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요소수 사태와 같은 공급망 위기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정부 컨트롤타워인 ‘공급망안정화위원회’를 설치하는 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지만, 수혜자가 돼야 할 기업들은 정작 전전긍긍하고 있다. 공급망을 안정화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기업의 핵심 정보 유출 우려가 커지는 방향으로 입법 논의가 이뤄지고 있어서다.

22일 국회에 따르면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는 지난 20일부터 ‘경제안보를 위한 공급망 안정화 지원 기본법’ 제정안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기획재정부가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을 통해 지난해 10월 발의한 법안이다.

기업들은 정부의 자료 제출 요구권을 우려하고 있다. 법안에 따르면 기재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 기관들은 기업에 핵심 소재 및 원자재의 내역 및 재고, 거래처, 조달 단가까지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 기업들이 기밀로 분류하는 내용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반도체의 경우 주요 소재 내역과 재고를 알면 생산 규모는 물론 핵심 공정 방식까지 유추할 수 있다”며 “모두 중요 정보로 분류돼 외부 유출이 불가능한 것들”이라고 설명했다.

우려가 커지자 대한상공회의소는 “기업 스스로 공개 가능한 정보 범위를 설정해 해당 범위 안에서만 정부에 자료를 제출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0일 소위에서는 오히려 기업의 걱정을 키우는 안들이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가 기업에 자료를 요구할 때 자체 심의하도록 한 규정을 삭제하는 의견이 정부 일각에서 나왔다. 위기 시 공급망 현황을 시급하게 조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심지어 공무원으로만 구성되는 위원회에 경영계와 노동계 대표도 참여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원회에 제출된 자료가 경쟁사나 노동계로 새어 나갈 가능성까지 생기는 셈이다. 이에 따라 공급망 기본법 제정이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기업들의 부담만 늘릴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 국책연구원 관계자는 “똑같은 반도체 소재라도 어디에 사용되느냐에 따라 순도가 다른데 정부 단위에서 이처럼 세밀한 내용까지 살펴 공급망을 관리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고 반문했다.

기재위는 오는 27일 소위를 열어 관련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