벌을 완화하기 위한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있었지만 아직 가시적인 성과는 없다.

무죄 확정된 ‘타다’ 사건의 교훈은 ‘형사처벌 만능주의의 부작용’이다. 검찰 수사는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업 수사는 특히 그래야 한다. 검찰 소환과 압수수색 사실만 알려져도 기업 신인도에 타격을 받고 나중에 무혐의 또는 무죄로 판명 나도 사업이나 금융거래에는 이미 회복할 수 없는 치명상을 입기 때문이다. 1976년 록히드 사건 당시 현직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를 구속한 요시나가 유스케 전 일본 검사총장이 “검찰은 오물이 고여 있는 도랑을 청소할 뿐 그곳에 맑은 물을 흐르게 할 수는 없다”고 검찰의 자기 통제를 강조한 것은 깊이 새겨야 할 부분이다. 검찰은 책임 있는 권력이어야 하고 모든 길은 검찰로 통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