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돌이 유령 같던 엄마의 인생…신간 '전쟁 같은 맛'
최근 번역돼 출간된 '전쟁 같은 맛'(글항아리)은 뉴욕 시립 스태튼 아일랜드대 사회학·인류학과의 그레이스 M. 조 교수가 작고한 한국인 어머니를 기리며 쓴 회고록이다.

또한 백인과 한국인 혼혈로 미국에서 자란 저자의 성장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후 기지촌에서 일하다 백인 상선 선원이었던 저자의 아버지를 만난 '군자'(1941~2008)는 그를 따라 미국 워싱턴주 셔헤일리스로 이주한다.

남편이 배를 타는 동안 그는 언어도 잘 통하지 않는 그곳에서 두 자녀를 꿋꿋이 키웠다.

밤에는 소년원에서 일하고, 낮에는 숲과 바다에서 먹을 것을 구해다 팔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한 명 두 명 어쩌다 이주해 오는 한인 입양아와 이주여성이 있으면 김치를 담가 먹이기도 했다.

겉으로 보기에 군자는 늘 씩씩했지만 안은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저자의 나이 15살 무렵, 군자는 조현병에 걸렸다.

그는 집안에 틀어박혀 TV 속에서 이상한 암호를 찾는 데 골몰했고, 환청과 환시에 시달렸다.

"엄마는 목소리의 포로가 되어, 이전에 하던 일을 그만두라는 그것의 말을 고분고분 따랐다.

낯선 사람이랑 얘기하지 마. 전화 받지 마. 밖에 나가지 마. 요리 그만해. 그만 먹어. 그만 움직여…."
떠돌이 유령 같던 엄마의 인생…신간 '전쟁 같은 맛'
저자는 그렇게 엄마를 조금씩 잃어갔다.

설상가상으로 엄마가 매춘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나날이 무너져 가는 엄마와 그 주변을 떠도는 지저분한 소문들. 저자는 참기 어려웠다.

그는 가족을 피해 브라운대학으로 진학했다.

부유한 모범생들이 즐비한 그곳에서 저자는 새로운 삶을 이어갔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계속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엄마는 왜 내가 열다섯 살 때부터 목소리를 듣기 시작한 걸까?'
저자는 모친이 처했던 삶의 조건들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 오랜 결과물이 박사 학위 논문인 '한인 디아스포라의 출몰: 수치심, 비밀, 그리고 잊힌 전쟁'이다.

'전쟁 같은 맛'은 그 속편 격인 작품이다.

책은 '전쟁 신부' '조현병'이라는 낙인 속에 살다 간 모친에 대한 기억을 담았다.

"진실되고 근면했던, 사랑과 고독으로 가득 차 있었던 어머니의 삶을 그려내 보고자 했다.

'타락한 여자'라는 꼬리표에도 불구하고 명예로운 삶을 살았고, '정신병자'라는 꼬리표에도 불구하고 이성적이었던 어머니의 존재를 말이다.

"
책은 2021년 타임과 미국 공영 라디오 NPR의 '올해의 책'에 선정됐다.

그해 전미도서상 논픽션 부문 최종 후보에도 올랐다.

주해연 옮김. 463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